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곤 칼럼] 정두언, 그리고 '한나라당 소장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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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 칼럼] 정두언, 그리고 '한나라당 소장파'의 추억
  • 윤태곤 정치분석가(의제와 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 승인 2019.07.19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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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 전의원, 보수정권 출범 일등공신
이상득 퇴진 파동 후 보수정치 주류에서 멀어져
막말에 밥그릇 싸움 자한당...한국 보수정당 불쌍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17대 대통령 선거를 딱 1주일 앞둔 2007년 12월 12일,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 전략기획팀장이었던 정두언 의원을 인터뷰했다.

선거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인터뷰이 정두언은 여유가 있었다. 인터뷰어였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막바지 대선 판세보다는 대선 이후 정국 운영 방향등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나눴다.

정두언 전 의원이 별세한 후 그 인터뷰를 다시 찾아서 읽어봤다. 12년 전으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 리드에는 “최근 한나라당 선대위의 한 인사는 ‘노무현에게 '좌희정 우광재'가 있다면 이명박에게는 '좌두언 우두언'이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는 문장이 들어있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실세, 이상득 2선후퇴 이끌기도

요 며칠 간 집중 조명되기도 했거니와 그 대선 이후 정두언의 신세는 꽤 잘 알려져 있다. 그는 2008년 3월, 18대  총선을 한달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퇴진을 주장한 이른바 ‘55인 파동’에 적극 참여했다. 이상득 의원이 타격을 입고 2선 후퇴를 선언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정두언도 재선(2008년), 한나라당 최고위원 당선(2010년), 지방선거기획위원장(2010년). 여의도연구소장(2011년). 3선 성공(2012년) 등 정치적 몸값을 키워갔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광우병 쇠고기 파동에 맞물려 대운하 공약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자 “연결만 시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며 ‘4대 강’으로 방향 전환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도 바로 그였다.
 
하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이상득의 측근들은 조각단계에서부터 청와대, 국정원, 행정부의 요직을 꿰찼다. 이후 ‘만사형통’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정두언은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이명박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한나라당은 정두언을 지방선거기획위원장 등으로 썼지만, 그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단 한 번도 ‘주류’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정태근, 남경필 등과 함께 사찰의 대상에 올랐고 정권 말에는 검찰 저축은행특별수사단에 의해 구속돼 10개월의 옥고를 치르다 대법의 무죄판결로 석방되는 고초를 겪었다.

이명박과 악연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원조 친이계’의 설자리는 없었다. ‘옥새들고 나르샤’ ‘진박 파동’으로 점철된 20대 총선에서도 공천은 받았지만 낙선했고 그 이후엔 사실상 정치일선을 떠났다.

정권 창출을 위해 달리는 동안은 승승장구했고 그 목표를 달성한 이후엔 내리막길을 걸은 것이 정두언의 정치인생이다. 실은 ‘한나라당 소장파’가 다 그랬다. 

정두언이 집 주변 한 야산에서 목숨을 끊은 이후 현장에 곧바로 달려간 사람은 김용태와 정태근이었다. 김용태는 현직 의원이고 정태근은 전직 의원이라는 차이가 있지만 정치적 상황이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19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9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의 발인이 엄수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한나라 소장파들 어디에?...한국 보수정당 현주소 돌아볼 만

원조 소장파로 불리는 ‘남원정’은 어떤가? 남경필은 정치를 떠났다. 바른미래당에 가 있는 정병국은 선수는 차곡 차곡 쌓았지만 뉴스에서도 잘 안 보인다. 원희룡은 무소속 제주도백이다.

박근혜 대표 카드를 기획해 2004년 탄핵 정국을 돌파하고, 실용주의를 간판으로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이명박 정부의 인기가 급락할 때 다시 박근혜와 손잡아 정권을 재창출했고 정치적 환경이 불리할 때나 유리할 때나 당의 대표로 상대당과 논리 싸움을 벌였고 보수 정당 약세 지역인 서울 비강남에서 승리를 거뒀던 이들이다.

물론 지금 지경에 이르기까지는 그들 자신의 문제점이 가장 컸을 것이다. 하지만 상하관계가 아니라 파트너관계의 한 축으로 보였던 이명박은 그들을 버리고 형을 선택했다. 박근혜는 집권을 위해서는 그들의 손을 잡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손을 잡고 헤어지는 것은 정치뿐 아니라 인생에서 다반사다. 문제는 그들의 손을 잡았다가 매몰차게 놓아버린 두 대통령과 그 주위에 그들만큼 정치와 민심, 국정운영에 대해 고민을 한 사람이 있었냐는 점이다.

누가 누가 막말 잘 하느냐는 경쟁에 여념이 없는, 민심을 저버리는 행위는 눈감아주고 상임위원장 밥그릇 싸움에는 즉각 윤리위를 가동시키고 박근혜 정부의 주역들을 차례차례 영입하는 한국당은 말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불쌍한 것은 정두언과 ‘한나라당 소장파’가 아니라 한국의 보수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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