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 이야기] '시설현대화사업', 사용자 편의가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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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시장 이야기] '시설현대화사업', 사용자 편의가 우선돼야 한다
  • 최정옥 가락시장 가락몰협의회 대표
  • 승인 2019.09.22 13: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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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옥 가락시장 가락몰협의회 대표
최정옥 가락시장 가락몰협의회 대표

[최정옥 가락시장 가락몰협의회 대표] 가락시장 경매는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보통 사람들이 퇴근하는 시간에 가락시장 사람들은 일을 시작한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다. 무거운 물건을 내리고, 나르고, 싣는 일이다. 종일 농수산물과 씨름하다보면 온 몸에 생선비린내가 베고, 쉰내가 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퇴근길이 민망하고 곤욕스럽다. 

작업대 위에 대충 신문을 깔고 밥상을 차린다. 그러나 앉은 자리에서 단번에 식사를 마치는 것은 사치다. 밥이 말라가고 국이 식어가도 고객이 먼저다. 면적 541.234㎡, 2만여 명이 일하는 가락시장이지만 변변하게 쉴 곳도 씻을 곳도 없다.

긴 시간 중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시장의 현실은 비애를 넘어 자괴감마저 들게 한다. 

34년을 줄곧 달려온 가락시장이다. 젊은 청춘들은 이제 초로의 나이가 되었다. 밤새 일하며 어둠의 무게까지 짊어지고 온 사람들이다. 굵고 휘어진 손마디, 행여 아플까 자식들 얼굴조차 쓰다듬지 못한 거친 손이다. 묵묵히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세상을 떠받치는 힘이며, 이 시대의 영웅들이다. 마땅히 존중받고 존경받아야 한다.  

시장을 이야기할 때 기능과 경제성만 강조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시장의 주체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고 머무는 곳이다. 시장 종사자는 물론 고객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고안되고 배려되어야 한다. 특히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인간다움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환경을 갖추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가락시장이 단순한 일터를 넘어 진정한 삶터로 거듭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가락시장에서는 현재 시설현대화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총 3단계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그 1단계 사업 결과, 우리나라 최대 종합식자재시장인 ‘가락몰’이 완공되었다. 가락몰은 부지 5만4000여㎡, 연면적 21만여㎡에 2000여 대의 차량이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규모다. 개장한 지 4년이 되었고, 앞으로도 40여년 이상을 우리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지난 2016년 개장한 연중무휴 식자재시장 '가락몰' 전경. 화려한 건물이 들어섰지만 시장 친화적이지 않아 가락몰 상인들은 물론 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6년 개장한 연중무휴 식자재시장 '가락몰' 전경. 화려한 건물이 들어섰지만 시장 친화적이지 않아 가락몰 상인들은 물론 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도 크다. 사진=연합뉴스.

가락몰은 가락시장에 흩어져 있던 임대 유통인들을 이전시킬 목적으로 세워졌다. 그런 이유로 나도 이곳의 일원이 되었다. 가락몰의 외형은 참으로 유려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화려한 외관에 묻힌 치명적인 불편함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이렇게 큰 시장에 물건을 나를 통로조차 확보되어있지 않다면 이해가 될까? 건물로 나뉘고, 위아래로 나뉘고, 무수히 단절된 공간 앞에서 고객뿐만 아니라 우리도 길을 잃는다.

건축이 사람들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매일매일 뼈아프게 확인하고 있다. 시장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두고두고 사무친다. 

가락시장은 우리의 일터이자 삶터이다. 꿈도 삶도 이곳에 있다. 어렵게 속내를 드러내어 말하는 것은 이 문제가 가락시장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들고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시와 외면이 우리 사회 전반에 얼마나 깊고 넓게 깔려있는지, 아프더라도 직시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너무나 상식적이고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 언제나 그렇듯 노력 없이 당연히 주어지는 것은 없다. 어쩌면 이것도 당사자가 스스로에 대해 자각하고, 자존감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인 지도 모른다. 

● 최정옥 가락시장 가락몰협의회 대표는 남편과 함께 용산시장에서부터 도소매업을했던 시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30여년째 가락시장을 지키고 있다. 올해 6월까지 가락몰유통인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했고 현재 가락시장 가락몰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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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성 2019-09-22 19:48:26
지금까지 재개발, 뉴타운, 리뉴얼로 명명된 많은 현대화 작업들이 대규모 투자 대비 큰 부작용을 낳은 사례를 많이 목도했습니다. 시장의 리뉴얼도 시장의 주체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했어야 할텐데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