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 이야기] ‘숲에서 우주를 보다’, 그리고 ‘나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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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 이야기] ‘숲에서 우주를 보다’, 그리고 ‘나무의 노래’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0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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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집 바로 뒤가 산이다. 신도시에 있어 사람들이 즐겨 찾는 이 산의 다른 쪽 등산로와 달리 집 앞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는 한산하기만 하다. 사람을 마주치는 날이 드물 정도인데 등산로에 쓰러진 나무가 그냥 방치되어 있을 때가 많다. 등산로 주변 숲에는 쓰러져 말라가는 나무들이 많이 쌓여 있다. 한적한 등산로라 관리의 손길이 상대적으로 덜 미쳐서 그런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쓰러진 나무 때문에 걷기 힘든 숲이 ‘훌륭한 숲’이라고 한다. 반면 사람 손을 타서 숲 바닥이 깨끗하게 정비됐다면 건강하지 않다는 신호라고.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서 그렇게 이야기한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

미국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은 과학적 탐구를 문학적 글쓰기에 접목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다. 그는 ‘생물학자처럼 생각하고 시인처럼 쓴다’라는 찬사를 받으며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작에 오른 책을 여러 권 저술했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서 저자는 숲을 바라보는 시각의 범위를 넓혀 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들은 숲에서 나무나 풀밭, 혹은 눈에 보이는 동물 정도만 떠올리는데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숲에 더 많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영어 제목 ‘The Forest Unseen’은 저자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이 책에는 저자가 미국 테네시 주 남동부의 오래된 숲을 1년간 관찰한 기록이 담겼다. 숲 구성원들, 동식물은 물론 바위 같은 무기체 등을 자세히 지켜보는 한편 사색 속에 성찰해가는 기록이기도 하다. 

저자는 숲을 관찰하는 범위로 사방 1m의 공간을 택했다. 그리고 이곳을 ‘만다라’라고 칭했다. 그는 이 작은 땅이 숲의 축소판이며 자연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순환의 질서가 숨어있다고 보았다. 마치 불교의 만다라처럼 하나의 우주와 같다는 것이다. 한국어 제목 ‘숲에서 우주를 보다’는 이러한 저자의 성찰이 담겼다.

날짜가 기록된 면에서 이 책은 일기 혹은 일지 형식을 띤다. 달에 따라 2개에서 7개의 소주제로 나뉜다. 저자는 꽃과 식물, 그리고 나무, 혹은 코요테나 사슴처럼 눈에 보이는 생물들은 물론 지의류와 이끼, 균류 등 미미한 생물까지 사방 1미터의 작은 ‘만다라’에 살거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많은 생명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주기도 하지만 계절에 따른 숲의 변화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저자는 아직 겨울이 한창인 1월 21일 만다라에서 알몸이 된다. “옷의 보호를 받지 않고 숲의 동물처럼 추위를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이 체험을 통해 작가는 추위에 따른 인간 신체의 변화를 설명하는 한편 동물들이 추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명한다. 한 예로 북부에 사는 동물 종이 남부에 사는 종보다 몸집이 큰데 열 손실 정도가 동물의 크기와 연관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식물이 추위를 견디는 메커니즘을 함께 설명하기도 한다. 이 모든 행위와 설명은 인간이라는 종의 나약함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또한 저자는 한여름의 만다라에 모기가 만연하자 쫓아버리기보다는 몸을 내어주는 걸 택한다. 모기가 피를 빠는 과정을 관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며 저자는 인간의 피를 몸에 가득 채운 모기가 숲의 생물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아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야기한다. 즉 숲에서 벌어진 흡혈 활동이 도시에서 감염병 같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

이처럼 <숲에서 우주를 보다>는 자연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책이다. 그는 만다라에서 “이방인이자 구성원으로서 관찰”했는데 거기서 얻은 소득은 “평범한 장소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그곳을 경이로운 곳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음”을 깨달은 거라고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책 곳곳의 문장에서 자연을 바라보는 저자의 상기된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만약 이 책에 매료된 독자들이라면 저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다른 책에도 관심 갈지도 모른다. <나무의 노래>가 그 책이다.

나무의 노래

<숲에서 우주를 보다>에서 저자의 관찰 범위가 숲이라면, <나무의 노래>에서는 나무 그 자체가 관찰 대상이다. 아마존 열대우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지역, 스코틀랜드, 동아시아 일본 등 전 세계 열두 종의 나무를 관찰하고 기록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나무를 다룬 건 기후나 지형에 따라 서로 다른 나무의 특성을 이야기하기 위함도 있지만 ‘연결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 연결망에는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상도 포함한다. 

저자에 따르면, 나무는 혼자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균과 균류, 동식물과 미생물, 그리고 인간이 서로 대화하며 소통하는 생명의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 즉 지역이나 기후가 다르고 종이 달라도 나무와 세상이 연결되는 방식은 같다는 것.

그러며 저자는 인간과 자연을, 혹은 도시와 시골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의 허상을 지적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인데 저자는 “시골의 생물다양성이 높은 것은 도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만약 도시민이 지방으로 대거 이주하면 시골의 생태계는 엉망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빽빽한 도시 덕분에 (한적한) 시골의 생물다양성이 증가할 수 있었다”는 아이러니함을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도시와 시골은 상호보완 관계, 즉 서로를 지탱해주는 지렛대와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한가지 오해를 풀어준다. 도시의 나무가 시골의 그것보다 약할 것이라는 오해. 저자는 뉴욕시의 ‘콩배나무’를 예로 든다.

뉴욕시 중심가에 있는 이 콩배나무는 지하철이나 자동차의 진동을 받아 흔들리기 일쑤다. 하지만 콩배나무는 “뿌리를 더 뻗어 자신을 단단히 고정”하기 위해 “섬유소와 목질소 가닥을 증가시킨다”고. 이로 보듯 “도시의 나무는 시골의 사촌보다 더 단단하게 땅을 움켜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생존의 명수인 것 같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된 과학의 세계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두 책을 읽으며 자연을 대하는 필자의 태도가 달라지는 걸 느꼈다. 뒷산을 자주 찾고 또 산새 이름과 나무 이름을 알게 되면서 자연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자부했었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은 인간의 방법에 있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것. 

또한 두 책은 숲을 바라보는 필자의 시각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줘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게 이끌었다. 덕분에 나의 만다라, 이끼 낀 바위와 딱따구리가 구멍을 낸 서어나무가 있는 한적한 골짜기를 매주 방문해 그 변화를 관찰하고 있다. 

이렇듯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이 쓴 책들의 미덕은 독자에게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 있다. 또한 딱딱하다고 여겨지는 과학의 세계를 시적 감수성으로 표현한 것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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