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위기 12) 진단엔 늑장, 처방엔 강경한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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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위기 12) 진단엔 늑장, 처방엔 강경한 IMF
  • 김인영
  • 승인 2015.11.2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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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징후 보고받고도 묵살…보고서는 오류 투성이

 

환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6개월 전인 1997년 4월 당시 IMF에서 자본시장 조사팀장을 맡고 있던 데이비드 폴커츠란다우(David Folkerts-Landau)씨가 한국을 방문했다. IMF는 1,000명의 이코노미스트를 고용, 182개 회원국이 금융위기에 빠질 위험이 있는지를 점검한다. 이들은 회원국을 직접 방문하거나 국제기관의 자료를 토대로 진단을 한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정기 검진인 셈이다. 폴커츠란다우씨가 이끄는 IMF 팀의 역할은 이런 목적이었다.

폴커츠란다우씨 일행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 금융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정리했다. 요지는 한국 은행문제는 자칫하다간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폴커츠란다우씨는 금융시스템의 문제를 한국정부에 일러주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 관리들은 그런 문제가 있지만, 성장률이 빠르기 때문에 해결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IMF의 진단을 묵살한 한국 정부도 문제가 있지만, IMF도 문제가 있었다. 폴커츠란다우씨의 진단이 IMF 고위층에서 무시됐던 것이다.

폴커츠란다우씨는 워싱턴에 돌아온 후 조사내용을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어 IMF 이사진들에게 돌렸다. 그러나 이사진들은 보고서를 유야무야해버렸다. 7개월이 지나 11월에 발간된 265쪽의 IMF 연례보고서에 폴커츠란다우씨의 조사가 몇 줄 정리됐을 뿐이다.

IMF 연례보고서에는 한국 실정, 정확히 말하면 7개월 전의 실정을 “현재 (한국) 금융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은행 대출 결정에 직접 개입하는 관행이다”라고 간단하게 요약했다.

그러나 연례보고서가 나올 무렵 한국 외환위기는 벼랑으로 치닫고 있었고, 폴커츠란다우씨의 주장은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

▲ 워싱턴 DC의 IMF 본부.

어느 날 갑자기 한국인들에게 나타난 IMF는 결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다. 진단에서 처방, 결과에 이르기까지 IMF는 오류투성이고, 수혜국에서는 「미국의 앞잡이」라는 비난이, 미국 의회에서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라는 비난이 서슴지 않고 나왔다.

IMF는 전문 이코노미스트들로 하여금 팀을 만들어 해마다 150개국에 파견, 경제상황을 조사한다. 이들 조사단의 보고서는 비밀로 돼있다. 그러나 IMF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경제학자들 중에서 아시아 위기를 예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더욱 한국 위기는 예상조차 못했고, 앞서 언급한 폴커츠란다우씨의 진단도 이사회에서 묵살해버렸다. IMF 관리들은 한국 정부가 위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터트렸으나, 그들은 세계 경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다.

▲ 환란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

IMF는 멕시코 위기도 예상하지 못했다. 페소화가 폭락하기 8개월 전인 94년 4월, 미셸 캉드시 총재는 미국 재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아주 충실하게 경제 정책을 운용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오진도 오진이지만, IMF는 페소화 위기가 발생하자 멕시코에 대한 온건한 권고안을 냈다. 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판단했던 것이다.

IMF는 해마다 9월에 연례보고서를 낸다. 그러나 이 연례보고서는 그해 4월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신선함을 잃는다. 또 IMF 연례보고서는 해당국의 로비에 의해 내용이 변색되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은 1997년 보고서에서 원화 고평가에 대한 논의를 삭제해달라고 요구, IMF가 이를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IMF는 한국 위기에 큰 오류를 범했다. 1997년 9월에 나온 연례보고서에서 IMF는 한국이 외환위기로 치닫고 있음에도 「지속적으로 거시 경제를 잘 운용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보고서는 겨우 “한국이 더 탄력적 환율 운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것이 고작이다. 강경식 부총리와 경제팀만 나무랄 것이 아니다. 정작 한국 경제의 지배자로 나타난 IMF는 오류 투성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IMF는 환란 직전인 10월에도 한국을 리뷰했다. 보고서는 외환위기 이후에 나왔지만, 초안에는 한국의 위기상황을 지적하지 못했다.

경제를 예측하는 것은 일기예보보다 힘들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기상예측의 정확도는 높아지고 있지만, 경제가 발전하고 복잡해질수록 위기 예측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IMF측도 이점을 인정하고 있다.

IMF의 자매기관인 세계은행(IBRD)도 오보의 명수다. 아시아 위기 발생 두달전인 1997년 5월 세계은행 보고서는 태국을 칭찬했고, 인도네시아를 「경기 순환의 예외적인 나라」라며 금융 대출 우량국으로 지목했다. 한국이 외환위기에 빠지자 세계은행은 신문이나 통신 뉴스에 의존해 한국 사태를 추적하기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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