[파리 관찰일기] 프랑스, 바캉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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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관찰일기] 프랑스, 바캉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
  • 김환훈 파리 통신원
  • 승인 2020.08.04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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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히 바캉스 떠난 프랑스인들...제2의 대유행 우려 커
국내 여행지로 대거 몰려...서로 어울리며 바이러스 전파중?
프랑스 정부도 방역 홍보만 할뿐 대책 내놓지 않고 있어
김환훈 파리 통신원
김환훈 파리 통신원

[오피니언뉴스=김환훈 파리 통신원] 코로나 바이러스 신규 확진자 수 2500명. 지난 7월 27일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수치다. 확진자 집계가 이루어지지 않는 주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난주부터 일 평균 신규 확진자 수치는 1000여 명까지 치솟았다. 한때 500명까지 떨어졌으나 다시 증가세 추이로 돌아선 것이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따로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2차 대유행, 즉 두지엠 바그(Deuxième Vague, 두 번째 파도라는 뜻)의 공포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프랑스 특유의 바캉스(Vacance) 문화와 관련된 것이다.

해외로 떠나기 어렵자 국내 여행지로 몰리는 프랑스인들

전 세계에서 프랑스인 만큼 7월을 사랑하는 민족은 없을 것이다. 자유로워진다는 뜻의 라틴어 '바카티오(Vactio)'에 어원을 둔 여름휴가, 그들에게 7월은 바캉스 시즌이기 때문이다. 바캉스 문화는 1936년 직장인들에게 2주간의 유급 휴가가 주어지면서 전통은 시작됐다고 한다. 휴가를 위한 저축 예금 통장을 따로 만들어 놓을 정도로 모든 프랑스인들이 1년 내내 손꼽아 기다리는 기간이다. 각자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스페인이나 지중해의 한적한 해안으로 또는 시골에 있는 작은 농막이나 호숫가로 떠나는 등 다양한 형태의 바캉스를 즐긴다.

언제나 그랬듯 올해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전 국민이 바캉스 행렬에 동참했다. 해외여행이 제한된 연유로 프랑스 남부의 해안가는 연일 국내 관광객으로 붐비고, 텅 비어버릴 줄 알았던 파리 도심에는 지방 도시에서 올라온 관광객들로 연일 북적이고 있다.

보르도 지방 인근 카르칸 해변의 모습.
보르도 지방 인근 카르칸 해변의 모습.

바캉스 시즌이 끝나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한다

마스크라도 쓰고 손세정제라도 들고 다녔으면 싶지만, 그런 철저한 방역 문화를 기대하기조차 어렵다. 프랑스 정부가 실내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약 15만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되는 시행령을 발표했지만, 큰 효력이 없다. 이 시행령마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레스토랑, 카페, 해수욕장, 공원, 박물관 심지어는 극장 등의 장소들이 마스크 착용이 필수가 아니다. 실제로 파리의 한 헬스클럽의 경우, 마스크 착용이 탈의실에서는 의무이지만 정작 운동기구가 놓인 트레이닝실은 예외인 식이다.

그러니 야외 관광지의 경우 관리가 더욱 허술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처럼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100명 미만인 것도 아니고, 엄격한 방역 시스템이 확립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전 국민이 차와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국내 여행을 다니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 각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있어, 바이러스를 전파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예년보다 바캉스를 떠난 여행객들의 숫자가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언제였는가를 생각해보면 긴장을 놓을 수 없음은 자명하다. 프랑스의 주요 전파자로 지목됐던 사람들은 봄 방학 시즌 독일과 이탈리아로 스키 여행을 다녀온 청년들이었다. 바캉스 이후 프랑스 내 코로나 바이러스의 2차 대유행은 너무나 불보듯 뻔하지 않을까.

프랑스의 유명 관광지 카르카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의 유명 관광지 카르카손.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2차 대유행을 대비해야 합니다’라는 말만

정부와 전문가들은 연일 국민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곧 코로나 바이러스 2차 대유행이 올 것이다, 그러니 전 국민들이 철저한 방역 의식을 가져야 한다’. 딱 그뿐이다.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프랑스 정부에서 내세우는 별도의 대책이라곤 없다. 그저 TV 토론자리에 나와서 전 국민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메시지만 전달되는 것에 그치고 있다.

현재 미디어의 모든 이목이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의 대대적인 개각이라는 정치 이슈에 매몰되어 있는 탓도 크다. 특히 신임 내무장관 제랄드 다르마냉의 성폭행 혐의 이슈가 뜨겁다. 2009년 한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와중에, 본인 스스로는 정당한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며 반발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불을 지핀 것은  새롭게 법무부 장관에 기용된 에릭 뒤퐁 모레티다. 그의 “미투 운동은 남성 스스로의 방어권이 무시되는 폭력적인 운동”이라는 발언으로 인해 파리 시내에서는 장관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대대적인 페미니스트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토록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중대한 사안에 대한 관리가 소홀한 채, 전 국민이 휴가지로부터 돌아오는 날짜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지난 주부터 서서히 증가세로 돌아선 신규 확진자 숫자가 불길한 예측을 점점 확신으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얼마전 옆나라인 스페인, 특히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이미 이동금지령 조치가 재개됐다. 프랑스의 미래라고 크게 다를까. 프랑스 정부에서는 철저한 예방보다는, 의료자원이 충분히 확보됐다며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 김환훈 파리 통신원은 서울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파리에선 한국문학에 매진 중인 자유기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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