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케이 칼럼 파문, 일본 언론의 도착(倒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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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케이 칼럼 파문, 일본 언론의 도착(倒錯)
  • 하종오 편집인
  • 승인 2015.09.0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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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산케이신문(産經新聞)의 노구치 히로유키(野口裕之) 정치부 전문위원이 이 신문 인터넷판 지난달 31일자에 게재한 칼럼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사대주의라고 비판하며, 박 대통령을 일본 낭인들에 의해 살해된 명성황후에 비유했다. 그는 "이씨 조선(조선시대)에는 박 대통령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며 명성황후를 '민비'로 칭하고는 "일본의 청일전쟁 승리로 조선은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 대원군파에 다시 힘이 실려 청나라라는 후원자를 잃은 민씨 파는 쇠퇴했다… 민씨 파가 1895년 러시아군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한 지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된다"고 썼다.

그는 또 "박 씨(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암살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을 필두로 사대주의를 들며 개혁을 모색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 출병 때 명나라 군의 일익으로 행군한 이씨 조선 군과 같은 '사대 두루마기'를 보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든다", "한국에 중국은 침략자인데 한국이 국가 전체의 도착(倒錯)에 대해 아픔과 가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도착에 대한 자각·감각이 없다"고도 했다.

 

▲ 일본 산케이신문 인터넷판 8월 31일자에 실린 칼럼 '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 /인터넷 캡처

 

다룰 가치조자 없는 일본 언론의 도착(倒錯)

한 구절 한 구절이 언론인의 글이라기보다 한국이라는 국가와 그 역사에 대한 증오와 멸시로 가득찬, 독설도 못되는 수준의, 일본말로 ‘찌라시’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이다. 같은 언론으로 다룰 가치조차 없다는 생각이다. 그야말로 도착(倒錯), 정신병적인 내용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글이 일본의 5대 신문 안에 든다는 산케이라는 신문에 칼럼이라는 간판을 달고 버젓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케이는 잘 알려져 있듯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보수 계열의 신문이다. 발행 부수 210만여부로 요미우리, 닛케이, 마이니치, 아사히 신문과 함께 5대 전국지다. 일본 민족주의, 반공산주의 등을 내세우며 특히 한국과 중국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여왔다. 일본 언론 중에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기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산케이의 한국 관련 보도가 소위 ‘망언’으로 불리며 말썽을 일으킨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난해 8월 가토 다쓰야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의혹 기사를 게재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것이 대표적인 한 예다.

지난달 초에는 열대야를 피해 집 근처 공원 등에서 더위를 식히는 한국인들에 대해 ‘에어컨이 없거나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밤에 갈 곳이 없어 이런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며 한국을 젊은이들이 노숙하는 가난한 나라라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 기사에 달린 일본인들의 댓글 중에는 “차근차근 합병 전으로 돌아오고 있구나”라는 것도 있었다. 한 국내 언론이 이 기사에 대해 사실 확인을 했느냐고 산케이 한국지사에 물었더니 "한국지사와는 무관하다. 오사카 지사에서 쓴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도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연유를 모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답이 돌아왔다 한다.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겸 특파원이었던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74)는 ‘망언 제조기’로까지 불린 인물이다. 그는 2009년 "비빔밥은 겉으론 예쁜 모양이지만 실제 먹을 땐 엉망진창인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칼럼을 산케이에 해외 칼럼으로 썼는가하면, 지난해에는 “한국 남자들이 여자로 좋아하는 건 김연아보다 아사다 마오”라는 인터뷰를 했다. 그는 1989년부터 일본 교도통신과 산케이신문의 서울지국장으로 20년 넘게 주재했고 지금도 한국 관련 기사를 쓰고 있다. 그는 심지어 “한국에서는 위안부 뉴스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다... 대외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위안부”라고 비꼬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일본 극우보수 언론의 실체 보여준 사건

이런 것들은 언론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정면으로 다루기도 민망할 정도의 저열한 예들이다. 작정하고 혐한을 부추기고 있구나 하고 무시해도 될 정도의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유는 다름아닌 산케이라는 신문의 정체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보수 우익을 자처하는 산케이가 자국 내 언론 중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아사히와 역사교과서 문제를 놓고 지난 2005년 4월, 5일 동안 사설로 공방을 주고 받은 것이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달 6일 일본 문부과학성이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하자 아사히는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교과서 이대로 좋은가?’라는 사설을 실었다. 아사히는 “새역모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빛과 그림자가 혼재하는 근현대사에 대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면만을 보려고 하는 왜곡된 역사관을 관철하려는 것”이라는 요지로 비판했다.

그러자 산케이는 ‘교과서 문제, 우리를 놀라게 한 아사히신문 사설’이라는 사설로 공격하고 나섰다. 산케이는 "새역모는 교과서에 종군위안부 등 자학적인 기술이 늘어나자 일본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바른 역사를 전하고자 모인 사람들인데 그 멤버가 집필에 참여한 교과서가 탐탁치 않다고 해서 배제하고자 하는 아사히신문의 태도야말로 편협 그 자체”라며 공박했다.

두 신문의 사설 공방은 5일 동안 이어지다 11일 산케이가 반박 사설을 싣지 않음으로써 일단 끝이 났다.

새역모 교과서를 출판한 후소샤는 일본의 거대 미디어그룹인 후지산케이 그룹 산하 출판사다. 산케이신문을 비롯해 후지TV 등이 속한 미디어그룹이다. 산케이가 새역모와 후소샤 편을 들며 아사히에 시비를 건 게 이해될 만도 하다.

평소 산케이의 논조는 이른바 보통국가론이다. 일본도 군대를 보유하고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하며 그러기 위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바로 아베 현 일본 정권이 안보 관련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그 내용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앞서 말한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와 센카쿠 열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 등 일본의 우경화와 관련된 문제에서 산케이는 언제나 앞장서 왔다.

 

산케이, ‘기사 삭제’ 요구에 어떻게 나올까

정부는 주일 한국대사관을 통해 산케이 측에 기사 삭제를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1일 브리핑에서 "역사 왜곡과 역사수정주의 DNA를 갖고 과거사에 대해 후안무치한 주장을 일삼는 일본 내 특정 인사와 이와 관계되는 언론사의 터무니없는 기사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논평할 일고의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사의 내용도 문제이고, 그런 기사를 실은 언론사도 품격의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논평할 가치도 없다면서도 기사 삭제,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문제 있는 기사에 대해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별개 차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난감할 것이다. 이웃 국가와 역사에 대해 ‘민비’니 ‘사대 두루마기’니 ‘국가 전체의 도착’이니를 운운하는 일개 언론사와 칼럼니스트에 대응하기도 힘들다. 산케이와 그 칼럼니스트가 한국 정부의 기사 삭제 요구에 어떻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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