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유가, '뉴노멀' 되나...전문가 "아직 바닥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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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유가, '뉴노멀' 되나...전문가 "아직 바닥 아냐"
  • 김지은 기자
  • 승인 2020.04.22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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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코로나19 쇼크 능가하는 유가 쇼크"
5월분 WTI 마이너스 급락 일시적 현상 넘어서
6월분도 마이너스 반복될 가능성 높아
전문 헤지펀드들 6월물 거래 건너뛰기도
텍사스, 오클라호마 등 석유 중심 주(州) 경제 타격 우려
국제유가가 폭락세를 이어가자 '마이너스 유가' 움직임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국제유가가 폭락세를 이어가자 '마이너스 유가' 움직임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지난 20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5월 인도분 미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은 마이너스(-) 37.63달러까지 떨어졌다.

사상 유례없는 마이너스 유가에 모두가 놀랐지만, 일종의 해프닝처럼 여겨졌다. 선물 만기가 겹친 특수한 현상일 뿐, 만기가 지나면 다시 이전 가격, 즉 배럴당 20달러대로 올라설 것으로 석유 전문가들조차 예상했다. 

그런데 불과 하루만에 시장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5월물 WTI 가격이 마이너스 40달러선까지 떨어질때도 배럴당 20달러선을 유지했던 6월물 WTI 가격과 브렌트유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평가절하했던 마이너스 유가가 이제는 '뉴노멀'이 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등장하고 있다. 

◆  배럴당 20달러 유지된다던 전문가들 전망 왜 바뀌었나

당초 시장에서는 2분기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지난 4월 초 CNBC가 스트래티지스트, 애널리스트, 트레이더 등 30여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2분기 브렌트유 선물가격 전망치의 평균 값은 배럴당 20달러 수준이었다.

5월물 WTI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20일까지도 이 전망은 유효하다고 시장에서 여겨졌다. 5월물은 마이너스로 떨어졌지만 6월물과 브렌트유가 배럴당 20달러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일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6월 인도분 WTI는 반토막이 났고, 7월 인도분도 26달러대에서 18달러로 뚝 떨어졌다. 브렌트유도 18년만에 배럴당 2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전날 마이너스 유가가 단순히 일시적이고 기술적인 이유로 폭락한 것 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헤지펀드 안두란드 캐피털의 설립자이자 세계적인 석유 전문 헤지펀드 매니저 중 한 명인 피에르 안두란드는 "지금은 말도 안되는 유가 수준이지만, 저장 시설 부족 등과 같은 제약이 있을 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석유를 저장할 만한 곳이 없을 때 유가는 어디까지든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와이오밍대학의 로버트 고드비 교수는 "이것은 마치 케이블이 끊어진 엘레베이터에 타고 있는 것과 같다"며 "우리는 아직 바닥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존 전망치인 배럴당 20달러 수준의 유가도 석유업계에는 치명적인 수준이지만, 수많은 전문가들이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유는 현 상황을 개선할만한 요소가 전혀 없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큰 문제점은 공급은 여전히 많고 수요는 3분의 1로 줄어든 반면, 저장시설마저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레피니티브의 칼 래리는 "유가가 이토록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은 수요가 완전히 중단됐기 때문"이라며 "현 시점은 수요가 급감한 것이 아니라 수요가 소멸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추가적인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서는 수요 회복이 가장 시급하지만, 단기간 내 수요 회복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이같은 이유로, 현 시점에서 유가를 전망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우리가 8개월 전 코로나19를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오늘날 석유 트레이더들도 가까운 미래에 대해서는 정확한 예측을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다만 두 달 이상을 내다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엉뚱한 추측을 하고, 깜짝 반전을 기다리는 일 뿐"이라고 언급했다. 

◆ 전문 헤지펀드도 6월물은 피한다

단기간 내 수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보니 전문 헤지펀드들도 6월물 거래는 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자산이 40억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의 석유 ETF인 USO는 최근 포트폴리오를 개편했다고 밝혔다. 

USO의 경우 근월물에 100%를 투자한 후 만기 이전에 이를 차근월물로 갈아타는 '롤오버' 방식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원월물이 근월물보다 훨씬 비싸지는 극단적인 콘탱고 상황이 벌어지자, 보유계약의 20%를 근월물이 아닌 차근원물에 투자하는 것으로 운용 방식을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FT는 "USO가 7월 인도분 55%, 8월분 5%를 보유하겠다고 밝히며 6월 인도분의 일부를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USO는 지난 20일 기준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6월 인도분 WTI의 24%에 해당하는 1억3700만배럴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펀드다. 초대형 펀드가 6월분의 20%를 매각하겠다고 밝히고, 일부를 이미 매각한 것이 6월분 WTI 가격 하락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리스타드 에너지의 루이스 딕슨은 "코로나19의 영향이 5월물에서 이제 6월물로 넘어갔다"며 "이는 6월물 역시 만기일, 즉 실물을 받아야하는 날짜에 가까워질 경우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이야기다"고 말했다. 

6월물의 선물 만기는 5월19일이다. 원유 등 상품 거래에 있어서 선물 계약은 만기가 지나면 실물을 인수해야 한다. 당분간 수요가 회복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6월물 가격도 마이너스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뜻이다. 

삭소뱅크의 올레 한센 커머디티 헤드는 "'또 마이너스 유가를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짧게 대답을 한다면 '그렇다'"라며 "5월19일 만기가 도래하는 6월 인도분 WTI도 같은 운명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앞으로 몇 주 동안 미 전역의 생산 감소와 에너지 업계의 파산을 볼 것"이라며 "물론 수요가 유입되면 또 다른 붕괴를 피할 수 있겠지만 위험은 여전히 매우 높다"고 내다봤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 추이.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 추이.

◆  코로나19 쇼크 능가하는 유가 쇼크

일각에서는 국제유가 폭락 등 유가 쇼크가 코로나19의 쇼크를 능가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놓는다. 

월스트리트저널(WJS)은 "텍사스 뿐 아니라 와이오밍, 알래스카, 오클라호마 등 다른 에너지 중심의 주(州)들도 유가 폭락으로 인한 타격을 받고 있다"며 "이는 코로나19의 쇼크를 능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석유업계의 타격은 주(州) 경제의 다른 부분들을 통해 파급될 수 있다는 것. 즉 에너지 업계에서 실직자들이 늘어나고, 이는 소비 감소로 이어지면서 주택시장 및 서비스산업의 타격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WSJ에 따르면, 와이오밍주는 총 경제 생산량의 16.4%가 광산 및 에너지 부문에서 얻어진다. 알래스카(15.3%)와 오클라호마(11.7%), 노스다코타(10.3%) 등도 텍사스(7.8%)에 비해 에너지가 총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다. 

알래스카 앵커리지대학의 무신 개타비 교수는 "주 정부는 유가 폭락으로 에너지 업계가 타격을 입으면서 재정적으로 더 큰 부담에 직면해있다"며 "소득세나 소비세 인상 등 새로운 수입원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를 웃돌았던 3월 셋째주와 넷째주의 루이지애나주 조사에 따르면, 주(州) 석유·가스 협회 회원들은 4개월 이내에 직원을 70%까지 감축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는 주 정부가 2만4000개 이상의 일자리와 20억달러의 임금 삭감을 초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오클라호마주에서는 생산 및 유전 관련 회사들이 최근 몇 주 동안 수백명의 근로자들을 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툴사대 톰 센그 교수는 "아직 대규모 감원사태가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출발점에 서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선물 가격은 일종의 경제 전망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이 전망은 5월경 우리 경제가 마비될 정도로 침체되고 6월 역시 이보다 더 낙관적이지 않으며, 남은 한 해 전망에 대해서도 깊은 신음소리를 내고, 2021년에도 침울해있을 것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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