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언론이여, 데이터 너머 진실을 바라봐라...'팩트풀니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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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언론이여, 데이터 너머 진실을 바라봐라...'팩트풀니스' 리뷰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21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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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덴 의사이자 통계학자, TED 스타강사인 한스 로슬링의 유작
빌 게이츠가 미국의 모든 대학 졸업생들에게 선물한 책
진짜 모습 외면하는 지식인과 언론의 행태 통렬히 비판
팩트풀니스(Factfulness). 김영사 펴냄.
팩트풀니스(Factfulness). 김영사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팩트’가 넘치는 세상이다. 뉴스뿐만이 아니라 개인 간 사소한 대화에도 팩트 혹은 사실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전혀 다른 해석들이 서로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어떨 땐 팩트라는 의미가 ‘가면을 쓰다’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모두가 팩트라 쓰인 가면을 쓰고 외치지만 가면 속에는 전혀 다른 해석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첨예하게 맞선 정치인들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다.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외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사실이 주는 무게감과 존재감도 예전 같지 않다. 한때는 사실을 두고 목숨과도 맞바꾸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홈쇼핑 반품만큼이나 가볍게 생각하는 거 같다.

이런 시절에 ‘사실’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강조하는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대형서점 베스트셀러를 여러 달 차지하고 있는 팩트풀니스(Factfulness)라는 책이다. ‘한스 로슬링’이 아들 ‘올라 로슬링’, 며느리 ‘안나 로슬링’과 함께 썼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무지와 싸우다

한스 로슬링은 스웨덴의 의사이며 통계학자이다. 테드(TED) 강연으로 알려진 유명한 강사이기도 하다. 그는 또 저소득층 국가에서 의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갭마인더 재단(Gapminder Foundation)’을 설립했다. 재단은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운다”는 사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자는 제목 ‘팩트풀니스(Factfulness)’를 ‘사실충실성’으로 번역했다. 낯선 단어다. 영어 제목도 사전에는 없는 단어를 저자가 조합했다. 어색하지만 의미 전달은 확실하다. 오로지 사실에만 충실하고 집중하라 외친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사람들이 가진 편견과 오해 때문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 가진 상대적으로 낙후된 나라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 때문이라고.

그는 머리말에서 십여 개의 통계 문제를 내놓는다. “오늘날 세계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을 얼마나 될까” 라거나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같은.

저자는 세계 곳곳에 강연을 다니면서도 같은 문제를 내보았는데 정답자의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고 한다. 세 개의 보기를 골고루 찍었을 때 정답률 평균인 약 33%보다 낮았다고. (통계 데이터로 보는) 세상은 좋아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주로 부정적인 데이터를 답으로 골랐다고 한다. 물론 오답이었다.

내가 고른 보기도 정답에서 벗어나긴 마찬가지였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저자는 왜곡된 지식과 세계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러 해 동안 테스트한 사람 모두 지식이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낡은 지식이고 더러는 수십 년 묵은 지식도 있었다.” (24쪽)
“사람들이 내 질문에 무척 극적이고 부정적인 답을 하는 이유는 과도하게 극적인 세계관 탓이다.” (27쪽)

 

저자는 사람들이 가진 극적인 세계관은 우리 뇌가 작동하는 방식에서 나오기 때문에 바꾸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세상이 가진 편견과 무지에 맞서 싸우고자 결심한 것. 그가 ‘갭마인더 재단’을 세운 목적이자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다.

 

한스 로슬링.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의사, 테드(TED) 최고의 스타강사. 오해와 편견을 넘어 사실을 토대로 한 세계관을 키우고,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노력해왔다.2017년 타계.사진=연합뉴스
한스 로슬링.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의사, 테드(TED) 최고의 스타강사. 오해와 편견을 넘어 사실을 토대로 한 세계관을 키우고,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노력해왔다.2017년 타계.사진=연합뉴스

'단일 관점 본능'에 빠진 언론인과 정치인들

한스 로슬링은 사람들이 가진 세계관이 편견과 무지에 빠지게 된 이유를 ‘열 가지 본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 열 가지 본능 모두를 소개하면 좋겠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세 가지만 여기에 소개한다.

먼저 ‘공포 본능’이다. 사람들이 항상 비판적 사고를 하기는 어렵다. 특히 두려움에 떨 때는 거의 불가능하다. 머릿속이 공포에 사로잡혀 있으면 사실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 저자는 “세상과 우리 뇌 사이에 방패 격인 주목 필터가 끼어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강조한다.

재난이나 전쟁, 특히 테러 상황에서 “언론이 그 본능을 이용해 주의를 사로잡는 탓에 사람들은 세상을 과도하게 극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고. 이때 큰 영향을 미치는 게 공포 본능이라고 한다. 저자는 “두려움을 느끼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면서 “공포가 진정될 때까지 가급적 결정을 유보하라”고 조언한다.

다음은 ‘일반화 본능’이다. 저자는 이 본능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왜곡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는 매우 다른 사물이나 사람 또는 국가를 같은 범주로 잘못 묶을 수 있고, 같은 범주에 속한 모든 대상을 다 비슷하다고 단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소수를 가지고, 심지어 매우 드문 단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그것이 속한 범주 전체를 속단할 수 있다는 점이다.” (208쪽)

 

저자는 언론이 이런 본능의 친한 친구라고 지적하며 “생생한 사례에 주의하라”고 조언한다. 생생한 이미지는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만, 일반 사례가 아닌 예외일 수도 있다는 거다.

마지막으로는 ‘단일 관점 본능’이다. 저자는 “단일한 원인, 단일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이런 성향을 ‘단일 관점 본능’이라고 정의”한다. 이 본능은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으므로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그래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고 현실적인 해결책도 찾을 수 있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언론에 의지해 세계를 바라본다면, 내 발 사진만 보고 나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발도 내 일부지만, 꽤 못생긴 일부다.” (265쪽)

 

저자는 언론뿐 아니라 정치 분야도, 그리고 전문가들도 단일 관점 본능에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지식인들, 특히 언론인, 정치인, 경제인 등 전문가들이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저자는 세계, 특히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세상이 발전한 만큼만이라도 지식을 업그레이드 하길 바란다.

한스 로슬링은 위에서 언급한 본능들을 포함한 10개의 본능으로 세상의 무지와 싸웠고 편견을 바로잡고자 노력했다. 그에겐 그 모든 게 전투였다.

 

“이 책은 세계에 관한 심각한 무지와 싸운다는 내 평생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한 마지막 전투다. 요컨대 세상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비합리적 두려움을 잠재우고, 사람들의 힘을 건설적 활동으로 돌리기 위해 내가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마지막 시도다.” (30쪽)

 

 

왼쪽부터 며느리 안나 고슬링 뢴룬드, 한스 고슬링, 아들 올라 고슬링. '갭마인더' 재단의 공동설립자.
왼쪽부터 며느리 안나 고슬링 뢴룬드, 한스 고슬링, 아들 올라 고슬링. '갭마인더' 재단의 공동설립자.

어쩌면 사실은 데이터 너머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한스 로슬링의 말 그대로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전투가 되었다. 이 책 마무리를 앞두고 그는 암으로 사망했다. 갑자기 위급해져서 응급실로 향할 때도 원고를 품고 갔다고. 한스 로슬링의 아들이자 공동저자이기도 한 ‘올라 로슬링'이 쓴 맺음말을 보고 알게 되었다.

그 부분을 읽고 나자 저자의 진정성이 이해되었다. 그가 편견을 가진 지식인들을 비판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오랜 경험과 축적된 통계 데이터와 그 해석 노하우를 자랑하는 것으로도 읽혔던 것. 하지만 저자의 진정성이 느껴지자 그가 술회했던 그의 젊은 날의 편견과 실수담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대가로서 부끄러운 과거일 텐데 그는 담담하게 밝히고 있었다.

한스 로슬링은 자신이 가졌던 편견을 깨닫자 부끄러워했고, 바로 알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큰 실수에서도 교훈을 얻고 더 좋은 시스템을 일궈냈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지식인들의 편견을 지적하고 무지를 일깨운다. 특히 언론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책에서 소개한 열 개 본능 거의 모든 장에서 언론을 사례로 들었던 것. 독자들에게 공포 본능을 자극한다거나, 사안의 한 단면만 강조한다거나, 데이터 너머의 진짜 모습은 외면한다거나 하는 언론의 모습을.

한스 로슬링은 언론을 비판하면서 통계 데이터의 숨겨진 가치를 강조한다. 사실을 알고자 모은 데이터이지만 해석하기 나름일 수도 있고,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도 있기에 경고하는 것. 데이터, 숫자 해석도 중요하지만, 그 너머 가려진 진짜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사실은 어쩌면 데이터 너머 그 안쪽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는 건 어쩌면 사실이라고 쓰인 가면만 보고 있는 건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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