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홍콩지수 ELS사태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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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홍콩지수 ELS사태를 바라보며
  • 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 승인 2024.03.1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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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요즘 금융시장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홍콩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이다.

지난 몇 년 간 홍콩 주가지수(항셍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하며 기초 자산에 동 지수가 포함되어 있는 ELS에서 대폭적인 가치 하락이 발생했고, 이 때문에 만기 도래하는 해당 상품 가입자들이 (평균적으로) 원금의 반 이상 손해를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상반기 말까지 시간이 남아 있고 그 때까지 홍콩 주가지수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알 수 없지만, 5개 시중은행의 경우 올해 들어 지금까지 만기 도래한 2조 3021억원의 원금에서 52.5%의 손해가 발생했고, 상반기 내에 만기가 도래하는 7.5조원 가량의 ELS 에서도 비슷한 수준의 손실률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은행 이외 금융기관 판매분에서도 손실은 불가피해 보인다.

ELS(Equity Linked Security)는 이름 그대로 주가지수의 흐름에 연계된 금융상품인데, 이번에 문제가 되기 이전에도 여러 차례 문제를 일으키며 금융시장을 흔들었던 바 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당초 고정 이자를 받는 것으로 알았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과 투자의 자기 책임이 투자자에게 있다는 금융기관들이 불완전 판매 여부를 두고 다퉈왔다.

즉, 투자자들은 위험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창구 직원이 안전하다는 말로 호도하며 상품 매수를 유도했다고 주장하고, 판매 금융기관들은 일부 그런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규정에 따라 위험성을 설명했으며, 대부분 투자자가 반복 투자자이기 때문에 상품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끊이지 않는 불완전판매 논란

이번에도 같은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데, 금융감독원은 최근 투자자들의 빗발치는 민원에 대응해 불완전 판매 여부에 따라 판매사(특히 은행)가 차등적으로 고객의 손실을 보전해 주고, 법규 위반이 발견될 경우 해당 은행에 대해 제재 조치를 가할 것이라 밝혔다.

높은 수수료가 발생하는 ELS를 많이 팔기 위해 부실한 설명으로 가입을 유도했던 은행 직원들이 다수 있었고, 은행 역시 직간접적으로 그러한 영업을 유도했을 것이라는 판단과, 선의의 투자자들 이외에 충분히 위험을 알고 있고 설명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손실이 발생하니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투자자들도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종합한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반복적으로 이러한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홍콩 ELS 사태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2022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금융시장의 뇌관이 되고 있는 부동산 PF 문제나  2019년에 불거졌던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Derivative Linked Fund) 사태, 지금은 규제 강화로 대부분 사라진 MMF 문제와 신탁상품 문제, 자산 파킹 문제 등 다양한 이슈들이 투자자와 금융기관간, 또는 금융기관과 금융기관간 갈등을 유발하거나 자금시장 불안을 통해 금융 전반과 가계 경제, 나아가 나라 경제를 흔들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금융기관 측면에서 보면 도덕성과 단기 이익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는 금융기관의 거버넌스체계가 근본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고객을 중심에 놓지 않고 회사의 단기 이익을 중심에 놓는 경영진의 판단과 이를 반영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제어할 만한 거버넌스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금융기관 임직원은 회사와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장기적인 고객 관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직원 스스로의 개인적 도덕성을 강조해도 건전한 거버넌스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고객 측면에서 보면 금융 지식의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소중한 돈을 투자하면서도 많은 개인들은 해당 투자의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기대수익률을 적절하게 비교 평가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냉장고, 텔레비전을 살 때는 각종 기능을 따져보고 오랜 시간 고민을 하는, 심지어 전문성 측면에서 금융을 뛰어 넘는 진료를 받을 때도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개인들이 막상 금융 투자를 할 때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확정 수익을 약속하는 예금 등 일부 금융상품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 투자상품은 속성상 미래의 상황에 의존적이고 결국 확률에 의존하는데, 투자자들은 눈 앞의 높은 기대수익 때문에 위험이 발생할 확률을 너무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감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자, '공짜 점심 없다' 잊지 말아야

물론 ELS와 같은 파생상품은 구조가 복잡해서 공부를 한다고 해도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기대수익률이 높다는 것은 반대로 상당한 위험을 내포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위험이 큰 상품은 고객에게 제시하는 눈 앞의 수익률도 높지만, 상품 판매자나 헷지 금융기관에게 돌아가는 이익도 일반적으로 많다. 판매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해당 투자상품을 권유하는 것, 그리고 금융기관이 직원들에게 독려하는 것은 결국 큰 위험으로부터 나오는 큰 이익을 가져가기 위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게다가 헷지에 능숙한 금융기관은 고객과 달리 많은 경우 거의 확정적인 이익을 가져가고, 때에 따라 발생하는 헷지 위험으로 발생한 손실은 이후 추가 판매를 통해 희석한다. 여기에 금융기관은 위험이 커지면 시스템 위험으로의 확산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유동성 지원을 받기도 한다. 즉, 단기 손실을 감내할 수 있는 대형 금융기관 입장의 경우 그렇지 못한 개인에 비해 현저히 유리한 구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투자자로서 당연히 깊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결국 이번 홍콩 ELS 사태와 관련해서 불완전 판매 여부를 판단하고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점은, 판매 금융기관의 도덕성을 제고하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전반적인 금융지식 수준을 올리는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금융기관의 도덕성 문제는 이미 오랜 기간 강조되어 왔고 결국 그 근원에 거버넌스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 정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적절하게 반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금융당국과 금융 관련 협회는 지금보다 더 세심하고 강하게 투자자 교육에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 역시 귀찮더라도 금융시장에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마음으로 금융지식을 쌓고, 늘 자세한 투자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반복적인 금융 ‘사태’들이 줄어들 것이다.

 

●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이후 SK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 지식서비스 부문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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