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석방 日 야스다 기자…겂이 없나, 무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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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석방 日 야스다 기자…겂이 없나, 무모한가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10.24 12: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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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 만류에도 위험지구 취재…시리아에 억류됐다 3년여만에 석방

 

야스다 준페이(安田純平). 1974년 3월 16일생으로, 올해 나이 44세다.

그는 일본의 유명한 전쟁기자로 이번에 또다시 인질에서 풀려나면서 5번 체포, 5번 석방의 기록을 세웠다.

외신들은 시리아 무장단체에 억류되었던 일본의 야스다 기자가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그는 2015년 6월에 시리아에서 행방불명되었다. 이번에 석방되면 3년 4개월만이다.

일본 정부는 그의 석방 소식을 반겼지만, 일본 SNS에선 “자진해서 인질이 되는 상습범”이라는 등의 비난이 나온다.

 

그는 전쟁 기자로서 몸을 아끼지 않고 전쟁 현장에 뛰어다니다 숱하게 체포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인질이 테러리스트에 의한 구금이라고 본다면 그는 다섯 번째 체포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겁 없는 기자이기도 하고, 또다른 측면에선 무모한 기자이기도 하다.

 

▲ 2016년 5월에 공개된 야스다 준페이 이미지 /위키피디아

 

그는 납치되기 직전인 2015년 2월 한 인터뷰에서 “내가 어디로 취재를 떠나는지, 어디에 머무는지, 어디로 갈지 등은 안전한 장소로 나올때까지 공개하지 않는다. 나에 관한 정보가 인터넷에 올려지면 나는 불순분자로 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또 자신의 취재에 대해 “전쟁터에서 간 것은 나의 결정에 의한 행동이므로 나의 책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 야스다의 저서 “누가 나를 인질로 만들었나‘

그는 위험지구에 취재하러 갔다가 일본 정부로부터 수시로 귀국 요청을 받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리아에는 미국, 유럽, 아시아의 기자들이 모두 와 있고, 젊은 여기자부터 대학생 기자에 이르기까지 취재한다. 경험 있는 기자가 취재를 하러 가는데, 경찰이 집에 전화를 걸어 귀국을 종용하는 것은 일본이 세계에서 보기 드믄 겁쟁이 국가임을 드러낼 뿐이다.”

그는 마지막 트위터(2015년 6월 21일)에서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취재는 비교적 안전해 블로그나 트위터로 현장 소식을 전해 주었지만, 앞으로 취재 환경이 정말로 취약해 지고 어려워 질 것이라 생각한다. 취재과정을 리얼타임으로 현장보도하는 것도 생각해 보지만, 너무 위험하고 무리일 것 같다.“

그는 「누가 나를 인질로 만들었나: 이라크 전쟁의 환경과 미디어의 허구」 등 3권의 저술을 내기도 했다.

 

야스다는 한때 동영상에서 한국인이라고 밝혔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태어난 곳은 일본 중부 사이타마(埼玉)현 이루마(入間)시다. 대학 졸업후 1997년 곧바로 나가노현의 지방지 신노마이니치신문(信濃毎日新聞)에 입사했다.

그는 지방지에서 일했지만, 스스로 전쟁 현장을 뛰어다녔다.

5년차 기자이던 2002년 3월, 그는 휴가를 얻어 아프가니스탄을 취재했고, 문화부로 발령났지만 그해 12월에 다시 휴가를 얻어 이라크를 취재했다. 대개 언론사에서 문화부 기자를 전쟁터에 보내지 않는다. 그는 회사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비로 취재를 다녀온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취재 활동을 하기 위해 2003년 1월, 그동안 다니던 지방지를 그만두고 프리랜서 기자가 되었다.

프리랜서가 되자마자, 중동전 현장으로 달려갔다. 2003년 2월 이라크 나자프주, 바그다드, 사마와 등지의 전투 현장을 취재했다. 전쟁 막바지에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정부가 취한 ‘인간 방패 작전’에 다른 저널리스트들과 함께 자진 참가했다.

하지만 인간 방패 작전은 미군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이라크 정부로부터 쓸모없는 기자로 버림을 받고 초청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후 이라크 군에 체포되었다. 곧이어 풀려났지만 다시 이라크 경찰에 구속되었다. 그는 몇차례 구금되면서도 이라크를 떠나지 않고 취재했다.

2004년 4월 체포된 세 명의 일본인 인질의 소재를 취재하기 위해 팔루자로 향하던 도중에 무장세력에 붙잡혔다. 하지만 곧 석방되고 외국인특파원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2005년 1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지진이 발생하자 아체주 지진현장을 취재하기도 했지만, 곧바로 요르단, 시리아, 이라크에서 취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갔다. 이라크 내전이 격화하면서 입국 자체가 어려워지자, 그는 2007년에 기지건설현장이나 군용물자를 제공하는 민간회사에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취재활동을 계속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 ‘르포, 전쟁터의 이주 노동자’라는 책자다.

‘아랍의 봄’의 바람이 불어 시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하자 2012년 그는 그곳으로 가 취재했다.

2009년에 힐링가수 뮤(Myu)와 결혼했다. 아울러 소림사 권법 2단을 획득했다.

 

2015년 5월 그는 시리아인 브로커와 함께 터키 남부를 거쳐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주에 밀입국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6월 21일 마지막 트윗을 날린후 소식이 끊긴채 행방불명되었다. 그를 납치한 단체는 알카에다 계열의 알누스라 전선이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범인은 명확치 않다.

해가 바뀌어 2016년 3월 16일 야스다로 보이는 남성의 영상이 발견되었고, 그를 인질로 잡은 단체는 시리아의 무장세력 IS와 대결하고 있는 또다른 무장세력으로 관측되었다.

2016년 5월 29일 야스다라는 이름이 적시된 인물이 “도와주세요. 이것이 마지막 기회입니다”라는 종이판을 들고 있는 이미지가 공개되었다.

 

▲ 지난 7월 공개된 동영상 속 인물이 야스다 준페이로 추정된다. /일본TV 영상 캡쳐

 

야스다는 지난 7월 31일 공개된 동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은 우마루입니다. 한국인입니다. 지금은 2018년 7월25일입니다. 상당히 나쁜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도와주세요."

이 동영상이 공개되자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동영상에는 주황색 죄수복을 입고 텁수룩한 수염의 남성 뒤에 검은색 복면을 한 두 명이 실탄을 장전한 기관총을 겨누고 있었다. 동영상 제목은 ‘일본인 인질’이라고 되어 있는데, 동영상 속의 남성은 일본어로 말하면서 자신의 이름이 ‘우마르’라며 한국인이라고 했다.

이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일본에서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동영상 속 인물은 야스다 준페이가 분명한데, 한국인이라고 말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왜 우마르(우말)이라는 이름의 한국인이라고 했을까. 한자식 표기인 安田純平을 한국이름으로 풀면 안순평이니, 한국계 이름과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기록 어디에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여지껏 드러나지 않았다.

 

그의 이번 석방에 몸값이 지불되었는지가 관심이다. 일본 정부는 야스다의 석방에 “거래는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지지통신에 따르면, 영국에 있는 시리아인권감시단 압둘라 라흐만 대표는 "몸값은 일본이 아니라 카타르가 지불했다"고 밝혔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야스다 석방 정보를 카타르로부터 제공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그가 야스다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야스다로 보이는 남성은 현재 터키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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