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저주, 베네수엘라…네덜란드 병에 망한 경제

마두로 퇴진하면 당장 빵이 나오나…국제유가 하락에 단일 상품 경제 치명타 김인영 에디터l승인2019.01.26 18:4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남미 베네수엘라에서 나오는 뉴스는 늘상 해외토픽 정도로 소개된다.

인플레이션 8만%, 2018년까지 3년 연속으로 경제성장률이 10% 이상 떨어져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식량과 의약품이 부족해 국민 몸무게가 평균 10.8kg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있다. 인구의 90%가 빈곤층으로 떨어졌고, 10명중 1명이 해외로 탈출했다.

이 나라에는 대통령이 2명이다. 집권자인 니콜라스 마두로(Nicolas Maduro)가 부정선거로 대통령직을 연임하고 있고, 야당 지도자이자 국회의장인 후안 과이도(Juan Guaido)가 마두로의 대통령직 사임을 요구하며 임시대통령을 선언했다. 미국과 유럽, 브라질은 과이도를 대통령으로 인정한다고 선언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마두로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 베네수엘라 유전 /자료: 미국 외교협회(CFR)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 석유매장량을 보유하고, 전세계 6위의 원유생산국이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정치적 대혼란에 빠져들었을까.

바로 석유의 저주(curse of oil)다.

미국 외교협회(CFR)의 남미 전문가 로시오 카라 라브라도르(Rocio Cara Labrador)는 협회 홈페이지에 게시한 글에서 석유대국 베네수엘라 경제의 몰락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고 정리했다.

네덜란드 병은 경제학 용어로, 자원 부국이 일시적으로 경제 호황을 누리지만, 물가와 통화 가치상승으로 국내 제조업이 쇠퇴하고, 결국 경제 침체를 겪는 현상을 말한다. 1959년 네덜란드는 북해 유전의 발견으로 석유 수출로 경제 호황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통화가치의 상승과 물가 급등으로 국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결국 1960~1970년대에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게 된다.

그 현상이 베네수엘라에서 나타났다. 나라 경제는 국제유가의 등락에 좌지우지되고, 좌파가 집권하면서 국민들이 정부가 주는 복지에 만족하다가 외국 자본이 이탈하고 생활필수품을 수입할 돈이 바닥난 것이다. 원유 생산시설을 개수하거나 설비를 들여올 자금도 없고, 기술자들도 다 떠나버렸다. 베네수엘라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원유생산설비를 들여오면 될 터인데, 그 길은 정권 교체 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1922년, 유럽계 석유회사인 로열 더치셸의 지질조사팀이 베네수엘라에 엄청난 석유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곧바로 100여개의 해외 석유기업들이 덤벼들었다. 군인 출신인 독재자 후안 비센테 고메즈(Juan Vicente Gomez) 대통령은 외국 석유회사의 원유 개발을 적극 지원했다. 덕분에 베네수엘라 원유생산은 1920년대에 100만 배럴에서 1억3,700만 배럴로 폭발적 증가를 기록했다. 아랍지역에서 원유가 생산되기 이전의 시대였고, 1929년 베네수엘라는 미국 다음으로 2위 원유생산국으로 부상했다. 1930년대에 로열 더치셸, 스탠다드오일, 걸프 등 3개사가 베네수엘라 석유시장 98%를 장악했다.

이때부터 네덜란드 병이 시작되었다. 베네수엘라의 통화 볼리바르는 초강세로 뛰었고, 1935년 고메즈가 죽을 무렵, 원유 수출이 전체 수출의 90%를 차지했다. 고메즈의 후임 집권자들은 석유에서 번 돈을 국고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연구했다. 1943년 베네수엘라는 석유메이저들의 수익의 절반을 국가가 회수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이후 국고 수입이 5년만에 6배나 증가했다.

 

1958년 베네수엘라는 군사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 정부로 이행키로 했다. 이때 민주행동당, 기독교사회당, 민주공화국연합 3개당 대표들은 푼토피호 협정(Punto Fijo Pact)을 체결해 공정한 선거절차를 지켜 민주적 정치 체제를 구현하자고 합의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외친 이들 3개 정당은 이면 계약을 체결했다. 3개 정당은 득표율에 따라 유전을 나눠먹는다는 뒷거래를 한 것이다. 독재자 혼자서 먹던 것을 3개 정당이 나눠 먹기로 했으니, 이것도 민주적이라고 할수 있을까. 어쨌든 베네수엘라의 원유는 권력자들의 몫이었다.

 

▲ 자료: 미국 외교협회(CFR)

 

1960년 OPEC이 창설되면서 베네수엘라는 사우디,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와 함께 카르텔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했다. 그해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영석유회사를 설립하고, 수익의 65%를 세금으로 걷었다.

1973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이른바 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하고, 아랍 산유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하면서 베네수엘라는 초호황을 구가했다.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욤키푸르 전쟁 직후 2년간 베네수엘라 국고에 100억 달러가 쌓였고,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라틴아메리카 1위를 차지했다.

정치인들도 석유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겼다. 1972~1997년 사이에 정치인들이 원유생산에서 부정으로 착복한 금액이 1,000억 달러에 이른다는 추산이 나올 정도다.

1976년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Carlos Andres Perez) 대통령은 석유 국유화 선언하고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PDVSA: Petroleos de Venezuela, S.A)를 설립했다.

 

하지만 1980년 들어 글로벌 석유생산 과잉 현상이 나타나며 국제유가가 급락했다. 미국 등 해외에서 원유 정제공장을 인수하는데 막대한 외채를 끌어쓰던 베네수엘라의 재정이 서서히 고갈되기 시작했다. 1989년 베네수엘라는 국가부도를 선언하고 IMF에서 긴급수혈을 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IMF의 구제금융 조건에 따라 베네수엘라는 긴축정책을 취하게 되었고, 복지예산을 줄이자, 그동안 석유에 의존해 맘껏 쓰고 놀던 국민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1992년 공수부대 중령이던 우고 차베스Hugo Chavez)와 젊은 장교들이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1998년 대선에서 승리해, 1999년부터 베네수엘라에 사회주의 노선을 도입한다. 게다가 막대한 석유자원을 등에 업고 반미 운동을 전개했다.

2002년 차베스는 남미 독립운동의 지도자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본따 볼리바르 혁명을 주도했다. 그는 수백여개의 민간기업을 국영화하고, 엑손모빌, 코노코필립스 등 해외메이저들이 운영하는 자산을 몰수했다. 2002~3 국영석유회사 PDVSA의 노동자가 파업을 하자, 차베스 2만여명에 가까운 직원들을 해고했다. 핵심적인 석유기술자들이 해외로 떠나버렸다. 그는 또다른 반미국가 쿠바에 공짜로 석유를 주며 원조하기도 했다.

대중은 환호했다. 기름이 쏟아지는한 정부에서 주는 복지예산을 쓰기만 하면 된다. 질좋고 값싼 제품을 수입해 마구 썼다.

차베스는 대중적 지지를 힘입어 임기조항을 변경해 장기집권을 꾀했다. 하지만 그는 2013년 3월 암투병 끝에 사망했다. 차베스는 니콜라스 마두로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마두로는 그후 집권에 성공했다.

 

▲ 자료: 위키피디아

 

하지만 2013년부터 베네수엘라의 전략적 석유 자원이 고갈되어 가는 신호가 나타났다. 정부 부채가 2배나 늘어났다.

베네수엘라 경제를 초토화시킨 주범은 미국의 셰일가스였다. 1998년 미국 땅에 무진장 매장되어 있는 셰일가스 생산기술이 개발되어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2014년엔 국제유가가 폭락했고, 베네수엘라 경제도 급강하했다.

경제가 무너지면서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고, 사회불안도 심화되었다. 마두로는 선거를 조작하고, 야당인사들을 구금하는등 정치적 탄압을 서슴치 않았으며, 2017년에는 일체의 시위를 금지 조치를 단행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지난해 5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고, 마두로만 단독으로 출마해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었다. 이에 야당지도자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은 대선이 불법, 부정 성거이므로, 마두로 대통령의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전체 수출의 98%, GDP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석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사적 영역의 기업이 소외되고, 땀 흘리며 일해야 하는 농업이 무너졌다. 그러다 석유값이 급락하고, 원유생산설비가 가동되지 않게 되자 먹을 빵조차 생산하지 못하고 외국서 수입해야 하는 여건이 되었다.

마두로가 퇴진한다고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당장 빵이 돌아가지 않는다. 빵을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


김인영 에디터  opinionnews64@daum.net
<저작권자 © 오피니언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여의도동 44-34 유니온타워 601-602호  |  대표전화 : 02)780-9533   |  팩스 : 02) 780-9545
등록번호 : 서울 , 자00502  |  발행·편집인 : 문주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송현 Copyright © 2019 오피니언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