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피운 배우자 이혼 청구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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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피운 배우자 이혼 청구 못한다
  • 오피니언뉴스
  • 승인 2015.09.1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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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현 단계서 파탄주의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람을 피우는 등 결혼생활이 깨지는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가 제기한 이혼 소송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대법원이 판결했다. 결혼생활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유책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의 '유책주의' 판례를 고수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 대법관)는 15일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에 참여한 대법관 13명 가운데 7명은 잘못이 있는 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허용하는 '파탄주의' 전환이 현 단계에서 아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나 민일영 김용덕 고영한 ·김창석 김신 김소영 대법관 등 6명은 파탄주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반대 의견을 냈다.
 
▲ 양승태(가운데) 대법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선고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은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재판상 이혼제도뿐 아니라 외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협의이혼 제도를 택하고 있어 잘못이 있는 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4년 기준으로 볼 때 전체 이혼 가운데 77.7%에 해당하는 이혼이 협의이혼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위해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까지 파탄주의를 채택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또 파탄주의를 취하는 여러 나라에서는 상대방이나 자녀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면 이혼을 허가하지 않는 이른바 가혹조항과,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제도를 두는 등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아무런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법원이 판례로 기준을 제시하거나 위자료나 재산분할 실무로 상대방을 보다 두텁게 배려할 수도 있지만 사법적 기능만으로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파탄주의를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섣불리 파탄주의로 전환하면 사회적 약자가 보호받지 못하게 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어 간통죄 폐지 이후 중혼을 처벌할 방법이 없어진 상황에서 아무런 대책 없이 파탄주의로 간다면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고, 축출이혼이 발생할 위험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1976년 A씨와 결혼한 B씨는 1998년 다른 여성과 혼외자를 낳았다. 2000년 집을 나온 B씨는 이 여성과 동거하다 2011년 A씨를 상대로 이혼 소송을 냈다.
1, 2심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B씨의 이혼소송을 기각했다. 대법원도 이날 B씨의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유책주의 대 파탄주의
배우자 중 한 쪽이 동거나 부양, 정조 등 혼인 의무에 위반되는 행위를 했다면 이런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1965년 이후 유지돼 온 대법원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다만 법원은 결혼생활을 계속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악의적으로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려고 이혼을 거부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이혼을 인정해왔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는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났다면 누구의 잘못인지를 묻지 않고 이혼을 하도록 허용해주는 파탄주의를 택해왔다.
유책주의가 법원이 혼인관계를 지속하도록 강제해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거나 소송 과정에서 이혼을 하려고 상대방의 잘못을 들춰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감정이 상하게 한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제기돼왔다.
시대 상황이 바뀌었다는 여론이 일자 대법원은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한 뒤 지난 6월 공개변론을 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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