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그래서 보수가 뭔데? 보수를 설명하는 몇 권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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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그래서 보수가 뭔데? 보수를 설명하는 몇 권의 책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0.04.19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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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보수주의 철학 근거 설명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보수와 진보의 가치 비교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미 보수주의, 50년대부터 인물 길러내
보수주의자들, 더 이상 주류가 아님을 인지해야 할 때
보수가 참패한 21대 총선. 도대체 보수는 과연 무엇인가. 사진=pixabay
보수가 참패한 21대 총선. 도대체 보수는 과연 무엇인가. 사진=pixabay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투표한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까 하는 의문을 가진 시절이 있었다. 그전에는 민주 세력과 재야 세력이 단일화하면 군사정권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었다. 당시 모든 통계가 그렇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세력들은 각자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을 했고 단일화는 없었다. 군사정권은 이어졌고 어떤 세력은 한때 그들과 싸우던 군사정권에 부역했다. 

부역자들은 문민정부를 세우기 위한, 국민과 민주주의를 위한 차선책이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투표로 세상을 바꾸고자 한 사람들의 마음은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예들이 지금도 정치권의 한 축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진정한 ‘보수’라고 말한다.

지난 몇 주 나는 보수라는 말을 무척이나 많이 들었다. 선거에 나선 야당 후보들은 공약보다 자기의 정체성을 더 외치는 듯했다. “난 보수요. 보수라고요. 보수만이 대한민국을 구한다고요.” 그들에게는 공약보다 보수라는 자기 정체성이 더 중요해 보였다. 

그런데 정작 보수가 무엇일까는 후보도 유권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다만 지금 정부에 반대하는 것이 보수인양 외쳤다. 난 그들에게 묻고 싶었다. “대체 보수가 뭐요?” 하지만 그들이 내 궁금함을 달래줄 만한 답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보수’를 이야기하는 책들을 꺼내 읽었다.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지식노마드 펴냄.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지식노마드 펴냄.

먼저 ‘러셀 커크’의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를 찾아보았다. 보수주의의 철학적 근거를 설명한 책이다. ‘러셀 커크’는 보수의 학문적·사상적 뿌리를 정립한 미국의 사상가다. 이 책이 나온 지 60년이 넘었지만, 우리나라에는 작년에야 번역본이 나왔다. 출판사에 의하면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이 책이 설명하는 보수의 핵심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보수란 시간이 흐르면서 가감되거나 수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이 책은 11개의 테마로 보수를 설명한다. 종교적 신앙, 양심, 개인의 독립성, 가족, 공동체, 공정한 정부, 사유 재산, 권력, 교육, 영구불변과 변화, 공화국 등. 하지만 저자는 보수의 철학을 설명하며 미국 보수당의 정책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이 테마들을 통해서 우리 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 무엇이고, 진정한 발전과 활력 있는 삶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가능한지를 논한다.

다음 문장들이 저자가 정리한 보수주의 핵심을 잘 설명한다.

 

“보수주의는 평등한 정의, 개인적 자유, 그리고 인류의 모든 사랑스러운 옛 모습들을 갈망하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사회적 개념이다. 보수주의는 단순히 ‘자본주의’를 옹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개인의 재산권과 자유경제를 그 자체로, 또 그것이 위대한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기 때문에 결연히 옹호한다. 이 위대한 목적들은 정치, 경제적 목적 그 이상을 의미하고, 거기에는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품성, 인간의 행복은 물론 심지어 인간과 신의 관계까지도 포함한다.”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16~17쪽)

 

하지만 이러한 이상들은 보수만 점유하는 건 아니다. 평등과 정의 그리고 자유는 물론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에서 설명한 보수의 모든 가치를 진보도 똑같이 외친다. 그런데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나는 진보인데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생각정원 펴냄.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생각정원 펴냄.

그 차이를 실제 사례를 들면서 설명하는 책이 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저자 ‘조지 레이코프’와 그의 제자인 ‘엘리자베스 웨흘링’이 쓴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다. 이 책은 보수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보수가 생각하는 가치를 설명하며 진보의 그것들과도 비교한다. ‘자유’를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태극기 집회에서도 그랬고 이번 선거에서도 그랬듯이 ‘자유’는 논쟁적인 단어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쓰냐에 따라서 그 개념이 달라진다고. 저자들은 이 지점에서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몇 가지 해석이 있는지 다시 처음부터 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에는 ‘자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완전히 다른 두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보수적인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적 해석이죠. (중략) 어떤 사람은 자유라고 느끼는 것을 다른 어떤 사람은 자유의 제한이라고 느낄 수 있지요.” (‘나는 진보인데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 234~245쪽)

 

그 안에는 ‘자유’를 시장 경제에서의 경쟁 체제로 생각하는 보수적인 해석이 있고, 서로가 함께 자신의 정체성과 차이를 드러내며 인정받을 수 있는 자유를 뜻하는 진보적인 해석이 있다는 것이다. 

레이코프는 이렇듯 자유와 평등, 공정과 정의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에 대한 서로의 생각은 어떤지를 자문하지 않으면, 서로 생각하는 것만 말하고 소통되지 않는 상황이 온다고 주장한다. 같은 단어이지만 진보와 보수는 서로 다른 해석을 이야기한다고.

이번 선거를 지켜보면서도 그런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같은 감염병을 놓고서도 이름을 다르게 쓰거나 ‘코로나19’ 방역을 놓고서도 누구는 성공적인 방역이라고 누구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 주장을 지켜본 유권자도 성향에 따라 그런 주장들에 동의하거나 그렇지 않거나로 갈렸다. 

그 결과를 얼마 전 우리는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과 정치 평론가들은 다양하게 분석했지만, 프레임을 잘못 짰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치 철학은 물론 선거 전략조차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고 오로지 ‘보수’라는 정체성에만 집착했다는 것이다. 맥락이 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알다시피 보수 진영은 참패했다. 그들은 여론이 자기편에게 있다고 주장했지만, 다수의 유권자는 그들과 생각이 달랐다. 선거 막판에 구원 투수로 나선 노정객이 마지막 기자회견 자리를 떠나며 남긴 혼잣말이 어쩌면 이번 선거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당과 후보자들) 모두 보수, 보수만 외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그렇다면 의석을 많이 얻었다고 해서 진보 진영은 마냥 즐거울까. 그럴 때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만약 보수가 각성해서 멀리 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앞으로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을 테니까. 미국처럼.

 

공화당의 심볼 코끼리와 민주당 심볼 당나귀로 표현한 미국 선거구. 사진=pixabay
공화당의 심볼 코끼리와 민주당 심볼 당나귀로 표현한 미국 선거구. 사진=pixabay

 

조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 의하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의 싹이 크게 움트던 1950년대부터 큰돈을 투자해서 두뇌집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형 기업들도 이 일에 동참했다. 그 결과가 ‘올린 기금 교수직(Olin professorship)’과 ‘하버드 올린 연구소’ 등이다. 이런 연구소들과 보수주의자들은 보수를 대변하는 지식인들을 키워서 미국 곳곳의 대학교 교수로 보냈다. 그들은 학생들을 길러냈고.

 

“(그 결과로)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두뇌집단을 통해 프레임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모든 쟁점을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45쪽)

 

미국 보수 진영은 이러한 프레임을 잘 이용하여 ‘도널드 트럼프’같은 사람도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었다. 당을 추스르기도 전에 벌써 내부 권력 다툼 조짐을 보이는 한국 보수 진영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이번 글은 보수를 위한 조언이 아니다. 다만 지난 세월 보수라고 자부하는 세력들이 보여준 행태를 다신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선거 후 많은 사람이 정치인의 품격을 이야기하는 걸 보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보수의 품격은 무엇일까. 

적어도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의 서평을 쓴 모 월간지 기자의 “우리가 왜 ‘진보’를 자처하는 얼치기들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내야 하는지를 웅변해준다”처럼 자기들만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보수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다. 그리고, 누가 진짜 얼치기였는지는 이번 선거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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