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탑건: 매버릭’,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짐을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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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탑건: 매버릭’,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짐을 보여주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2.07.1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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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항공모함에서 전투기가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비행갑판 승조원과 전투기 조종사가 수신호를 주고받자 전투기 엔진에서 파란 불꽃이 폭발한다. 이윽고 전투기는 짧은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한다. 날아오르는 전투기 뒤편으로 항공모함은 점점 작아지고 바다는 점점 넓어진다. 

영화 '탑건: 매버릭'의 오프닝 장면이다. 이 영화의 전편인 '탑건'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항공모함과 전투기가 달라졌을 뿐. 지금도 인기가 많은 '탑건'은 그동안 후속편 제작 요청이 많았으나 36년 만에야 이루어졌다. 그 세월만큼이나 달라진 게 많이 보이는 영화다.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 컷

달라진 것들

우선 시대가 달라졌고 적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탑건'은 냉전 시대인 1986년도에 개봉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소련이었던 시절, 독일이 서독과 동독이었던 시절이었다. 

냉전 시대에 만든 영화 '탑건'은 인도양에 면한 가상의 적국을 내세웠지만 결국 ‘소련’이 적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소련을 떠올리게 하는 전투기 도색이나 ‘미그’로 시작하는 전투기 이름이 그렇다.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30여 년이 흐르면서 세상에는 새로운 갈등과 분쟁이 계속 생겨났다. 특히 ‘신냉전’이나 ‘블록화’ 등으로 ‘적’에 대한 새로운 정의(definition)가 필요한 시절이 되었다. 우방이 영원한 우방이 아니고 적이 영원한 적이 아닌 시절.

이를 반영하듯 '탑건: 매버릭'은 ‘적’에 대한 단서를 최대한 숨긴다. 특히 가상의 적국에 대한 그 어떤 지형적 힌트도 제공하지 않고 적국의 전투기 또한 이름 대신 ‘5세대 전투기’라는 표현만 쓴다. 또한, 전투기를 평범하게 도색 하고 조종사의 헬멧까지 짙게 선팅을 해 작은 단서도 주지 않았다. 마치 그 어떤 나라의 신경도 거슬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36년이 흐른 만큼 미 해군 주력 전투기도 교체됐다. '탑건'에 나온 조종사들은 F-14 전투기를 몰았다. 톰캣(Tomcat)으로도 불린 F-14는 20세기 후반 미 해군의 주력 함재기였다. 1974년에 실전 배치되었고 2006년에 퇴역했다. 

'탑건: 매버릭'에 나온 미 해군 조종사들은 ‘F-18 E/F 슈퍼호넷(Super Hornet)’을 탄다. 슈퍼호넷은 1999년부터 미 해군에 실전 배치되었으며 2006년부터는 F-14를 대체하는 주력 함재기로 자리 잡는다. 

주인공인 매버릭(톰 크루즈 분)도 많이 변했다. '탑건'에서 실력은 물론 패기까지 넘치는 미 해군 대위였던 매버릭은 36년 뒤 '탑건: 매버릭'에서는 실력은 여전하지만 조금은 진중해진 미 해군 대령으로 등장한다. 다만 매버릭의 친구가 4성 제독으로 진급한 것에 견주어 보면 그의 해군 장교로서의 행보가 순탄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인간 ‘톰 크루즈’도 20대 중반에 촬영한 '탑건'에서의 모습과 60을 바라보는 '탑건: 매버릭'에서의 모습, 흘러간 36년의 변화를 비교해볼 수 있게 만든다. 

세대와 세대로 이어지는 

'탑건: 매버릭'은 전편과 달라진 점들에서 세대교체를 느끼게 한 영화였다. 선배세대에서 후배세대로 주인공이 이어지는 느낌이랄까. 

이 영화의 주역이기도 한 전투기부터 그랬다. '탑건'의 주역 전투기가 F-14였다면 '탑건: 매버릭'의 주역 전투기는 F-18이다. 정확히는 F-18 E/F, 별칭이 슈퍼호넷이다. 영화에서 한 명이 탑승하는 전투기가 F-18E, 두 명이 탑승하는 전투기가 F-18F다. 

전투기는 세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등장한 1세대 제트전투기부터 영화에서 언급된 적국의 5세대 전투기 등. 미국과 러시아 등은 6세대 이후의 차세대 전투기도 개발하고 있다. 참고로 7월 후반 시험 비행을 앞둔 국산 초음속전투기 KF-21은 4.5세대로 분류된다. 

한편, F-14는 4세대 전투기이고 F-18 슈퍼호넷은 4.5세대 전투기다. 영화 대사 중 F-14를 유물이라고 표현하는데 영화 장면 중에 터치식 패널인 F-18 조정석과 달리 F-14 조정석은 온통 켜고 끄는 스위치 방식으로 나온다.

전투기에 있어서 0.5 세대는 큰 차이다. 컴퓨터와 레이더 등 장착된 시스템과 장비가 진화해 그만큼 전투기의 활동 능력도 발전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전투기는 세대가 차이 나면 공중전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그 차이를 극복하는 게 전투기 조종사의 능력이라는 대사가 '탑건: 매버릭' 장면 중에 나오긴 한다.

아무튼, 냉전 시대에 항공모함 비행갑판을 가득 메웠던 F-14는 이제 F-18 슈퍼호넷에 그 자리를 넘겨주었다. 물론 그 자리도 머지않은 미래에 차세대 전투기가 이어받을 게 분명하지만.

등장인물의 활약도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짐을 상징한다. 매버릭은 오랜 경력에 걸맞지 않게 대령으로 등장하는데 만약 그가 사고를 치지 않았다면 최소한 별 두 개를 단 제독이 됐을 거라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매버릭은 훈장을 무척 많이 받은 대령으로서 만족하는 듯 보인다. 

현역 전투기 조종사로서 자부심이 매우 높은 매버릭에게 지휘부는 젊은 조종사들의 교육을 맡긴다. 이들 젊은 조종사들은 ‘탑건 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근무 성적도 훌륭한 해군 대위들이다. 젊은 시절 매버릭처럼.

지휘부는 이들 젊은 조종사들에게 중요하지만 위험한 임무를 맡긴다. 비행 기술이 뛰어나다 자신하는 젊은 조종사들에게 매버릭은 더욱 뛰어난 비행 기술과 경험에서 우러난 능력으로 모범을 보인다. 매버릭은 이들 젊은 조종사들의 임무 성공은 물론 무사 귀환까지 염두에 두고 교육한다.

물론 매버릭이 영화의 주인공이라 클라이맥스에서 큰 활약을 벌이지만 젊은 조종사들의 활약 또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마치 이제 믿고 맡겨도 되는 후배세대가 생긴 듯한 모습이었다. 

이 모든 활약이 끝난 후에 흘러나온 엔딩 장면 또한 매버릭이 오랜 임무를 벗어 던진, 혹은 후배에게 넘겨준 홀가분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36년을 기다린 관객에게 선물 같은 영화

36년 전 '탑건'을 인상 깊게 봤던 필자는 '탑건: 매버릭'을 설레는 마음으로 감상했다. 그때는 20대 초반 대학생이었는데 지금은 5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전편과 후속편 간격만큼 관객도 나이가 든 것. 

그래서 두 편의 영화에서 보이는 변화에 관심이 쏠렸는지도 모르겠다. 변화는 진화와 발전을 의미하기도 하고 세대와 세대의 이어짐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만약 '탑건' 시리즈가 여느 프랜차이즈 영화처럼 이른 시일 안에 제작되었다면 표현하지 못했을 가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4일 '탑건: 매버릭'이 관객 500만을 돌파했다. 다른 영화에 밀려 2위로 내려갔던 점유율도 다시 1위로 올라섰다고. 

이러한 역주행 요인에는 입소문과 재관람이 있다고 한다. 객석 분위기 또한 영화의 인기를 상징한다. 나이 지긋한 중장년부터 학생복 입은 청소년들은 물론 가족 단위 관람객까지 여러 세대가 객석에 보이고 이들 모두 영화에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그래서 ‘탑건’ 시리즈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영화가 된 것이 아닐까.

영화 '탑건: 매버릭'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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