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홍대선 ‘한국인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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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홍대선 ‘한국인의 탄생’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2.2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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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유럽인이나 아메리카인들이 동북아시아 사람들, 즉 중국인이나 일본인 혹은 한국인의 국적을 외모로 판단하는 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단체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아, 하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정확히 구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민족성은 외모나 언어 못지않게 그 민족이 가진 기질을 잘 보여주는 지표다. 동북아시아 세 나라 사람들이 인접한 위치와 비슷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민족성으로 각자의 역사를 개척해온 이유다. 특히 한국인은 대륙과 열도 사이에 낀 반도에 살면서 고난의 역사를 헤치며 생존해 왔다.

홍대선이 쓴 <한국인의 탄생>은 이런 한국인을 흥미로운 시각으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동북아시아에 자리 잡은 선조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영향을 받아 지금까지 생존해왔는지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한국인이 있기까지에는 단군, 고려의 현종 임금, 조선의 정도전 등 역사적 세 인물로 상징되는 시기가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국인을 만든 세 키워드, ‘생존’ ‘전쟁’ ‘혁명’

저자가 세 명의 역사적 인물을 든 건 이들의 결단과 행동이 지금의 한국인을 만드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생존, 전쟁, 혁명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된다.

단군은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특정할 수 있는 자연인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분명한 건 단군 시대에 우리 선조가 동북아시아 한구석의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한반도에 정착한 고대의 여러 민족이 산악이 많은 지형을 극복해가며 한민족을 이루어 생존해 왔다고 이야기한다. 산이 많아 농경지가 적은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어야 했고, 대륙 국가들이 쳐들어오면 산성을 쌓고 함께 목숨 걸고 싸워야 했다. 혹독한 환경을 이용하거나 서로 도우며 극복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한반도라는 지형에 갇혀 '평시에는 생존의 위기, 전시에는 소멸의 위기'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결국은 지금까지 생존해왔다.

저자는 고려의 삼한 재통일을 신라의 첫 번째 삼한통일과 달리 '진정한 통일'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고려 건국 후 한동안 고구려계, 신라계, 백제계, 발해계 후손들이 분열되어 하나가 되지는 않았었다고. 여러 출신으로 복잡했던 고려가 진정한 하나의 국가가 된 건 거란이 고려를 침공한 전쟁을 겪으면서다. 

당시 거란은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했었다. 그런 거란이 고려를 침공해 벌어진 세 번의 전쟁은 어쩌면 고려가 사라질 수도 있었던 위기였다. 하지만 현종은 세계 최강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큰 전쟁을 겪으며 고려의 지도층들은 물론 기층 민중들까지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해졌고 그 중심에 현종이 있었다. 저자는 이로부터 진정한 ‘한민족’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뿐만 아니라 전쟁 복구와 국가 재건에 큰 업적을 남긴 현종은 ‘고려의 세종’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단군이 한반도라는 터전에 우리 선조를 자리 잡게 했고 현종이 한민족을 탄생하게 했다면, 정도전은 민족성을 탄생시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를 꿈꾼 혁명가였다. 그런 그는 조선의 설계자였다. 저자는 정도전 등 유학자들이 주도해 건국한 조선을 '임금의, 사대부에 의한, 백성을 위한 나라였다고 정의한다. 즉 조선은 '민본주의 국가' 건설을 목표로 했다. 특히 백성의 소리를 듣는 걸 중요하게 여겼는데 저자는 신문고와 ‘격쟁’을 사례로 든다. 

격쟁(擊錚)은 임금이 길을 지날 때 백성이 꽹과리나 징을 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행위다. 이때 임금은 호소를 들어주고 해결방안도 제시해줘야 한다. 그러니까 격쟁에 성공한 백성은 “임금을 해결사로 고용”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호소나 읍소는 모습을 달리하며 문제 해결 방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아 왔다. 조선시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그러고 보면 오늘날 관공서나 공권력 앞에서 전혀 위축되지 않는 한국인들의 모습과 연결되는 거 같기도 하다. 이렇듯 한국인은 자신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질이 있다. 즉 국가는 내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 건 물론 나를 위해 존재하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외에도 다양한 사례를 들며 한국인 특유의 기질이 민본 국가로 설계된 조선시대에서부터 형성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즉 한국인의 민족성은 정도전이 설계한 조선의 시스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딴지일보 출신의 독립 연구가

<한국인의 탄생>의 저자 홍대선은 책을 여럿 출판한 작가이며 ‘딴지일보’에서 ‘필독(fielddog)’이라는 필명으로 역사 관련 글을 쓰는 기자이기도 하다. 

딴지일보는 일명 ‘딴지체’로 유명하다. 제도권 언론에서 사용하는 문법에서 벗어난 문체지만 특유의 논리로 대중들의 응원과 지지를 받아왔다.

저자 홍대선, 즉 ‘필독’은 딴지일보에서 인기 있는 필진이다. 그가 쓴 ‘테무진 to the 칸’ 시리즈 연재는 딴지일보 역대 최대 조회를 기록했다.

그런 저자가 <한국인의 탄생>에서 소재와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책 뒷부분의 참고 문헌 목록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무척 많은 참고 문헌 목록이 나열되었다. 도서나 논문이 180종이었고 인터넷 원문 사이트도 여럿이었는데 그 목록이 본문보다 작은 글씨로 10쪽 분량이었다. 숫자로만 보면 여느 박사학위 논문보다 많은 참고 문헌일지도 모른다.

방대한 참고 문헌 목록은 저자가 <한국인의 탄생>을 ‘뇌피셜’로만 쓰지 않았다는 걸 항변하는 듯 보였다. 관련 학위가 없으면 전문가로 대접받지 못하는 한국 현실에서 이 책 집필을 위해 학위 논문 작성 못지않은 치열한 연구를 했다는 방증으로 보여주는 것. 

그런 저자 홍대선을 ‘독립 연구가’로 정의하고 싶다. 이 책뿐 아니라 <유신 그리고 유신> 등 ‘한국인’을 탐구하며 답을 찾아가는 다양한 연구 활동과 집필을 하는 점에서다. 

‘독립 연구가’ 혹은 ‘독립 학자’는 학계 평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천착하는 분야를 나름의 논리와 근거로 연구하는 이로 정의할 수 있다. 서점을 둘러보면 독립 학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저작이 눈에 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인의 탄생>을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이 주류 학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오늘을 사는 한국인의 기질을 역사 속에서 원류와 근거를 찾아 제시한 건 주목할만하다. 비슷한 주제를 학술적 언어로 풀어놓은 이른바 전문가들의 글보다 가독성 면에서나 호기심 충족 면에서 월등한 건 분명하다.

무엇보다 저자와 출판사는 출판 시기를 잘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의 탄생>은 지난 11월 중순에 출간됐고, 이 책의 2부는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의 소재이기도 한 고려와 거란 간 전쟁의 배경과 경과를 담고 있다. 드라마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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