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부부에게 '쉼표'가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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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부부에게 '쉼표'가 필요하죠
  • 김이나
  • 승인 2015.09.23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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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은 대화와 자기성찰과 반성을 위한 시간인 것

얼마전 젊은 부부가 찾아왔다. 외모도 수려하고 패션도 나무랄 데없고 말투도 세련된, 흔한말로 차도남, 차도녀 스타일의 부부였다. 이들이 찾아온 이유는 협의이혼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모든 합의가 끝난 상태로 부부가 나란히 동시에 방문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갈등을 겪고 있는 한쪽 배우자가 찾아와서 상담을 신청하거나 상대 배우자로부터 난데없이 이혼 소장을 받고 얼굴이 허옇게 질려 급하게 찾아오는 경우다
이들이 이혼을 결심하게된 이유는 명확했다. 3년여를 살았는데, 서로의 가치관도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도 달라서 헤어지기로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아이도 아직 없으니 걸림돌이 될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두분은 협의이혼 절차와 재산 분할에 대한 조언을 들은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란히 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어갔다.
물론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미 결론이 내려진 상태에서 복기를 해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그저 그들의 선택이 각자의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길 바랄 뿐이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들 한다. 처음이라 그런 거라고 한다.
첫 걸음마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의 삶은 수많은 처음으로 만들어지는 역사다.
달려들고, 해보고, 맛보고, 말 걸고, 만들고, 느끼고... 그 처음들로 내가 만들어지고 관계가 만들어진다. 시도조차 안하는 것, 평생 피하고 사는 것도 있지만 꼭 거쳐야하는 것들이 있다.
두 발 자전거를 타려다 넘어져 무르팍이 까지고, 반장 선거에도 떨어지고, 면접에 떨어지기도 하고, 프레젠테이션을 망치기도하며, 첫 사랑에 실패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절망하고 낙담한다.  어쩔 수 없이 수 많은 처음은 실패와 더 친하다.
남들의 처음은 성공과 친한 것처럼 보이지만 난 왠지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운이 좋았을 거라고, 아마 처음이 아닐꺼라고 의심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인데도 완벽한 성공으로 보여져야 하는 것이 있다.
결혼이다.
연애를 수 십 번 해봤다 하더라도 결혼은 처음일 때가 대부분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라는 내 인생 최고의 이벤트는 그럴듯한 형식도 요구된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도 끼어있는) 수 많은 하객들 앞에서 부부가 됨을 공표해야 한다.
내 인생 처음으로 주연배우로 캐스팅 되어 화려한 의상을 입고 런웨이도 걸어 본다. 식은땀이 흐르고 표정은 부자연스럽지만, 이런게 처음임을 증명해주는 디테일이다.

힘차게 울려퍼지는 결혼행진곡은 결혼생활의 서막을 알린다.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이제 출발이다. 비로소 이제 둘이 되었다. 시동을 걸고 스무스하게 출발해볼까?
웬걸, 출발부터 진땀이 난다. 초보 티를 내려고 하지 않는데도 신기하게 티가 난다.
속도를 좀 올려볼까? 겁이 난단다. 속도를 줄여본다. 답답하단다.
잠깐 한 눈 팔다 앗차 옆차선을 침범한다. 초행길이라 헤매기 시작이다. 친절한 내비 양의 상냥한 안내도 소용없다.
버벅대고 서투른데 게다가 눈치까지 봐야하는 동승자도 있다. 내 맘대로 안된다.
하지만 이미 길은 떠났다. 목적지를 향해 가야한다.
시동을 끄지않는 한, (사랑이라는) 연료가 아직 충분한 이상 돌아갈 수 없다. 멈출 수 없다.

잠시 쉬자. 숨 좀 돌리자. 한숨 돌리고 다시 출발하자.
그런데 다시 출발하기 전 이 말만은 해두자.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지만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답하고 속상하더라도 믿어달라고.
내비 양은 잠시 쉬게하고 대신 지도도 봐주고 이정표 좀 봐달라고.
완벽하지 않지만, 아니 완벽할 수도 없지만 잘해낼 거라고.
시원하게 뻗어있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지 평탄치 않은 지루한 길로 가게될 지 모르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가야하니까 참고 버텨보자고.

살다보면 쉼표가 필요하다. 부부에게도 쉼표가 필요하다.
쉼은 대화와 자기성찰과 반성을 위한 시간이다.
쉼표를 자주 찍으면 어떤가. 아무리 수없이 많은 쉼표를 찍더라도 마침표만 찍지 않으면 된다.
처음이라 서투른데 어쩌랴… 그저 쉬엄 쉬엄 쉼표만 꾹 꾹 눌러 찍어주면서 사는거다.
그러다보면 부부로서 아직 10분에 1도 살아보지 않고 쿨하게 헤어지는 일은 없을거다.
마침표는 잊자. 그냥 쉼표만 기억하자 꼭.

 

김이나 ▲디보싱 상담센터 양재점/ 이혼플래너  ▲서울대학교 대학원졸(불문학) jasmin_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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