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㊽ 이달말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상봉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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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㊽ 이달말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상봉터미널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26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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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상봉터미널이 오는 30일 영업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1985년 9월부터 서울 동부 지역의 관문을 맡아왔던 시외버스터미널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상봉터미널을 이용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시외버스를 타야 하면 집에서 가기 편한 남부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 혹은 성남종합버스터미널을 이용하곤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외버스터미널 폐업은 상봉터미널에만 닥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남종합버스터미널도 2022년 12월 31일 영업을 끝으로 폐업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3년간 18곳의 시외버스터미널이 폐업했다고 합니다. 열차나 승용차 등 대체 교통편이 확대돼 시외버스가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는 시외버스터미널

저와 상봉터미널이 얽힌 기억이 없으니 상봉터미널에 대한 추억이 있는 지인들을 찾아봤습니다. 저보다 선배 세대 중 상봉터미널을 자주 이용한 분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경기도 동부나 강원도 출신이었고 동대문구나 중랑구 등 상봉터미널과 가까운 서울 동부 지역에 정착했다는 거였습니다. 

이들은 승용차가 없던 시절 시외버스를 이용해 서울과 고향을 왕래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또한 상봉터미널에 대한 추억은 물론 동마장터미널에 대한 기억도 함께 술회하곤 했습니다. 

상봉터미널 전경. 사진=강대호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시외버스터미널은 을지로6가, 신설동, 서울역 등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통난이 심해져 1969년에 도심 외곽으로 이전한 장소가 동마장터미널이었고요. 명칭은 마장동을 의미했지만 사실 용두동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동대문구청 자리입니다.

1980년대에 들어가며 이곳도 부도심으로 복잡해지자 이전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곳이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이었습니다. 이전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동서울터미널 자리는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이었고 상봉동은 서울 외곽의 한산한 지역이었습니다.

1985년 9월에 개장한 상봉터미널은 경기도 동부 지역과 강원도를 연결하는 시외버스 노선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홍천, 양구, 인제, 원통 등 강원도 곳곳을 연결해 승객 중에는 군인들 비중이 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상봉터미널을 이용해본 적 있는 제 또래 지인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에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한 것입니다. 

이들은 강원도의 깊은 내륙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44번 국도로 오다가 홍천 즈음에서 6번 국도로 갈아탄 후 남양주 도농삼거리의 검문소에 도착하면 서울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검문소와 구리를 지나면 망우리고개가 나오는데 거기만 넘으면 곧 상봉터미널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도농검문소에서 버스로 올라온 헌병이 휴가증을 확인할 때면 가슴이 무척 뛰었다고 하네요. 이 또한 시외버스와 상봉터미널의 추억으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상봉터미널은 개장 초 11개 운수업체가 강원도 등에 551대의 버스를 투입해 120개 노선을 운영했습니다. 한창일 때는 하루 승객이 2만여 명을 넘길 정도로 붐볐다고 합니다. 그랬던 상봉터미널이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원주행 시외버스 승차장. 상봉터미널에 남은 유일한 노선이 원주행이다. 사진=강대호

경의중앙선과 경춘선, 동서울터미널에 밀려

폐업을 앞둔 상봉터미널에 가보았습니다. 상봉터미널 인근의 모습은 시외버스터미널이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상봉터미널 바로 앞에는 망우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의중앙선과 경춘선이 지나는 철도역입니다. 예전보다 안락한 열차로, 그리고 시외버스보다 빠르게 경기도와 강원도를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7호선 지하철도 근처를 지납니다. 서울 다른 지역과의 연결망이 좋아졌지만, 상봉터미널 이용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열차 등 대체 교통망이 많아진 면도 있지만 무엇보다 동서울터미널의 존재가 상봉터미널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1990년에 개장한 동서울터미널은 상봉터미널의 시외버스 노선과 거의 같은 노선을 제공했습니다. 게다가 대중교통망도 편리했고요. 결국 접근성이 떨어지는 상봉터미널은 승객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90년대 이후에 강원도에서 군 시절을 보낸 이들은 주로 동서울터미널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터미널과 연계되는 2호선 지하철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동서울터미널은 전국으로 향하는 고속버스 노선들이 있어 갈아타기도 편했습니다.

반면 상봉터미널과 연결되는 노선은 계속 줄어들었습니다. 요즘에는 원주 노선만 있었는데 하루 이용객이 20명 정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2만여 명이 붐볐던 시절과 비교하면 승객이 천배나 줄어든 거죠.

폐업을 며칠 앞둔 상봉터미널은 쇠락해 보였습니다. 예전에는 시외버스로 가득했을 터미널 건물이 운전 교습용 차들로 가득했습니다. 터미널 건물에서는 운전학원과 경륜장이 영업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과거 승차장으로 쓰였던 곳은 운전 실습 코스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승차장으로 쓰는 장소는 원래 하차장이었고요. 지금은 승차와 하차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상봉터미널 폐업 안내문. 터미널 건물 곳곳에 붙어 있다. 사진=강대호

건물 외벽 곳곳에는 폐업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습니다. 낡은 타일이 붙어 있는 외벽과 폐업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상봉터미널의 사라짐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실내로 들어가니 어두웠습니다. 인적은 없었고 셔터를 내린 매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매표소는 영업을 안 한 지 이미 오래인 듯 보였고 그나마 티켓 창구 역할을 하는 승차권 발매기에는 폐업 안내가 붙어 있었습니다. 

현재 상봉터미널에 남은 유일한 노선인 원주행 시외버스는 하루 6번 운행하고 있습니다. 승차장 앞 안내 카운터에 손으로 쓴 시간표가 보였습니다. 버스 출발 시각이 아직 멀어서 그런지 카운터는 물론 벤치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상봉터미널 곳곳에 붙은 터미널 폐업 안내문에는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인 이용객 감소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터미널의 운영을 계속해왔지만, 최근에는 하루 이용객이 20명 미만까지 감소해 더는 터미널 운영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돼 있었습니다.

상봉터미널 운영사 측은 터미널 부지에 아파트 999세대, 오피스텔 308세대, 상업·문화 시설 등으로 이뤄진 지하 8층~지상 49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준공 완료 시점은 오는 2029년이고요. 

오는 12월 1일부터 원주행 시외버스 승객들은 상봉터미널 앞 도로의 임시 승차장에서 타야 합니다. 40년 가까이 서울 동부 지역 관문의 역할을 맡았던 상봉터미널은 이곳을 기억하는 이들의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상봉터미널 재개발 사업으로 들어설 주상복합 투시도. 사진제공=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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