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F위기 17) 미국의 아시아 재편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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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F위기 17) 미국의 아시아 재편 전략
  • 김인영
  • 승인 2015.11.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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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와 월가 투자자가 50년전 유엔의 다국적군을 대신해 한국 구제

 

한국의 경제 침몰은 좁게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질서, 넓게는 환태평양 경제권의 역학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대 강국 모두가 아시아 경제 위기에 직간접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에 과거 동서 냉전 시대와는 다른 차원에서 동아시아 질서가 재편됐다.

미국이 IMF라는 다국적 자본을 앞세워 한국 경제 구제에 나선 것은 50년전 미국이 유엔이라는 다국적군의 깃발 아래 한국전에 참전한 것과 비슷하다. 달라진 것은 군대와 무기 대신에 월가의 투자자와 달러일 뿐이었다.

반세기전에 유엔군이 한국군의 지휘권을 이양 받은 것처럼 IMF는 한국의 거시경제 조정자임을 자처하고 나섰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세계 2의 경제 대국인 일본 경제가 파국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25때 일본 방위를 주장했던 펜타곤(미국 국방부) 참모들과 같은 맥락의 논리다.

태국에서 불어온 통화 위기의 도미노는 시베리아와 중국 중원에서 밀려드는 공산주의 도미노와 양상이 비슷했다. 밀려오는 도미노와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의 접점이 한국이었다는 사실도 50년의 세월을 두고 똑같이 나타났다.

과거 유엔군이나 현재의 IMF에 가장 많은 지원을 제공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움직인 것은 5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임에는 변함이 없다. 군대와 자본이라는 상황만 달라졌을 뿐 미국은 한국을 또다시 지원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재무부는 때론 IMF의 배후에서, 때론 IMF를 제껴놓고 전면에서 아시아 위기 해결에 간여했고, 뉴욕 월가 은행들의 팔을 비틀어 협조를 강요했다. 아시아에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펜타곤이 움직였던 자리를 재무부가 대신했다. 아시아 공산주의의 도미노 현상이 펜타곤의 힘을 강화했듯, 아시아 금융위기 도미노는 미 재무부의 힘을 강화했다.

▲ 1996년 4월, 제주에서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유채꽃밭을 함께 거니는 모습. 동서 냉전이 끝나고 클린턴 행정부는 월가의 금융력으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은 1980대말 소련을 비롯, 공산국가들이 붕괴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동서 냉전 시절에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과 싸우기 위해 아시아의 독재 정권을 용인했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등의 독재정권이 민주화세력을 탄압하며 장기집권할 수 있었던 것도 그 이면에 미국의 든든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시아의 독재국가들은 국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을 단행했고, 권력과 유착한 대기업들을 양산했다. 한국의 재벌,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가문의 족벌 기업 등이 그런 부류였다. 아시아 국가들은 은행을 장악, 대기업에 저리의 대규모 특혜금융을 주었고, 그 덕택에 정경 유착의 기업들이 고속성장을 구가했다.

미국이 패전국인 일본의 경제 부흥을 지원한 것은 중국이 공산화되면서부터였다. 일본 경제를 부흥시켜 아시아 지역에 침몰하지 않은 항공모함을 만들겠다는 「불침항모론(不沈航母論)」이 그런 연유에서 나왔던 것이다. 미국의 지원으로 일본이 전후 복구를 마치고 자동차, 반도체 분야에서 미국을 능가하겠다고 덤벼도 미국은 소련과의 대결 때문에 막대한 군사비를 사용하는 바람에 일본과의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대일본 정책의 근간은 소련의 남하를 저지하는 것이었고, 통상문제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미국은 군비를 삭감, 재정지출을 줄였고, 금융산업을 선두로 산업경쟁력을 강화했다. 동시에 국제자본시장의 경계를 허물었다. 국제 정치, 경제의 중심이 워싱턴의 펜타곤에서 뉴욕의 월가로 옮겨갔고, 세계의 지도력은 과거 소수 군사엘리트의 판단에서 다수 투자자가 만드는 시장원리로 넘어갔다.

미국은 더 이상 반공주의 독재정권과 그에 유착한 은행, 족벌기업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시아 위기가 터지면서 미국은 아시아를 지원하는 대신에 자본시장 개방과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도입을 요구했던 것이다.

「한국 전쟁의 기원」이라는 저서로 한국에도 유명한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조광동 한국일보 시카고지사 논설위원과의 대담에서 말한 내용을 인용해 보자. 그의 말은 환란이후 미국의 입장을 정곡으로 찔렀다.

“지금까지 한미 양국은 혈맹관계였다.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더 이상 남한을 이런 관계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IMF를 통해 적극적으로 한국을 죄고 있다. 이런 일은 냉전시대에는 있을 수 없었다. 한국 경제의 건강은 바로 공산주의와 싸우는 것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이제는 한국 경제가 세계에 어떤 도움을 주느냐 하는 입장에서 보게 됐다. 미국은 IMF를 통해 한국 경제를 통제하고 있다. 나는 오늘 남한의 위기는 냉전 종식의 결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남한은 특별대우를 받는 나라에서 하나의 경계 대상으로 취급받게 됐다. 미국은 한국의 발전모델을 바꾸려 하고 있다. 이번 위기는 한국 경제의 발전모델의 종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경제를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었으며, 투명성이 보장되고 미국의 자유 시장 개념에 맞도록 한국경제가 개편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 미국 자체로서는 동서냉전이 종식되고 공산권이 붕괴된 후 어떤 변화과정을 거쳤던가.

소련과의 군사대결이 치열했던 1980년대에 미국 금융산업은 집단 도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1980년대초 연간 20개 미만이었던 은행 도산 수가 80년대 후반에는 2백개로 확대됐다. 엔화 강세에 힘입어 일본 은행들이 캘리포니아의 은행들을 대거 사들여도, 미국 금융계는 속수무책이었다. 1970년대 세계 30대 은행중 7개를 미국 은행이 차지했으나, 1990년에는 1개에 불과했다.

최대 적대국이었던 소련이 붕괴한 직후인 1990년대초,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글로벌 경제에서 강력한 금융의 힘이 유일한 무기󰡕라며 금융 패권을 일본으로부터 탈환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할 것을 백악관에 건의했다. CIA의 보고가 있은 지 1년후인 1991년 2월 미국 재무부는 “금융산업 경쟁력 약화가 미국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 금융산업 체질 개선에 관한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1992년 집권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당시에 마련된 재무부의 보고서를 그대로 이행했다. 1930년대초 대공황 때 만들어진 규제 위주의 금융관련 법률을 대거 뜯어고치고, 금융산업 규제완화를 대대적으로 단행했다. 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 비율을 강화하고, 주간 은행업무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고 은행과 증권, 보험업무의 업종간 진입장벽을 해제함으로써 금융 부문을 완전 경쟁체제로 전환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대대적인 금융산업 규제 완화는 금융업계의 재편을 예고했다. 뉴욕 월가로 대변되는 미국 금융산업은 살기 위해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미국 금융기관들은 자구책으로 선택한 방법은 업종간 벽 허물기와 합병 및 인수(M&A)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M&A 바람은 미국 금융산업에 큰 흐름을 차지했고, 아직도 지칠 줄 모르고 진행되고 있다. 1960~70년대에 연평균 130~140건에 이르던 은행 합병이 80년후반엔 400~500건으로 확대됐다. 1990년대엔 대형 은행간 합병이 활발하게 이뤄져 10대 은행 대부분이 합병을 통해 경쟁력을 확대했다. 96년에는 랭킹 4위였던 케미컬 은행이 6위인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합병, 미국 금융가에 일대 바람을 일으켰다. 금융산업 M&A는 98년초 시티은행의 모기업인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 그룹의 합병으로 「시티 그룹」이 탄생한 것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미국 은행에 확산되고 있는 M&A는 「대형화를 통한 감량화」라는 상반된 논리를 적용하고 있다. 즉 덩치는 키우되 군살을 빼면서 경쟁력을 높이자는 것이다. 두 은행이 합쳐지면서 외형을 키우고, 동시에 관리 및 영업등 중복부문을 과감히 도려낸다. 비용절감을 통해 증대된 이윤으로 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을 늘리고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를 확대한다. 그렇게 되면 고객이 늘게 되고 다시 이윤이 확대되는 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

 

1990년대 후반 들어 미국 금융산업은 경쟁력을 회복, 세계 금융시장을 다시 장악했다. 미국은행들은 미국 경제의 장기호황을 리드하며, 「세계의 금고」로서의 역할을 되찾았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인플레이션 억제정책, 재무부의 달러 강세정책은 장기호황으로 배출된 막대한 유동성을 월가로 집중시켰다. 미국 자본은 1980년대 일본에 팔려간 캘리포니아의 아몬손, 골든스테이트뱅크등을 다시 사들였고, 국제금융시장을 주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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