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렛패커드 대량감원...한국선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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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렛패커드 대량감원...한국선 불가능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09.16 15: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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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합의는 ‘절반의 개혁’...미흡한 부분은 법제화 필요

한때 세계 1위 프린터 제조업체이자, 혁신적 IT기업으로 각광받던 미국의 휴렛패커드가 대규모 감원을 단행한다. 이 회사는 16일 2만5,000~3만명의 직원을 자르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HP의 직원이 25만명이므로, 감원 규모는 10~12%에 이른다. HP는 이미 올들어 5만4,000명의 직원을 내보내 추가 감원을 합치면 올해 감원 수는 7만9,000~8만4,000명에 이른다. 올해 감원 폭이 26~28%에 이른다. 잘나가던 2011년 35만에 이르던 것에 비교하면 40% 가까운 인원을 자른 것이다.

그렇다고 HP에서 노조가 반발한다거나 파업을 했다는 기사는 아무리 뒤져보아도 나오지 않는다. 미국인, 특히 미국 근로자들은 회사가 어려우면 해당 사업분야의 종사자는 당연히 회사를 떠내야 한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부차원에서 노동개혁이 진행중이고 강성노조의 파업이 진행되는 한국에선 기업이 어려울 때 HP처럼 대규모 감원을 단행할수 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회사가 수익이 나든말든, 파산하든말든, 직원을 자를수 없는 게 한국 기업의 실정이다. 게다가 누적적자가 나는데도 임금을 올려달라고 파업을 하는 게 우리 노동계의 관행이다.

휴렛패커드는 앞으로 더 많은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돈이 되는 하이테크 분야와 수익성이 없는 프린터와 PC 분야를 나누고, 메그 휘트먼 CEO가 하이테크 회사를 맡겠다고 선언한 것에서도 알수 있다. 즉 국제경쟁에 밀려 돈이 되지 않는 프린터와 PC 사업은 계속 줄이고, 자동적으로 사람도 줄이겠다는 것이다. 회사측은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지역 공장에는 인건비가 너무 비싸다고 밝혔다. 즉 인건비가 비싼 공장은 문을 닫고 인도나 동남아, 아프리카등지의 공장에서 생산을 최소화하겠다는 뜻이다.

CEO 휘트먼은 “밑빠진 독에 물붇기”라는 표현을 썼다. 1년에 40억 달러씩 적자가 나는데 어쩔수 없는 일이다.

▲ 지난 11일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사업본부 건물 앞에서 해양사업본부 노조가 파업 집회를 열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임단협 난항을 이유로 이틀째 사업부별 순환파업을 벌였다. /연합뉴스

 

우리 노동현장에 눈을 돌려보자.

현대중공업은 강경 노선의 노조 집행부가 구성되면서 지난해 20년 만에 처음으로 4차례 파업을 한데 이어 올해 또다시 파업의 깃발을 들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세계 조선경기 침체로 2014년 3분기 사상 최대인 1조9,349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7분기 연속 적자 행진을 하고 있다. 회사측은 "저가 수주와 해양플랜트 공사의 공정 지연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고 올 연말에도 실적이 호전될 기미가 없다"며 어려운 시기에 파업만은 자제해주길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노조는 "경영 위기는 경영진 잘못"이라며 "노동자들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며 파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을 압박하기 위해 투쟁단을 스위스 취리히에 보낸다는 어처구니 없는 방침도 정했다. 통역도 대동하고...

광주에 있는 금호타이어 노조는 회사가 가까스로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작업)을 졸업했지만,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맨 노고를 인정해달라며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한달 이상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는 2009년 1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 5년만인 지난해 12월 졸업했다. 워크아웃 기간 임금 삭감과 정리해고 등으로 극심한 노사 갈등을 겪었고 노조는 이 기간 4차례 전면파업, 5차례 부분 파업을 했다. 워크아웃 상태에서 1년에 2차례꼴로 파업을 한 셈이다.

민주노총 핵심사업장인 현대차 노조도 1987년 설립 이래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거의 매년 연례행사처럼 파업했다.

부산 한진중공업은 2010년 12월 15일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근로자 400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통보하자 노조는 즉각 총파업에 들어갔고, 금속노조 간부가 309일간 크레인 고공농성을 하는 등 노사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은 적이 있다. 2013년 우여곡절 끝에 노사 합의로 회사는 정상화됐지만 조선 경기 불황에 수주 물량이 없어 직원들의 장기휴업이 불가피했고 노사 모두 힘겨운 시기를 보내다 올 6월에야 갈등이 봉합됐다.

 

미국 경제가 가장 빨리 회복세를 보이는 원인은 노동시장 탄력성

올들어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는 가운데 미국 경제만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성장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일본 경제의 잃어버린 기간은 30년에 가까워가고 있다. 유럽은 저성장 구조를 이어가며 그리스등 취약한 나라에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독 미국경제만이 회복하는 가장 큰 요인은 노동탄력성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 기업들에선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있었기 때문에 근로자들은 언제라도 해고되면 일자리를 찾아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 정리해고에 대한 불감증이 생겼다. 미국에선 실업자에 대한 복지혜택이 적으므로, 실직자들이 임시직이라도 빨리 취직하려고 한다. 하지만 직장이 없어도 여유있는 삶을 보장하는 유럽에선 굳이 일자리를 찾으려고 애 쓸 필요가 없다. 수준 높은 복지제도를 만들어 미국인들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던 유럽인들도 서서히 미국의 탄력적인 노동구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산업 혁명 이래 노동과 자본은 대립과 투쟁의 역사를 반복해왔다. 이른바 계급투쟁 이론이고, 그 논리가 상당부분 역사를 지배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세기말 거대한 국제금융자본이 세계를 단일시장화하면서 노동과 자본의 관계를 재정립시키고, 노동시장의 변화를 요구했다.

노동시장의 탄력성이 보장된 나라는 실물경제 부문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국제시장에서 주도권을 쥔데 비해 그렇지 못한 나라는 낙후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1980년대 일본과 독일에 밀려났던 미국경제가 90년대 들어 장기호황을 구가하고, 세계 경제를 리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들의 대대적인 다운사이징(인력 감축)을 들 수 있다. 1990년대초 IBM은 전체 직원의 35%인 2만2,000명, GM은 9만9,000명(29%), 보잉은 6만명(35%), AT&T는 12만명(30%)을 잘라냈다. 구석구석에서 군살을 뺀 미국 기업들은 일본과 본격적인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 지금 HP에서 일어나는 일이 벌써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 노사정 대타협 주역들이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89차 본위원회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을 만장일치로 의결한뒤 기념촬영을 위해 자리를 정하고 있다. 이기권(왼쪽부터) 고용노동부 장관, 박병원한국경총 회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김대환 노사정 위원장,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연합뉴스

 

노동구조 개혁, 갈길이 멀다

지난 13일 노사정 대타협으로 우리는 노동개혁의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앞으로 갈길이 멀다.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한국기업들이 휴렛퍄커드의 대량감원과 같은 조치를 단행할수 없다.

재계는 노사정 합의에 대해 성명을 내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기는커녕 노동 경직성을 고착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한다“며 염려했다. 노사정이 일반 해고에 관한 기준과 취업규책 변경에 관해서는 ”현행 법과 판례에 따라 요건·기준·절차를 명확히 한다“고 애매하게 합의함에 따라 구속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을 면할수 없다.

이번 합의는 절반의 개혁에 불과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앞으로 입법화 과정에서 노동탄력성의 수준을 높이는 법제화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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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19-10-08 17:14:30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정말 우리나라는 밖에서 보기에 너무 억지...회사가 죽어가고 적자가 나든말든 노조들이 데모하는걸 보고 외국인들이 너무나 이상하게 여기는 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