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논픽션 ‘칼라하리의 절규’
상태바
[강대호의 책이야기]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논픽션 ‘칼라하리의 절규’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06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영화로 먼저 접했다. 미국 동부 대서양과 접한 습지의 자연환경을 볼 수 있어 인상적인 영화였다. 주인공에게 처한 현실과 이를 타개해 가는 삶 또한 인상 깊었다. 그래서 원작 소설을 찾아 읽게 되었다.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소설은 두 이야기가 축으로 엮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룬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의 습지에 발생한 살인 사건과 외딴 습지에 버려졌지만 끝내 자생에 성공하고 마는 한 여자의 이야기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와 60년대를 오간다.

주인공 ‘카야’는 학교에 들어갈 나이 무렵부터 마을과 마을 사람으로부터 단절된 습지에 내버려져 혼자 살아간다. 그렇게 카야는 소녀를 거쳐 여인이 된다. 줄거리로만 보면 한 여성의 성장 소설로 볼 수 있지만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기도 하다.

카야는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된다. 그녀가 범인으로 몰린 이유는 마을 주민 관점에서 야만의 공간인 습지에 홀로 사는 여자라는 편견이 작용했다. 이들 마을 주민, 물론 백인들은 습지에 사는 사람들과 자기들은 전혀 다른 급의 인간, 즉 계급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을 안에서도 유색인종 주거 공간은 철저히 분리된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카야는 마을 주민들, 백인들의 무시와 조롱 속에 살았지만, 유색인종 마을 주민들은 이웃이 되어주었다. 그녀가 생존에 성공하고 여성으로 자라는 데에 큰 도움을 준 것.

이처럼 소설은 이야기 속에 계급과 인종 문제를 녹였다. 여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주인공은 아주 어린 시절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데다 자라면서는 남자로부터 배신당한다. 이런 현실에서 카야는 홀로 사는 여성으로서의 자생력을 키우게 된다. 

주인공 ‘카야’에게 친구와 가족이 되어준 건 습지의 생물들이었다. 갈매기들과 대화했고 조개껍데기와 새의 깃털을 보물인 양 모았다. 동물들을 관찰했고 글을 깨우친 후에는 동물 생태 관련 문헌을 구해 읽었다. 

카야는 동물의 생태에서 인간의 모습을 읽기도 했다. 새끼를 떠나는 어미의 습성을 보며 자기를 떠난 엄마의 모습을 읽어보려 했다. 교미에 성공하면 대체로 암컷을 떠나는 수컷 동물의 습성에서 자기를 버린 남자의 모습을 읽기도 했다. 

자연 속에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이렇듯 세상의 일들을 자연의 이치로 치환했다. 그렇게 성장하고 생존했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면서, 그리고 실은 가족이 그녀를 완전히 버린 건 아니란 걸 깨닫게 되면서 세상과 차츰 화해하게 된다.

일흔 줄 동물행동학 박사가 쓴 첫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다 보면 습지가 느껴진다. 물속에서 풀이 자라고 물이 하늘로 흐르는, 그리고 진짜 늪이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한 습지. 이런 습지에 사는 주인공 ‘카야’는 저지대의 생물이다.

그런 주인공은 습지와 해변에서 채집한 각종 조개껍데기와 새 깃털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다. 이 중에는 과학적으로 의미가 높은 종들도 있어 출판까지 하게 된다. 나중에는 생태 시리즈 출판으로까지 확대되면서 한때 ‘야만의 여인’이라 멸시받던 ‘카야’는 지역 주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작가가 된다.

주인공이 습지 생물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마침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는 인물이 되는 이야기에서 저자의 실제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저자 ‘델리아 오언스’는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로 주로 동물과 자연 관련 논픽션을 써온 작가였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저자가 일흔 가까운 나이에 쓴 첫 소설이었다. 그래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필자는 저자의 이력에서 어느 한 책이 떠올랐다. 저자가 아프리카에서 7년 동안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칼라하리의 절규’라는 논픽션을 썼다는 대목에서 ‘야생 속으로’라는 책 내용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

동물행동학 박사 출신 소설가의 과거, 논픽션 ‘칼라하리의 절규’의 저자

‘야생 속으로’는 10여 년 전 필자가 동물 생태학에 빠졌을 때 접했던 책이었다. 서지를 찾아보니 저자가 ‘델리아 오언스’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쓴 이와 같은 인물이다. 다만 영어 제목이 ‘Cry of the Kalahari’, 즉 ‘칼라하리의 절규’가 원래 제목이었던 것.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며 화제가 되자 원제목으로 다시 출판된 거였다.

‘칼라하리의 절규’는 동물학을 전공한 젊은 부부가 아프리카 보츠와나 공화국의 칼라하리에서 7년 동안 야생동물들을 관찰한 기록이다. 그래서 부부였던 ‘델리아 오언스’와 ‘마크 오언스’가 공동 저자다. 이들은 칼라하리에서 사자, 갈색하이에나, 자칼 등 척박한 칼라하리의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행동과 생태를 기록했다. 

이 책을 다시 읽어보니 자연 속에 녹아 들어간 두 사람의 모습은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사자도 하이에나도 자칼도 두 사람을 사냥감으로 대하지 않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세심한 노력이 있었다. 이들은 자연 속에서 인간 또한 동물의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두 동물학자는 관찰하는 동물들을 무리 이름은 물론 각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 관찰했다. 그렇게 무리별로 개체별로 구분해 연구했다. 동물들은 두 사람을 적대적으로 대하기는커녕 가까이 접근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서로를 탐색하고 관찰하는 모습으로도 보였다. 자연 속에 녹아들어 간 두 저자의 모습이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두 과학자는 7년 동안 칼라하리에서 동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세렝게티의 사자와 하이에나에 친숙하다. 세렝게티에 사는 이 동물들의 습성을 일반화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사자와 하이에나의 교과서적인 모습으로 비쳤었다. 두 사람의 연구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하지만 두 동물학자는 장기간의 관찰과 연구를 통해 칼라하리의 사자와 갈색하이에나의 생태가 세렝게티의 그것과 다르다는 걸 알아냈다. 주어진 환경이 동물의 습성, 특히 ‘무리 이루기’ 방식이나 ‘새끼 양육’ 방법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밝힌 것.

두 사람은 ‘칼라하리의 절규’에서 생태계가 파괴되어가는 모습을 지적하기도 했다. 여기서 ‘절규’는 환경 파괴로 절규하는 생태계를 의미한다. 

보츠와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다이아몬드 생산국이다. 다이아몬드 광산은 태고부터 살아온 부시맨 부족의 영역은 물론 동물들의 서식지와도 겹친다. 두 저자는 “칼라하리가 단순히 광물 채굴지가 아니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정한 자연유산”이라고 절규하듯 외친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도 환경에 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습지는 물을 막으면 개발할 수 있는 대지로 변한다. 그곳을 휴양지와 별장 단지로 만들면 돈이 돌겠지만, 습지의 생물들, 식물들과 동물들은 지구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걸 이야기 속에 녹여낸 것.

그런 의미에서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과 논픽션 ‘칼라하리의 절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장르는 다르지만, 최소한 지금의 생태계라도 지속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염원이 읽힌다. 두 책을 함께 읽는다면 그런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