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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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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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디렉터 겸 작가 '나란', 직접 읽은 책과 문장을 소개한 북 큐레이터의 에세이집
어떻게 살지 고민하며 순조로운 삶을 위한 경험을 책과 작가의 문장을 통해 공유
인문, 소설, 시,에세이, 독립출판물 등 다른 사람이 지나치는 책이 내겐 양서될 수 있어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 독자. 사진=연합뉴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 독자.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강대호 칼럼니스트] 난 서점을 좋아한 소년이었다. 종로나 광화문의 대형서점을 알기 전에는 우리 동네에 있던 작은 책방을 즐겨 찾았다. 책방 주인은 빵모자를 즐겨 쓰던 예술가 스타일의 아저씨였다. 가끔 그의 부인이 가게를 지킬 때도 있었는데 나는 아저씨가 있을 때만 서점에 들어가곤 했다. 누가 있느냐에 따라 책방 분위기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서점에 자주 오는 나를 이뻐하셨다. 물론 내가 서점에서 매번 책을 사는 건 아니었다. 난 학생 잡지나 만화 잡지를 훑어본다거나 새로 나온 소설을 살펴볼 때가 더 많았다. 아저씨가 책방을 지킬 때면 자유롭게 이 잡지 저 잡지, 이책 저책을 훑어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줌마가 있을 때면 눈치가 보여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가 가끔 책을 사면 아저씨는 “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 책을 사냐”면서 철 지난 잡지나 별책 부록 같은 것을 챙겨 주곤 했다. 소년 시절의 그런 기억 덕분에 서점은 내가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지난주 대형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들을 살펴보다가 눈길이 가는 책을 발견했다. 소재와 주제가 독특했다. 이럴 때 나는 그 출판사의 다른 책들도 살펴보는데 그중에 유독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었다. 서점 직원 출신이자 ‘북 큐레이터’가 쓴 ‘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이라는 다소 긴 제목을 가진 책이었다.

 

'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 지콜론북 펴냄.
'우리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일은 없겠지만'. 지콜론북 펴냄.

저자는 ‘나란’. ‘나’ 씨 성을 가지고 ‘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일까. 아니면 그냥 필명일까. 저자의 이력은 더욱 호기심을 일게 했다. 그녀는 대기업, 언론사, 스타트업을 거쳐서 네 번째 직장인 서점에서 점장과 북 큐레이터로 일했다. 지금은 북 디렉터 겸 작가로 문학 팟캐스트를 운영하고 있다. 책 관련 일을 하는 저자가 쓴 책에 관한 책. ‘책’이라는 제품 자체를 좋아하는 나는 이 책을 집어 들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세 번째 직장인 스타트업을 다니며 몸에서 어떤 신호를 듣는다. 일을 향한 “에너지와 호기심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고갈되는 자원”이었다는 것. “정신도 유한한 자원”이라는 것. 그녀가 일을 관두고 새로운 일을 찾던 즈음 지인으로부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는다.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설렜다. 서점은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곳이었지만 서점을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일 테니까. 실은 제안을 받은 후부터 고갈되었던 호기심과 에너지가 되살아나는 게 느껴졌다. (23쪽)

 

저자는 큰 고민 없이 서점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그렇게 그녀는 “성북동의 서점 언니”가 되었다.

그녀가 일하게 된 서점은 성북동 주택가에 자리한 예쁜 건물이었다. 책만 파는 것이 아닌 커피와 빵도 함께 팔았다. 저자는 서점을 찾는 손님들을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렇게 ‘북 큐레이터’는 탄생했다. 손님에게 단순히 책을 권해주는 사람이 아닌 깊은 의미도 부여하며 ‘북 큐레이터’의 정체성을 찾아가기도 했다.

 

큐레이션의 목적은 개별 작품을 적절히 배열 및 구성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중략) 큐레이션의 가치는 충분히 시간을 들여 곰곰이 생각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감상하는 작품 혹은 수집하는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 (46~47쪽)

 

이 책을 읽으며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저자 자신이 책들에서 엄선한 문장들이었다. 그녀는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많은 책을 접하고 그 안에서 맘에 드는 문장을 뽑아내곤 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그중에서 고르고 고른 책들과 문장만을 실었을 것이고. 사람들은 각자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자신이 읽을 책을 선택한다. 그런 면에서 난 저자의 취향과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

그녀는 책을 고를 때 ‘공감’할 수 있는지, ‘감정 이입’ 할 수 있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춰 보거나 헤쳐나가고 싶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또한, 저자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빗대어 삶의 확장을 꾀할 수 있는 책을 고른 것 같았다.

 

유럽의 작은 동네책방.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은 무엇일까. 사진=unsplash
유럽의 작은 동네책방. 나의 삶에 도움이 되는 책은 무엇일까. 사진=unsplash

그렇게 고르고 고른 책들을 독자들에게 권하며 그 안에서 엄선된 문장들도 함께 펼쳐 보인다. 저자는 그 안에 자기뿐 아니라 독자들도 겪을 법한 공통분모들을 담으려 했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독자들도 이전과 조금씩 달라지는 삶의 태도를 경험하기를 바라면서.

책을 소개하는 글의 최종 목적은 독자가 그 책을 읽게끔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성공했다. 저자가 권하는 책 중에서 내가 미치도록 읽고 싶어진 책들이 있었다. 독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는 시인으로 살다간 허수경”의 글처럼.

 

뮌스터를 걸으며 나는 내가 떠나온 나의 도시를 생각했다. 그곳에서도 어떤 이방인이 걸으며 시를 읽을까. 낯선 모든 것들을 익숙한 인간의 일로 돌려주는 시를 읽으며 걷는 자의 고독과 기쁨을 껴안을까. (155쪽, 허수경 시인의 ‘너 없이 걸었다’ 중)

 

나는 허수경 시인의 “시로 쓰인 에세이”가 읽고 싶어졌다. 시인처럼 길을 걸으며 시인처럼 생각하고 글로 표현하고 싶어졌다. 저자가 추천한 ‘수전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도 읽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니 저자가 소개한 책 중 여러 책이 이미 내가 읽은 책이었다. 읽지 않은 책들은 읽고 싶어졌고. 저자와 나의 책 취향이 비슷한 건가. 제목처럼 “취향이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같은 책을 읽는다고 해서 느낌까지 같을 순 없다. 난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느낀 지점과 내가 지점을 비교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나 또한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 저자가 사용한 글의 구조와 흐름에서도 여러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분명 책 소개이지만 저자나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가, 혹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적절히 섞인, 어쩌면 독자들이 공감할 만한 구석이 많은 글이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내가 사는 경기도의 한 도시에는 동네 서점이 여럿 있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는 그 책방들에 가면 내가 소년 시절에 느꼈던 그런 정취는 이제 없다. 주로 참고서와 문제집 위주의 자료만 즐비한 가게가 되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작은 책방’도 이 도시에 있다. 독립 출판으로 세상에 나온 책들과 책방 주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책들로 가득한 공간이다. 난 이번 주말 그곳으로 나들이 가려 한다. 어떤 책들이 날 기다릴지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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