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진실과 사실 사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영화 ‘결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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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진실과 사실 사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영화 ‘결백’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20.06.2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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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살인누명 뒤집어 쓴 어머니를 변호하는 딸의 이야기...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다룬 영화 '재심' 제작진의 신작...'무죄입증 추적극' 장르 표방
30여년 거쳐 교차된 사건들을 퍼즐 맞추듯 구성, 몰입도 높여...'통한과 참회의 연기' 신혜선 호평
살인 누명을 쓴 어머니의 변호를 맡은 '정인'(신혜선). 어머니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까. 사진=네이버영화
살인 누명을 쓴 어머니의 변호를 맡은 '정인'(신혜선). 어머니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까. 사진=네이버영화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생각난 구절이 있었다.


"어쩌면 사실이란 작은 레고 조각에 불과하고 그 조각들을 모으면 비로소 진실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는 언어를 뛰어넘고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창조인 셈입니다. 우리의 세계 인식도 이러해야 합니다."(신영복, '담론')

 

고인이 된 저자 신영복 선생이 감방에서 만난 일흔살 넘은 수용자의 일화를 다룬 글이다. 노인은 새로 수감자가 들어올 때마다 자신의 이력을 소개하는데 적당히 가감하고 부풀려서 떠들어댄다. 신영복 선생은 그 노인이 들려주는 이야기 중 어디까지가 사실이며 또 진실은 무엇일까 궁금해한다. 

최근 몇년 사이 '팩트체크'라는 단어가 우리 삶 깊숙히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사실이 무엇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 줌의 권력으로 나라를 좌지우지하던 사람들의 범죄, 정치적 이유로 억압당하고 배척당했던 문화예술인들의 억울함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재심을 통해 결백을 증명한 경우도 있었다. 사실의 힘은 강력하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있는 사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토대로 진실을 밝혀야한다. 그러나 사실과 진실이 충돌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변호사가 되어 돌아온 딸은 치매에 걸려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어머니를 위해 변론을 자처한다. 영화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갈등하는 어느 변호사의 이야기를 담았다.

추시장(허준호)을 증인으로 세워 심리전을 펼치는 정인(신혜선). 사진=네이버영화 수
추시장(허준호)을 증인으로 세워 심리전을 펼치는 정인(신혜선). 사진=네이버영화 수

 

수면 아래 잠겨있는 진실...어머니의 결백은 증명될까

지방 어느 도시의 상가(喪家). 망자를 생각하며 조문객들은 막걸리잔을 기울인다. 오랫동안 고향친구로 지내왔던 초로의 남성들은 망자를 추모하는 대신 성큼 다가온 도지사 선거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켠에서는 망자의 아내가 나즈막히 노래를 부르며 앉아있다. 넋이 나간듯 조문객을 맞을 생각도 안하고 물끄러미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때 갑자기 막걸리를 마시던 조문객들이 쓰러진다. 막걸리에서는 농약성분이 검출됐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미망인은 긴급 체포된다.

국내 굴지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정인(신혜선)은 우연히 뉴스를 보고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바로 그가 떠나온 고향이었고 사건이 일어나 곳은 그의 집이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화자(배종옥 분)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정인이 어머니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직접 변호를 맡는다. 하지만 급성치매가 진행중인 화자는 사건에 대한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돌아온 딸을 알아보지 못한다.

어머니는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이 의심받을까 두려워 끝까지 자신이 한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정인은 어릴 때부터 자신보다 동생을 아꼈던 어머니에게 화가 나면서도 안타깝다. 정인은 사건을 추적하던 중 장례식장에 있었던 시장 추인회(허준호)와 마을 사람들이 사건을 빨리 종결지으려고 압력을 가하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의 신변마저 위태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인은 진범을 찾아 어머니의 결백을 꼭 입증해 내리라 다짐한다.

정인은 우연히 30여년전 의문의 살인사건을 알게 되고 그 사건을 파헤치면서 소름끼치는 사실을 발견한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추시장과 그의 추종자들의 저항은 더 거세지고 감당하기 어려운 진실이 차츰 드러나는데...

의치,렌즈,가발 등 분장으로 노년의 화자를 재현한 배종옥. 사진=네이버여영화
의치,렌즈,가발 등을 이용한 분장으로 노년의 화자를 재현한 배종옥. 사진=네이버영화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 묘미까지...'무죄입증 추리극' 돋보여

최근 영화 홍보물을 보면 작품의 장르를 액션, 코미디, 드라마 등으로 간단히 정의하지 않는다. 범죄 코미디극, 범죄 심리수사극, 범죄 스릴러, 액션 스릴러 등 다양하다. 영화 '결백'은 ‘무죄 입증 추적극’이라고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무죄입증 추적극'? 잠시 갸우뚱 거리다가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재심'의 제작진이 선보이는 작품임을 알고나니 대략 수긍이 간다. 부조리한 권력을 향한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냈던 제작진이 이번에도 역시 사실과 진실을 주제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인 것. 

주연을 맡은 신혜선은 TV드라마 ‘학교 2013'로 데뷔해 영화 '검사외전'에서 강동원의 상대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배우로 지난해에는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상 ('단, 하나의 사랑')을 수상하기도 했던 최근 가장 핫한 배우 중 한명이다. 스크린에는 2013년 영화 '리턴매치'로 데뷔한 후 첫 주연작품으로 선택한 영화가 '결백'이다. 이번 영화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냉철한 변호사지만 모정(母情)에 흔들리는 딸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배종옥은 치매로 기억을 잃은 살인 용의자 '화자' 역할로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2003년 영화 '걸어서 하늘까지'로 백상예술 대상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던 연기파 배우. 역시 베테랑 연기자로 '국가부도의 날'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등 최근 여러 작품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허준호가 마을을 둘러싼 거대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추시장’ 역을 맡아 영화에 긴장감을 더했다.

특히 배종옥은 화자의 젊은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는 30여년의 세월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분장 외에 의치, 컬러 렌즈, 가발 등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분장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불편함도 감수해야했지만 새로운 시도에 자신의 만족감도 컸다고.

30여년의 시차를 두고 교차되는 사건들을 마치 퍼즐 맞춰가듯 몰입을 이끌어낸 구성, 자신을 몰라보는 어머니를 마주한 신혜선의 통한과 참회의 시선 등은 영화의 백미. 또한 남성 일색의 범죄수사물과 다르게 감정선을 건드리는 디테일을 가미, 관객들의 좋은 평점이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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