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좋아하는 밴드 ‘Queen’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입소문이 나고 있다. 특히 Queen 하면 생각나는 ‘프레디 머큐리’의 삶과 음악이 많이 담겨있어서 그 시절을 함께 살았던 사람들의 추억을 제대로 자극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물론 젊은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음악이 흘러나와 공감할 수 있었던 것도 성공의 요인이다.
나도 영화를 보고 옛 생각이 나서 관련 글을 썼다. 포털에 달린 댓글을 보니 공감되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많은 사람이 어릴 적 “록 키드”였음을 고백하고 있었다. 강렬한 록 음악을 들으며 세상에 반항하며 숨을 쉬었노라고.
이와 비슷한 고백을 바다 건너 일본의 유명 소설가에게서도 들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영화 <남쪽으로 튀어라>의 원작 소설가로 알려진 ‘오쿠다 히데오’가 쓴 <시골에서 로큰롤>에서다. 소설은 아니고 자전적 산문이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일본 시골에서 자란 오쿠다 히데오의 ‘록 음악 연대기’이다. 그가 좋아한 뮤지션과 앨범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하며 소개하는 것. 책에서 다룬 뮤지션들과 앨범들로 1970년대를 풍미했던 록 음악의 계보를 정리할 수 있을 정도다. 아마도 70년대와 80년대를 산 한국 청소년들도 비슷한 순서로 경험했을 것이다.
그 리스트를 나열해 보면 ‘비틀즈’, ‘티렉스’,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우드스톡’ 등 70년대를 풍미한 밴드와 앨범을 망라했다. 또한 ‘보즈 스캑스’와 ‘스틸리 댄’ 등 마니아적인 뮤지션은 물론 요즘 화제인 ‘Queen’도 비중 있게 다뤘다.
이러한 밴드와 앨범에 얽힌 작가의 소년 시절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한국의 ‘록 키드’들도 경험했을 만한 이야기도 나온다.
소년에게 음악이란 세상과의 연결이었다
중학생이 된 오쿠다 소년에게 전용 라디오가 생긴다. 이제부터는 “부모가 TV를 보는 거실을 떠나 자기 방에 들어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거다. 게다가 라디오에서 접한 다른 나라의 음악을 들으며 바깥세상과도 통한다.
시골에서의 중학생 시절은 오쿠다 소년에게 억압의 기억밖에 없다고. 같은 교복에 짧게 자른 머리는 물론 “누가 정한 건지도 모르는 규칙”들에 얽매인. 이런 분위기에서 오쿠다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과 바깥세상의 소식에서 해방감”을 느꼈던 것. 자연스럽게 팝 음악에 빠졌고 정확히는 록 음악에 빠졌다.
음악에 빠진 오쿠다 소년은 전축이 갖고 싶었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을 때 듣기 위해서” 그리고 더 “좋은 소리로 듣기 위해서” 오디오가 필요했다. 그 시절 한국 청소년들도 바랐던 것처럼. 그리고 갖게 되었다. 수년에 걸쳐 조르고 졸라.
마침내 오디오가 집에 오던 날을 묘사하며 작가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라고 술회한다. 이미 오래전에 작고한 부친에게도 “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추모를 잊지 않는다.
음반을 사 모으던 일화도 책 전체에 걸쳐 나온다. 작가가 살았던 “시골에서 레코드(LP)를 살 수 있는 곳은 악기점뿐”이었다고. 음반 전문 매장이 아닌. 그래서 사고 싶었던 “음반은 예약”해야 했고 길게는 “한 달여를 기다려야 했다”고. 용돈으로 사던 시절이니 “음악 잡지나 카다로그를 꼼꼼히 읽으며 뭘 살까를 고민하고 마침내 주문”하고 기다리는. 그 설렘을 묘사한 장면에서 나까지 설렜다.
이렇듯 오쿠다 히데오의 소년 시절을 따라가다 보면 어쩌면 나와 내 또래 한국인들이 “아, 나도 저랬는데!” 하는 기시감을 느끼게도 하는 책이다.
노랗지만 그 싹은 자라서 작가가 될 싹이었음을
이 책은 오쿠다 히데오를 소설가로 키운 작은 ‘싹’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쿠다 소년은 중학생 시절부터 음반 카다로그와 음악 잡지를 구독하며 다양한 뮤지션과 음반들을 “텍스트”로도 만난다. 글을 읽으며 “이 음반은 어떨까?” “저 뮤지션은 왜 그랬지?”라고 설레하는 모습에서 감수성이 짙어 가는 미래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모습이 그려진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좀 더 진지한 전문 잡지를 구독하며 “편집자의 안목에 감탄하다가도 실망도” 한다. 그러나 “훗날 유명한 음악 평론가가 되는 ‘나카무라 도요’의 글”을 곱씹으며 읽으며 자기도 “그런 글을 써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고도 고백한다. 내심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며.
세월이 흘러 사회인이 된 작가가 그 평론가에게 “원고 청탁했을 때 거절당했지만 내심 기뻤다고” 술회한다. “동경하던 사람과 말을”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까.
오쿠다 히데오는 변해 가던 음악 취향을 추억하며 자신의 글쓰기와 닮아있다고도 분석한다. 대중적인 음악을 많이 듣기도 했지만 “스틸리 댄(Steely Dan)의 음반 <Aja> 처럼 ‘장인’ 같은 앨범”을 좋아했다고. 자기도 장인처럼 쓰고 싶다는.
나아가 자신이 “어떤 포지션의 작가”가 되는 걸 원하는지도 많이 고민했다고 고백한다. “팔린다는 것은 바보까지 상대”해야 하는데 자신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고. 이 지점에서 대중적으로 열광하는 독자보다는 마니아층이 많은 오쿠다의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청소년기에 경험한 “음악적 방랑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고 보면 내 또래가 무척이나 부러워할 만한 경험을 많이 했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외국 뮤지션의 공연을 보러 갔다는. 비록 교복을 입고 갔지만 ‘산타나’와 리치 블랙모어가 있던 ‘레인보우’의 공연이었다. 부럽지 않은가?
압권은, 오쿠다 소년이 “고등학생 시절 교복을 입고 인근 ‘나고야’에서 열린 Queen의 첫 일본 공연을 보러” 간 장면이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서 본 공연이 Queen이었다”고. 나도 내 친구들도 “Queen이 한국에 온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갈 거야”라고 외치고 다녔었는데. 그런 마음에 작가는 염장을 지른다.
요새 젊은 록 팬에게
“Queen의 첫 번째랑 두 번째 일본 공연을 봤어”라고 하면
엄청나게 부러워한다.
그래 많이많이 존경해라.
나도 자랑스럽다. (192쪽)
지금 나의 삶은 어떤 체험이 바탕에 깔린 걸까
<시골에서 로큰롤>은 유명 소설가가 청소년기에 무엇에 열중했는지를 잘 보여준 책이다. 요약하자면 “공부는 하지 않고 책은 음악 잡지 외에는 읽지 않고 음악만 줄곧 찾아다닌” 이야기다. 그 소년은 자라서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는 해피엔딩.
오쿠다 히데오는 “소설가가 된 것은 그 시기의 감동 체험이 바탕에”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한다. 그래서 “나의 지금 삶은 어릴 적의 어떤 체험이 바탕에 깔린 걸까?”라고 생각에 잠기게 한 책이다. 가볍게 들었다가 무겁게 덮은 책이다.
중요한 건 그 시대를 산 한국의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은 음악을 들으며 숨을 쉬었고 미래를 설계했다는 거. 모든 음악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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