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민들은 왜 분노하는가..."나는 중국인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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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민들은 왜 분노하는가..."나는 중국인 아냐"
  • 최원정 글로벌에디터
  • 승인 2019.06.14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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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최원정 글로벌에디터] 홍콩에서 지난 주말부터 시작된 대규모 시위의 원인인 ‘범죄인 인도 법안’에 대해 홍콩 정부가 심의 연기를 결정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중국이 포기할 때까지 시위를 계속 이어갈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번 시위를 ‘조직적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어, 법안을 밀어붙이기 위한 강경한 진압이 예상된다.

10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들을 거리로 나서게 한 동력에는 중국의 통제 하에 현재 누리는 자유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시민들의 공포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중국인'이기보다는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홍콩 시민들이기에 홍콩의 자치를 지키기 위한 시위에 너도나도 동참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이번 시위의 불씨를 당긴 것은 '범죄인 인도 법안'이다. 표면적으로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 체제에 비판적인거나 중국 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인권 운동가들을 중국 정부가 소환할 것이라는 우려가 시민들을 시위에 나서도록 했다. 그러나 사건의 더 깊은 내면에는 홍콩의 특수한 역사가 자리잡고 있다.

150년간 영국의 식민지로 중국과는 전혀 다른 체제로 발전해왔던 홍콩은 지난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며 ‘일국양제(한 개 국가, 두 개 제도)’의 원칙을 세웠다. 외교와 안보 이슈를 제외하고 홍콩은 50년간 이전과 같은 고도의 자치를 유지한다는 원칙으로, 중국의 사회주의와 별도로 홍콩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도록 보장한 것이다. 자치 원칙에 따라 홍콩의 정부수반 역시 선거로 선출되는 홍콩인 행정장관이 맡는다.

그러나 ‘고도의 자치권’이라는 개념이 모호해 해석에 따라 전혀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중국은 홍콩의 내정에 간섭할 수 없지만 그동안 중국은 서서히 홍콩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결국 이번 법안으로 홍콩인들이 누려왔던 자유의 폭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우려한다. 예를 들어 홍콩은 현재 중국 영토안에서 천안문 사태를 공개적으로 추모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면 중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천안문을 입 밖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에는 홍콩의 출판업자 5명이 갑자기 실종된 일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중국의 비리나 스캔들 등을 다룬 책을 출판했는데, 홍콩인들은 중국 정부가 이들의 실종에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홍콩의 예술가들은 작품 발표에 앞서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고 불안감을 호소해왔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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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혁명 좌절…정부 주요인사 친중국파가 장악 

현재 홍콩의 정부수반인 행정장관은 1200명의 선거위원회에서 간접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홍콩에서는 이들 선거위원회가 민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직선제의 보통선거로 바꾸자는 요구가 커졌는데, 2014년 중국 정부는 이를 수용하겠다면서 홍콩 행정장관 선거 출마 자격을 행정장관 지명위원회가 선정한 2~3명으로 제한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문제는 임기 5년의 지명위원들이 친중국파 인사라는 것이다.

무늬만 직선제일 뿐 사실상 친중 성향의 인사를 수반으로 앉히겠다는 중국 측 의도에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며 시위대가 홍콩 중심가를 점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경찰의 최루가스 공격에 시민들이 우산을 펴 막아내면서 ‘우산혁명’으로 불리게 됐다. 79일간 지속된 우산혁명은 강제해산됐고, 이들의 직선제 요구도 무산됐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사진=AFP연합뉴스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 사진=AFP연합뉴스

 

우산 혁명을 강경진압하는데 성공해 중국 지도부의 눈에 든 인물이 현재 행정장관인 캐리 람이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범죄인 인도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법안 심의를 연기했지만, 법안 추진을 강행할 것이라는 입장은 고수하고 있다. 또 람 장관은 이번 시위를 ‘조직적 폭동’이라며 또다시 강경 진압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홍콩인 “나는 중국인 아니야”

홍콩인들은 대부분 중국계이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에서 찾지 않는다. 홍콩대학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홍콩인의 15%만이 그들을 중국인으로 불렀으며, 나머지 응답자들은 ‘홍콩인’이라고 답했다. 이 같은 경향은 젊은 사람들에게 더 두드러져 18~29세 사이의 젊은이들 가운데서는 단지 3%의 응답자만이 자신을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다. 

BBC는 이 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홍콩인들이 150년간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며 사법제도와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차이가 벌어진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난 몇 년간 홍콩의 반중국 정서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젊은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이 같은 홍콩의 정서를 면밀히 주시하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 같은 홍콩인들의 정체성 역시 범죄인 인도 법안이 홍콩을 중국에 더욱 종속시킬 것이라는 공포감을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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