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변화의 시대에 나만의 적응방법

유행과 시류에 맹종하기보다 기본에 충실하며 적응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조병수 프리랜서l승인2018.12.3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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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프리랜서] 지금은 건물주인이 바뀌었지만, 소공동에 있던 시중은행 본점건물에는 정문 쪽에 2대의 엘리베이터가 있고, 후문 쪽에 1대가 있었다. 경영진이 출입할 경우에는 그 몇 안 되는 승강기 중 하나를 대기시켜 놓곤 하느라, 유동인구가 많은 시간대에는 제법 불편한 점들이 있었다.

나중에 개혁적인 은행장들이 승강기 대기 관행을 없애도록 하는 그런 변화와 혁신의 시절에도, 높은 사람이 나타나면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뒤로 빠지는 직원들을 불러서 같이 타게 하면서까지 권위주의를 탈피하려고 애쓰는 분들을 보면서, 조그만 의식의 변화조차도 그렇게 어렵고, 조직의 기업문화 정립에는 최고경영진의 철학과 의지가 중요함을 절감하기도 했다.

그 후 새로 지은 본점건물에는 승강기 수도 늘어나고 임원·내빈용이 따로 설치되어서 별문제가 없었지만, 그 전용 승강기조차도 미리 잡아두지 않도록 하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IMF사태를 겪으면서, 세상은 이미 그런 것조차도 나무랄 정도로 변해 나간 것이다.

 

2003년 5월, 대통령을 수행하는 방미사절단의 일원으로 뉴욕에 온 A금융그룹 회장과 함께 미국 4대 투자은행인 L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당시 세계를 풍미하던 투자은행 최고경영자의 사무실이 생각보다 훨씬 작은 것에 놀랐다.

맨해튼 타임스퀘어 근처에 있던 32층짜리 사옥의 한 코너, 사방이 유리로 공개된 조그만 사무실의 책상 앞에는 서너 명이 겨우 둘러앉을 수 있는 작은 탁자와 간이의자가 있고, 한 켠에 개인소장품과 책들이 놓여있는 아담한 서가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 곳에서 소탈한 웃음과 제스처로 서가에 놓인 자녀들 사진을 보여주며 담소를 나누던 그 회장의 모습은, 상하간의 엄격한 질서에 익숙하던 시절의 이방인에게는 또 다른 충격으로 마음에 닿았다.

그런데 면담직후 그곳에서 멀지 않은 월도프 애스토리아호텔에서 열리는 대통령 공식오찬장소 쪽으로 들어가는데, 조금 전에 승강기 앞에서 우리 일행을 배웅하던 그 회장이 한 걸음 먼저 걸어가며 인사하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그 회장 주변에는 크게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 흐르듯 자연스런 보좌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우리들에게 익숙하던 풍경과는 다른, 세련된 움직임과 절제된 시스템을 상상하며 내심 감탄한 일이 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에, 미국 M은행 뉴욕 임원과의 오찬자리에서 “주말인 금요일에 직원들의 캐주얼 복장을 허용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예전부터 들어왔던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은행원의 상징으로서 끈 있는 구두와 정장을 입는 의미”를 언급하며 보수적인 의견을 개진하면서도,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IMF사태직후 탄생한 우리의 합병은행에도 2000년도에 ‘오전근무를 하는 토요일에는 캐주얼 복장’이라는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바깥출입이 잦은 직책 때문에 토요일임에도 정장을 입고 나갔다가 따가운 시선을 느끼기도 했다.

의복을 바꾸어 입어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地動說)이 나오거나 인류의 위대한 발명들이 이루어진 것이 아닐진 데, 요즈음은 웬만한 직장주변이나 사무실 거리에는 시(時)도 때도 없이 작업복이나 등산복 차림 같은 것이 아니면 갑갑해지는 그런 세태가 되어버린 것 같다.

 

물론 모든 일에는 그 시대적 배경이 있을 것이다. 승강기의 대기나 수행원 여부가 권위적이냐를 가늠하는 차원에서 거론되기도 하고, 직장인들의 복장조차도 창의나 개혁이라는 유행어 아래에서 또 다른 획일주의가 스며드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형태로든 효율적인 역량을 모으고, 어떻게 하든 지속 가능한 조직으로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권위주의 탈피와 의식변화에 노력하던 그 시중은행도 IMF구제금융시절의 파고(波高)에 은행간판을 바꾸어 달았고, 미국의 L투자은행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맞으며 간판을 내렸다.

직원들 복식(服飾)까지 신경 쓰며 변화를 추구했던 앞서의 그 합병은행이나 홍콩계 은행에 인수되어있던 미국의 M은행도 각각의 사정에 따라서 자신들의 이름을 지켜내지 못했다.

이런 경우들을 감안한다면, 모범경영사례(best practice) 또는 개혁이란 이름아래 남의 것을 좇는 모방이나 유행을 따라가는 새로운 의미의 획일주의는 외부의 변화에 대처하며 생존하는데 있어서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제는 지금까지와 같은 변화들과는 결을 달리한 엄청난 외부환경의 변화가 4차산업혁명이란 이름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저 막연히 남의 일로만 여겨졌던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과 로봇공학이 사람만이 가능했던 영역을 대체해 나가는 기계화,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 사람들의 자리가 하나 둘씩 눈에 띄게 기계로 바뀌는 모습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다.

대학캠퍼스나, 도심 빌딩에 남아있던 주차관리실들이 빠른 속도로 무인(無人) 카드결제시스템으로 바뀌어가고, 패스트푸드점이나 일부 식당의 주문방식도 어느 틈엔가 기계(kiosk)를 상대하는 것으로 바뀌어 있다. 상가 몰에는 바리스타를 대신해서 로봇 팔이 움직이면서 커피를 제조해서 전달하는 로봇카페가 선보이고 있다.

보다 높은 수준이나 전문적인 분야에서의 인공지능·자동화 사례에 무심한 사람임에도, 산업혁명이란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다.

 

▲ B 무인 로봇카페 /사진=조병수

 

지난 10월에 발표된 『AI시대의 미래와 도전』이란 맥킨지 자료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세계 노동인구(global workforce)는, 2016년을 기준으로 한 직업의 60%에서, 그 활동의 약 30%가 자동화될 것이란 전망과 함께, 세계 노동인구의 15%(4억명)가 자동화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상치’도 제시되어 있다.

물론 자동화된 기계 때문에 일자리가 사라져가면 또 새로운 분야나 다른 차원의 일자리도 생겨나간 하겠지만, 과연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 일지가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 어떤 변화가 닥쳐오더라도, 개인이든 조직이든 살아남는 것이 중요한 것일 테고,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도 있다.

막연히 남의 것이나 시류(時流)를 따라가기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나만의 생존방법’으로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에 도전하고 또 적응해 나가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병수 프리랜서  bscho5@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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