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팬리포트]日 만연한 性차별, 도쿄대도 예외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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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리포트]日 만연한 性차별, 도쿄대도 예외 아니야
  • 최가영 일본통신원
  • 승인 2019.04.15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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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여성학자 우에노 도쿄대 명예교수 신입생 축사 연일 화제
"카와이이(예쁜)가 여성평가 기준돼선 안돼"
올해 도쿄대 여학생 비율 18.1%
어제 일본무도관에서 도쿄대 입학식이 열렸다. 사진=도쿄대 홈페이지
지난 12일 일본무도관에서 도쿄대 입학식이 열렸다. 사진=도쿄대 홈페이지

[오피니언뉴스=최가영 일본통신원] 일본의 명문 상아탑인 도쿄(東京)대학교 입학식이 올해 신입생 3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2일 일본무도관에서 열렸다. 축사에 나선 인물은 평소 페미니즘에 관한 소신발언으로 논쟁에 불을 지펴온 여성학(젠더연구) 거두인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도쿄대 명예교수였다. 이 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NPO법인 위민즈 액션 네트워크(Womens Action Network) 이사장과 명예교수를 겸임하고 있는 그녀의 축사는 이전 세기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오늘날 일본 여성의 지위를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우에노 교수의 축사는 지난 주말 '후쿠시마 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 관련 일본이 WTO(세계무역기구)에서 한국에 역전 패소 당한 사건보다 인터넷 상에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사회 진출에 있어서 여전히 남성보다 뒤처져있는 일본여성의 현실을 신랄하게 들춰냈기 때문이다.       

◆ "143년 전통 도쿄대, 왜 여학생 비율 20%도 안되나" 

우에노 교수는 일본 지성의 집합체가 돼야 할 도쿄대에서 조차 일본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로 축사를 시작했다. 그녀는 그 근거로 올해 신입생 중 여학생의 비율이 18.1%에 불과한 것을 지적하면서, "도쿄대 입학자 중 여학생 비율은 장기간에 걸쳐 20%의 벽을 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명문 교토(京都)대의 여학생 비율도 도쿄대보다 약간 높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교토대에 입학한 학생 중 여학생 비율은 21.4%였다. 서울대의 여학생 비율은 2007년 이후 40%대 전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다시 우에노 교수의 축사다. 그녀는 "문과나 이과 마찬가지로 여자가 우위인 경우가 많다"는 문부과학성(한국의 교육부에 해당) 담당자의 말을 인용하며, 도쿄대에서 여학생 비율이 낮은 것은 여학생들의 학업능력보다는 기성세대인 학부모들의 인식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우에노 교수는 축사에서 "(일본에는 여전히)아들은 4년제를 보내도 딸은 전문대로 충분하다는 인식을 가진 부모가 많다"면서 고학력이 여성 인생에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선진국인 일본에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실례도 들었다.   

그녀는 도쿄대라는 타이틀이 남성에게는 큰 메리트가 되지만 여성에게는 핸디캡으로 작용한다면서 "미팅에 나가 도쿄대 재학 중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밝히는 남학생과 달리 여학생들은 '도쿄...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고 본인의 도쿄대 재학 사실을 숨기는 게 대부분"이라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는 일본사회에서 남성의 가치는 성적에 비례하지만 여성의 가치는 성적보단 '예쁜(かわいい·카와이이)'이라는 형용사로 평가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게 우에노 교수의 설명이다.  그녀는 또 이런 사회 분위기에 대해 "우수한 여성은 남성에게 위협이 된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녀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도쿄대의 교직원 통계 자료를 제시하기도 했다.  

도쿄대 입학생 중 여학생은 2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석사과정 25%, 박사과정 30.7%로 진학 단계별로 점차 늘어난다. 그러나 이후 교수 임용시 남녀 비율을 보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 

현재 도쿄대의 여성 조교(한국의 조교수에 해당)는 전체의 18.2%이고, 준교수(부교수에 해당) 11.6%, 정교수는 7.8%이다. 더욱이 간부급인 학과장·학장으로 올라가면 여성비율은 더욱 줄어든다. 현재 도쿄대의 학과장·학장 중 여성은 0.7%에 불과하고 총장은 1877년 설립 이래 단 한 명도 없었다.

도쿄대 입학식 축사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우에노 치즈코씨. 사진=도쿄대 홈페이지
도쿄대 입학식 축사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우에노 치즈코씨. 사진=도쿄대 홈페이지

◆ '성차별 민낯' 드러낸 축사 ...日 SNS 뜨겁게 달궈  

우에노 교수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말한다. 도쿄대는 변화와 다양성을 개척해 온 대학이라는 것이다.

도쿄대는 여성이자 당시(1993년)에는 학문분야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학 연구자 우에노 치즈코씨를 교수로 채용했을 뿐 아니라, 국립대 최초로 재일한국인 강상중씨, 고졸 건축가 안도 타다오(安藤忠雄)씨, 눈과 귀에 이중적인 장애를 가진 후쿠시마 사토시(福島智)씨를 교수로 채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녀는 축사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여성도 남성처럼 행동하고 싶다거나 약자가 강자가 되겠다는 사상이 결코 아니다. 페미니즘은 약자가 약자인 채로 존중받을 것을 요구하는 사상"이라고 정의했다.

우에노 교수는 또한 "여러분들은 노력하면 보상받는다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을 것. 하지만 노력해도 공정하게 보상받지 못하는 사회가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노력하면 보상받는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여러분들의 노력의 성과가 아니라 환경 덕분"이라며, "노력을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만 쓰지 말고 축복받은 환경과 능력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써달라"고 당부하며 축사를 마쳤다.

축사를 시작하며 언급한 도쿄의과대(도쿄대와는 다른 사립 의과대)에서 입시성적을 조작하여 여학생을 대거 탈락시킨 문제와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일본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다. 이렇게 그녀는 일본사회에 만연한 성차별 문제에 있어서도 도쿄대 학생들이 리더십을 발휘해줄 것을 부탁했다.

평소 전투적인 이미지를 가진 그녀의 날카로운 현실비판과 따뜻한 격려가 담긴 축사에 인터넷 댓글과 트위터 등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입학식에서 할 이야기였나"라고 불편해하는 의견도 있는 한편, 뜨거운 찬사가 이어졌다.

"일본 최고의 대학 입학식에서 페미니즘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 "우에노 치즈코 교수의 축사,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노력이 허락된 지금까지의 환경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권이라는 시사는 신입생에게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며 도쿄대가 발표한 우에노 치즈코씨의 입학식 축사를 인용한 글이 줄을 이었다.

◆이유있는 '82년생 김지영(日번역본)' 품절 까닭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에서는 한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겪어온 성차별 등을 그린 한국의 베스트셀러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일본어판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조남주 작가가 평범한 여성으로써 겪는 부당한 경험을 담담한 필체로 써 내려간 이야기에 공감하는 일본여성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82년생 김지영'은 지난해 말 발매 후 연이은 품절로 올해 2월, 발매 석달도 안돼 7쇄에 돌입하며 8만부를 팔아치웠다. 일본 출판업계에선 아시아 소설 번역본으로는 이례적인 기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어판 해설을 쓴 프리랜서 작가 이토 준코(伊藤順子)씨는 공부에서 만큼은 '김지영'도 아들과 대등하게 부모의 기대와 지원을 받았다고 지적하며 최근 20년 사이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 여성의 지위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우에노 치즈코 명예교수는 

1948년 도야마(富山)현에서 출생. 아버지는 내과의사였고 일본에선 흔치 않은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했다.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인 우에노 교수는 교토대를 졸업하고 도쿄대 교수로 오래 재직했다. 교토대 재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투쟁 속에서도 여성차별을 경험했다고 하는 그녀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로서 젠더문제를 연구해왔다. 

1982년 헤이안(平安)여학원 단기대 조교수로 학계에 입문하여 1989년 교토세이카(京都精華)대 인문학부 조교수, 1993년 도쿄대 대학원 문학부 조교수를 거쳐 1995년 정교수가 됐고 2011년에는 명예교수에 올랐다.

2013년에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문제에 대하여 "오키나와의 마음을 돈으로 살 수 있는가? 아니, '강간한 후 돈다발을 던지고 가버리는 남자'같은 아베(安倍)정권의 각별한 배려"라는 트위터 글 등 과격한 발언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국내에 소개된 저서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내셔널리즘과 젠더', '결혼제국',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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