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일본의 장기계획과 투자가 빚어낸 스포츠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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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일본의 장기계획과 투자가 빚어낸 스포츠 성과 
  •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 승인 2023.10.0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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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 코로나로 인해 5년 만에 진행된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폐막했다. 우리나라는 금메달 50개를 달성하진 못했지만 당초 목표였던 3위를 무난히 이루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문득 아시안게임을 보면서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한때, 중국에 이어 아시안게임 2위를 목표로 달렸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아시아에서 3위를 목표로 하는 게 당연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벨상처럼 스포츠도 장기투자로 달려온 일본

적어도 2010년 이전까지 일본은 구기 종목을 비롯해서 주요 종목에서 우리나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야구는 한국이 열세였지만 축구, 농구, 배구 등 주요 인기스포츠는 한국이 늘 일본에게 상대적 우위를 오랜 기간 유지해왔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서 일본이 한국을 앞서나가기 시작한 시점은 최근 10년 사이에 발생했다는 것이 전문가들 의견이다. 

참고로, 연구와 스포츠도 투자와 관심이 집중되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경제논리로 학문연구와 스포츠성과를 분석하는 학자들의 논리를 부정하긴 어렵다. 투자 없이 정신력만 강조해온 우리로서는 저 멀리 달려가는 일본이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울 뿐이다. 한국과 일본의 신체격차, 운동신경 차이가 없는데도 일본이 앞서나가는 건 투자와 계획 때문이다. 

한국은 특정 대회가 개최되면 늘 해당 종목에서 탈아시아급의 역량을 지닌 선수 개인에게 의존해 성과 창출에 몰두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부족한데도 우상혁, 황선우, 류현진, 손흥민, 김연경 등 글로벌 수준에 달하는 플레이어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장기계획보다 S급 스타에 의존한 단기성과 창출에 익숙해진 이유다. 

일본은 특정한 개인, 즉 한 명의 천재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쩌다 불세출의 탁월한 영웅이 나타나도 해당 개인이 은퇴하면 조직역량은 이내 쉽게 무너진다. 일본이 10년 또는 20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각각의 스포츠 종목에 투자와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타고난 개인보다 조직화된 집단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의존하는 시대야말로 폐막했다. 

일본축구협회가 100년 계획을 수립하고 3년 전, 독일에 별도의 유럽오피스를 설립한 건 일본이 스포츠에 어떤 관심을 기울이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일본 대표팀의 유럽 원정 훈련시설 이외 국가대표 선수들의 정신 및 재활훈련에도 해당 오피스는 활용되고 있다. 일본 농구팀 역시 해마다 농구 강국을 초대해 평가전을 치루며 경쟁력을 길렀다. 

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받은 이유 역시 장기투자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기초과학 연구자들의 주장이다. GDP(국내 총생산)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중은 한국이 5%에 육박하며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일본은 1% 전후로 우리보다 낮다. 그러나 한국의 투자 비중이 D(응용분야 개발)에 집중된다면 일본은 연구(Research)에 자원을 집중한다는 점이 핵심 차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트랜드를 선도하기보다는 주류 트렌드에 휩쓸려 예산이 배정되다 보니 순수과학에 투자하지 않아 항상 선진국의 역량에 끌려 다닌다. 메타버스, 반도체, AI, 배터리 등의 흐름에 맞추기 위한 국가의 목적 기초연구비에 예산의 66%가 집중되다 보니 트렌드와 무관한 기초과학, 순수과학 역량과 인기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9일 폐막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중국, 일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빨리 빨리’를 통한 단기성과가 능사 아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은 우리나라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운 말이 ‘빨리 빨리’였다. 주어진 시간 내에 가장 효율적으로 성과를 내야 하는 등 과정보다 단기성과를 중시하는 풍토가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그는 훗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빨리 빨리는 기초를 버리고 응용, 단기성과만 챙기는 기형적 잔재를 남겼다.

‘빨리 빨리’ 문화는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강국에 단시간에 올려놓는 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다. 문제는 ‘빨리 빨리’가 안 되는 분야, 즉 시간과 노력이 오래 걸려서 역량이 축적되어야 빛을 보는 분야는 점점 소외되었다는 점이다. 지방대의 경우 물리학과, 화학과, 수학과는 사라진 상황이며 스포츠에서도 육상과 수영 등 기초종목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로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내생적 성장이론을 통해 인적자본 투자를 강조했다. 국가경쟁력은 인적자본, 기술력 등의 질적 변화에 달려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인적자본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함께 정부가 시스템을 통해 인재의 지식을 공유, 축적하는 방향으로 장기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의 내년도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이 16.6% 줄어든 21조 5000억원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올해보다 4조원 넘게 예산이 줄었다. 기초과학 연구예산 역시 6.2% 감소했다. 전체 연구비 예산을 삭감하기보다 트렌드만 따라가는 국가목적 기초 연구비가 과도하진 않은지 기초 및 순수과학 예산은 충분한지 등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봤어야 했다. 

베르겐 헬게센 스웨덴 노벨재단 총재는 노벨상 수상은 장기적 투자와 지원이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본은 스포츠기본법 제정을 통해 스포츠를 국가전략으로 설정, 스포츠에 관한 시책을 종합적이고 계획적으로 추진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기계획과 함께 투자를 집중시키면 인적자본의 성과가 창출되는 건 당연한 스토리다.

장기계획과 투자가 부족하다면 연구도 스포츠도 국가경쟁력도 하락하는 것 또한 당연한 스토리다. 아시안게임에서 나타난 한국과 일본의 격차는 어쩌면 서막에 불과할지 모른다.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다. 2020년 2월 한국경영학회에서 우수경영학자상을 수상했으며 올 2월 '2022년 한국경영학회 학술상' 시상식에서 'K-Management 혁신논문 최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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