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식품업계 결산] ① 정부 압박에 '올렸다 내렸다'…가격 인상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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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식품업계 결산] ① 정부 압박에 '올렸다 내렸다'…가격 인상 줄다리기
  • 김솔아 기자
  • 승인 2023.12.28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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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눈치보기에 가격 인하·인상 철회 잦아
"비용 부담 커졌는데"…업계 속앓이
가격 압박 부작용 우려…'슈링크플레이션' 도마에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과자 상품.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과자 상품.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아 기자] 2023년 식품업계는 길어진 경기침체와 고물가 여파 속 정부의 물가 압박에 눈치 보는 한 해를 보냈다. 원·부자재 가격, 인건비 등 각종 비용이 상승하는 가운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업계와 가격 인상 자제를 요청하는 정부 사이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올해 초까지는 각종 음료, 제과 등 제품에 대한 식품업계의 도미노 가격 인상이 이어졌다. 업계는 원부자재 가격 상승을 비롯해 에너지 비용, 인건비 등의 부담으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치솟았던 곡물, 육류 등 세계 식량가격의 하락 흐름이 시장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분위기는 지난 6월부터 달라졌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재 국제 밀 가격이 전년 대비 50% 가량 내려갔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적정하게 라면 판매가를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업계의 가격 인하 여부에 이목이 쏠렸다.

이후 농심이 신라면과 새우깡의 출고 가격을 각각 4.5%, 6.9% 인하하겠다고 밝히며 업계의 가격 인하 행렬이 시작됐다. 삼양식품은 삼양라면, 짜짜로니, 맛있는라면, 열무비빔면 등 12개 대표 제품 가격을 평균 4.7% 인하했으며 오뚜기는 라면류 15개 제품 가격을 평균 5% 인하했다. 팔도 역시 11개 라면 제품 소비자 가격을 평균 5.1% 내렸다. 여기에 롯데웰푸드, 해태제과, SPC 등 기업들도 가격 인하에 동참했다.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에 일부 기업은 가격 인상안을 발표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이달부터 편의점 채널에서 분말 카레와 케첩 등 대표 제품 24종의 가격을 올릴 예정이었던 오뚜기는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 속에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민생 안정에 동참하고자 한다”며 가격 인상을 철회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3월 편의점 판매용 고추장과 조미료 등 제품 출고가를 최대 11% 인상하려던 계획을 철회했고, 지난 8월엔 스팸 2종의 편의점 판매 가격을 인상하려다 철회했다. 지난 2월에는 풀무원이 ‘풀무원샘물’ 등 생수 제품의 편의점 출고가를 평균 5.0% 인상하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마트에 진열된 소주 제품 모습. 사진=연합뉴스
마트에 진열된 소주 제품 모습. 사진=연합뉴스

주류업계도 올 초부터 연말까지 정부의 눈치를 봐야 했다. 지난 2월 추 부총리는 소주업체들이 가격 인상 움직임을 보이자 업계에 인상을 자제해달라는 목소리를 냈다. 추 부총리의 발언 후 국세청이 주류업계의 가격 인상 움직임과 관련해 실태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에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등 주류 업체들은 "당분간 가격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문을 냈다.

이후 가격 인상을 자제해오던 주류업계는 10월 무렵부터 가격 올리기에 나섰다. 오비맥주는 10월 ‘카스’, ‘한맥’ 등 주요 맥주의 출고가를 평균 6.9% 인상했으며 하이트진로는 11월 소주 ‘참이슬’의 출고가를 6.95% 올렸다. 지난 18일에는 롯데칠성음료가 ‘처음처럼’과 ‘새로’의 반출가격을 각각 6.8%, 8.9% 인상했다.

다만 내년 정부의 기준판매비율 도입에 따라 최근에는 주류 제품의 물가 안정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업계는 연내 출고분에 대한 선제적 인하에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지난 22일 참이슬과 진로의 출고 가격을 기존 출고가보다 10.6% 내렸다. 보해양조도 잎새주 등 소주 제품군의 출고가를 10% 인하했다. 롯데칠성음료는 지난 27일부터 처음처럼 출고가를 4.5%, 새로는 2.7% 인하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압박이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장의 가격 인하가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에 일부 보탬이 될 수 는 있으나, 기업이 추후 가격을 더욱 올리거나 제품의 용량을 줄이는 등 손실 보전에 나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제품의 가격은 유지하는 대신 용량을 줄여 실질적인 가격인상 효과를 노리는 '슈링크플레이션'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달 한국소비자원은 참가격 내 가공식품, 슈링크플레이션 신고센터에 신고된 상품,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된 슈링크플레이션 식품을 조사한 결과, 최근 1년간 총 9개 품목, 37개 상품의 용량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7일 '소비자기본법'에 근거한 '사업자의 부당한 소비자거래행위 지정 고시' 개정안을 마련해 이날부터 다음 달 16일까지 행정예고 한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은 물품을 제조하는 사업자가 용량 등 상품의 중요사항이 변경됐음에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 행위를 사업자의 부당행위로 지정하는 것이다. 적용 대상 품목은 국민 실생활에 밀접한 품목들이다. 구체적으로 견과류, 당면, 부침가루, 스프, 즉석국, 즉석덮밥, 즉석밥, 즉석죽, 컵라면, 컵밥, 탕 등이다.

고시 개정안이 시행되면 적용대상 물품 제조업체들은 용량 등 중요사항 변경 시 이를 한국소비자원에 통지해야 한다. 이어 포장 등에 표시하거나 자사 홈페이지 공지 또는 판매 장소에 게시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과태료가 부과된다. 1차 위반 시 500만원, 2차 위반 시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해당 고시 개정안이 시행되면 용량 등 중요사항 변경에 대한 정보가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돼 소비자들의 합리적 선택이 용이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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