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헌책방에서 내 오랜 흔적과 세상의 가치를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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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헌책방에서 내 오랜 흔적과 세상의 가치를 떠올리다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9.1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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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과 동묘 헌책방 나들이로 득템의 즐거움 맛보다
희귀본 찾는 수요 많아 절판된 책은 부르는게 값이라고
내가 읽었던 책들은 어쩌면 나의 오랜 흔적 일지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헌책방이 생각나는 날이 가끔 있다. 큰 건물 지하에 있는 기업형 중고서점 말고 길 걷다 만나는 허름한 헌책방,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나고 책 먼지가 폴폴 날리는 그런 헌책방 말이다. 대형 서점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서점들이 책 유통을 독과점하고 있지만, 헌책방만이 뿜어낼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가치가 내 발길을 잡아끌곤 한다.

어느 날 오후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걸었다. 아니, 내가 헌책방 거리로 기억하고 있는 평화시장 앞 인도를 걸었다. 한때 헌책방으로 가득 메웠던 상가 1층은 모자 가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헌책방들은 가득한 모자 가게들 사이에 끼어있었다. 대략 세어보니, 기다랗게 펼쳐진 평화시장 1층에 헌책방은 10여 개뿐이었다.

청계천 책방 거리.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청계천 책방 거리.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오래전에는 헌책방도 많았고 사람도 많았었는데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책 구하러 나온 사람보다 주인이 더 많았다. 마음 편하게 책을 구경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간판도 혼란을 줬다. 분명 ‘동화책’ 전문이라거나 ‘인문학’ 전문이라고 쓰여 있건만 진열된 책들은 간판과는 상관이 없었다. 가게 불문하고 수험 서적이 입구를 차지하고 있었다.

“찾는 책 있나요?” 40년 전통이라는 어느 서점 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사실 난 찾는 책이 있었다. “혹시 ‘아리랑사’에서 나온 ‘얄개전’ 구할 수 있을까요?” 주인은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럼,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남궁동자’는요?” 40년 전통 헌책방의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구해달란 사람은 많은데 당최 물건이 나와야 말이죠.”

만약 위에 언급한 책들과 출판사를 안다면 대략 50대 이상인 거다. 70년대를 풍미한 조흔파 작가와 최요안 작가의 ‘명랑소설’들이니까. 물론 90년대 이후에 다른 출판사에서 다시 출판되었지만 내가 찾는 건 70년대에 아리랑 출판사에서 나온 그 책들이다.

청계천 헌책방 주인은 동묘 앞 풍물시장에 규모가 큰 헌책방이 있다며 혹시 모르니 거기로 가보라고 했다. 동묘에 가니 빈티지 의류 가게와 골동품 가게 사이에 헌책방들이 여럿 있었다. 가게는 몇 안 되지만 청계천 헌책방보다는 커 보였고 그만큼 책도 많았다.

 

동묘 헌책방 좁은 서가.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동묘 헌책방 좁은 서가. 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한 서점으로 들어갔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다닐 만한 통로 빼고는 책들로 빼곡했다. 혹시 여기라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솟았다. 그런데 서가 구경을 하다 보니 그곳에 간 이유를 금세 까먹었다. 추억의 책들이 많았던 것. 특히 오래전 우리 집 책장을 장식하고 있던 ‘김찬삼 해외 여행기’ 전집이 나를 옛 생각에 빠지게 했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에 나가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나갈 수 있었다. 그런 시대에 세계 여행을, 그것도 1950년대에 세계 일주를 한 여행기는 닫힌 세상을 엿볼 수 있었던 창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카메라를 꺼내니 주인이 나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압박감이 느껴졌다. 가격을 물어보니 그제야 주인 얼굴이 펴졌다. 지갑 사정도 고민되었지만, 책을 들여놓을 공간도 고민되었다. 그곳에 간 목적이 갑자기 떠올랐다.

“혹시, ‘아리랑사’에서 나온 ‘얄개전’이나 ‘남궁동자’ 있나요?” 주인은 책상에서 수첩을 꺼냈다. “대기 인원이 좀 되니까 기다려야 할거요.” 내 개인정보가 필요한 곳이 또 늘어나서 불안했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건 위로가 되었다. 주인은 기어코 내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곤 70년대 이전에 출판된 책들이 꽂힌 서가를 넌지시 알려줬다.

 

70년대 출간된 계몽사 동화책.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70년대 출간된 계몽사 동화책.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뿌연 책 먼지 사이로 눈에 익은 출판사의 책들이 보였다. 특히 계몽사에서 나온,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사주신 동화 전집이 나를 또 붙잡았다. 색바랜 표지와 푸석푸석한 종이들이 오랜 빈티지(?)를 자랑하는 듯했다. 하지만 인쇄된 글자들은 그때 그대로였다. 몇몇 책은 해외 동화를 한국 실정에 맞게 각색한 흔적도 보였다. 당시, 70년대 동화의 덕목은 어린이에게 교훈을 주는 데에 있었다. 왜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고 나라에 충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몇 권을 골라서 가격을 물어보니 주인은 내 모습을 위아래로 살폈다. 그렇게 한 박자를 쉬고는 가격을 불러줬다. 아마도 손님에 따라 가격이 변하는 모습이었다. 비싸고 싸고를 떠나서 사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에 지갑을 열었다.

오래된 동화책을 사고 보니 갑자기 생각난 책이 있었다. “혹시, 계림문고는 없나요?” 초등학교 시절 문방구에서 살 수 있었던 동화책이다. 짧건 길건 모든 작품이 책 한 권으로 편집된 시리즈였다. 명작 동화만을 모았지만, 전집이 아니라 낱권으로도 살 수 있어서 70년대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었다.

“그 책은 낱권으로는 안 들어오고 가끔 수십 권씩 들어와요. 얼마 전에도 40권쯤 세트로 들어왔는데 금세 나가더라고요. 찾는 사람이 많아서 비싸요.” 생각해보니 어릴 적 내 책장에도 계림문고가 수십 권 있었다. 물론 지금은 없다. 이사도 하고 결혼도 하고 하면서 예전에 모아둔 책들이 나도 모르게 없어진 것. 아까운, 아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헌책방, 혹은 중고서점을 가는 이유는 새책방(?)에서는 구하지 못하는 책들을 구할 때가 대부분이다. 내 경우에는 예전에 갖고 있었지만 지금 내 책장에 없는 책들을 구하고 싶을 때 주로 찾게 된다. 물론 판본을 새로 하거나 출판사를 바꿔서 다시 출판되는 책들은 그냥 사면 된다. 하지만 절판되거나 품절 되면 헌책방 혹은 (인터넷) 중고서점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동묘 풍물시장에 있는 헌책방들은 내 오래전 책장을 생각나게 했다. 나와 우리 가족이 갖고 있던 책들을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 책방 저 책방 둘러보다가 하마터면 “심 봤다!”를 외칠 뻔했다. 대학 시절에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토록 뜨거운 만남, 삼민사 펴냄.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헌책방에서 득템한 '이토록 뜨거운 만남'.사진=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이현주 목사와 최완택 목사가 쓴 ‘이토록 뜨거운 만남’이라는 책이다. 80년대 민주화운동에는 기독교계 일부도 앞장섰었다. ‘민중신학’, 그러니까 권력과 부를 가진 자를 위한 신이 아닌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를 위한 신을 외치며 약한 자들 편에 섰던 것. 저자들도 가난한 자와 억압받는 자를 위한 목회를 했고, 그런 관점에서 기독교와 성경에 관해 쓴 산문집이다. 당시로써는 진보적(혹은 위험한?) 기독교 사상을 담았다.

내게는, 내가 알았던 세상을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알아갈 때 내 생각의 한 면을 잡아주었던 책이었다. 금서까지는 아니었지만 검문당할 때 갖고 있으면 곤란한 책이었다. 부모님도 하나님에게 불경하다며 싫어한 책이었다. 내가 군대 가자마자 어머니가 버린 책 중 한 권이기도 했고.

책을 꺼내 들고 주인을 쳐다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값을 불렀다. 두꺼운 양장본 책보다 비싼 가격이었다. 인터넷 서점 앱으로 검색하니 오래전에 절판되었다는 기록만 확인되었다.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난 왜 헌책방을 찾아 나섰을까. 이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난 나의 흔적을 찾고 싶었던 거였다. 내가 읽었던 책은 어쩌면 나의 흔적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나에게 책을 읽는다는 건 생각한다는 거였고, 생각한다는 건 어떻게 행동하냐는 걸 정하는 거였다.

젊었을 때 읽었던 책들을 찾아보면서 그때 내가 한 생각과 말들과 행동을 따라가 본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하는 생각과 말들과 행동을 떠올려 본다.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세상의 가치는 어쩌면 내가 젊었을 때 만들고 싶었던 세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고 싶다.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거다.

하지만 그동안 나는 어떤 결정을 했고 어떤 행동을 해 왔을까. 그리고 우리는, 혹은 그들은 어떻게 해 왔을까. 서로 다른 가치와 가치가 부닥치는 세상이다. 서로 자기네 편이 옳다고 외친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에 들어간 티를 헐뜯느라 다들 눈이 시뻘겋게 된 것.

생각과도 다르고 말과도 다른 행동으로 실망을 줬다면 앞으로는 참된 실천으로 갚아야 하지 않을까. 내게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좋은 세상 만들자고 소리 높이는 모든 사람에게 하고픈 말이다. 헌책방에서 세상의 가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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