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 달 공들인 '은행제도개선안'…벌써부터 실효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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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 달 공들인 '은행제도개선안'…벌써부터 실효성 논란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3.07.0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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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은행권 "'법인지급결제' 제외 아쉽다"
은행권 "투자일임업 보류 결정 아쉬워"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고 경쟁을 촉진한다며 정부가 내놓은 '은행 제도 종합 개선안'이 각 업권에서 제시한 '숙원 과제'는 장기 과제로 남기면서 기대와 달리 '반쪽짜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은행권에선 기대했던 비이자이익 확대 방안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낸 반면 비은행권에선 '지급결제업 허용'이 빠진 부분이 아쉽다고 지적한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5일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김 부위원장은 "비은행권 지급결제업에 대해서는 기존보다 전향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지급결제 업무는 다른 사안에 비해 시스템 안정성에 문제가 커 신중히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동일기능-동일리스크-동일규제' 원칙만 재확인했다. 지급결제 안정성 확보를 위한 건전성, 유동성 관리, 담보제도와 같은 구체적 사안은 논의조차 안됐다.

증권사, 법인지급결제 전망 '흐림'…숙원사업 물 건너가나

증권사, 카드업계, 보험사, 핀테크업계 등은 숙원 사업으로 법인지급결제 허용을 여러 차례 요구했다. 이들 비은행권은 지급결제 허용으로 주식 투자와 카드 결제, 보험료 납입 등 긍정적 편익이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법인지급결제 허용을 주장해 온 증권사의 실망감이 크다. 앞서 금융투자협회는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허용은 기업이 증권종합계좌에서 여유자금운용과 거래대금 및 운영자금 입출금 등 기업활동에 필요한 종합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며 "국민들도 증권계좌 활용성 확대로 편익을 누릴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법인지급결제 업무는 자본시장법상 증권사에 이미 허용됐지만 2007년 해당 법 제정 이후 은행권의 반발로 금융결제원 규약에 따라 현재 개인 지급결제만 가능하다. 금결원의 '전자상거래 지급결제 중계업무규약'은 '금융투자사는 법인이 PG(결제대행)업무를 이용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내 10대 증권사 사옥 전경.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도 결제 안정성을 이유로 비은행권의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반대하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은 "전 세계에서 엄격한 결제리스크 관리가 담보되지 않은 채 비은행권에 소액결제시스템 참가를 전면 허용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고객이 체감하는 지급서비스 편익 증진 효과는 미미한 반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은 은행의 대행 결제 금액 급증, '디지털 런' 발생 위험 증대 등으로 크게 저하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행은 증권업계를 포함한 비은행권은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 등 은행법에 따른 건전성 규제와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의 적용에서 배제돼 있고, 예금자보호법 적용을 받지 않아 규제차익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지급 리스크가 높은 데 법인 지급결제 허용이 맞느냐' 당국의 우려가 반영된 것 같다"며 "CFD 미수채권까지 맞물리면서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금융당국의 결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실제 업계 안팎에선 지난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사태에 이어 지난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비은행권의 법인지급결제 허용에 영향을 줬을 거라는 뒷말이 나온다. 해당 사태에 따른 장단기 미스매칭과 불거진 차액결제거래(CFD) 관련 미수채권 발생 등이 맞물리면서 사실상 이번 논의에서 배제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핀테크 업체와 공정한 경쟁을 강조하며 종합지급결제 허용을 주장했던 카드업계와 보험료 자동이체 수수료 절감에 따른 보험료 인하 등 금융소비자 편익 증대를 강조했던 보험업계도 정부의 아쉽다는 반응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누가 더 빠르고 쉽게 결제 시스템을 만드냐'가 최근 업계의 트렌드인데 카드사의 경우 은행 계좌 확인이라는 단계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말했다.

법인 지급결제 허용 논의는 추후 계속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하반기 한국은행, 금투업계 등과 함께 논의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은행권의 숙원 사업이던 투자일임업 허용이 정부의 종합개선안에서 빠졌다. 사진=연합뉴스

은행 vs 증권 '팽팽'…정부, 투자일임업 '보류'

은행권은 '이자장사 탈피'의 통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투자일임업이 종합개선안에서 빠진 것을 지적한다. 

은행연합회는 현재 국내 은행 비이자이익 비중이 12% 불과하며 이는 미국 은행(30.1%)과 비교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 강조했다. 이어 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비이자수익 확대 방안으로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벤처투자를 늘리고 신탁업 혁신, 투자자문업 활성화 등이 수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벤처펀드 출자한도는 이미 지난 4월 2배 상향(자기자본 0.5%→1%)되며 최대 1조7000억원까지 가능해졌다. 신탁업 역시 신탁 가능 재산이 확대되는 동시에 전문기관 위탁을 허용하는 등 이번 종합개선안에서 진일보했다. 금융위는 재산 신탁 범위 확대는 물론 비금융전문사인 병원이나 회계법인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신탁상품이 출시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제는 투자일임이다. 금융위는 향후 국내 은행권이 합리적 수준 내에서 '비(非)금융업'을 수행할 수 있게 허용한다는 원칙만 확인했다. 

현재 은행권의 투자일임은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에 한해 허용되고 있어 원스톱 종합자산관리서비스 제공에 한계가 있다. 투자일일임업이 허용되면 기관과 고액자산가 또는 상품 판매 투자일임 서비스를 벗어나 소액투자자, 은퇴자, 고령자 등 모든 금융소비자에게 맞춤형 투자일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게 은행권의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은행업권·금융회사 간 경쟁 및 혁신이 촉진돼 자산관리서비스 품질도 향상되며 소비자 선택권 확대가 기대된다고 은행권은 말한다. 은행 편에서 보면 판매수수료 중심에서 관리와 운용, 보수(fee) 중심으로 사업모델을 다각화할 수 있다. 

은행권은 "은행의 자산관리서비스가 확대·활성화하면 자산관리서비스가 대중화되고 경쟁과 혁신에 따른 소비자 선택권도 확대될 것"이라면서 "증가하는 자산관리 수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비이자이익 비중도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투자업계는 반발했다. 증권업계의 핵심인 투자일임업을 은행권의 안정적 수익 확보를 이유로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은행에 투자일임업이 허용되면 중소 증권사의 경영 사정이 어려워져 증권업계의 다양성이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양측이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 온 가운데 금융당국의 선택은 은행권의 투자일임업 보류다. 

금융위는 "은행에 투자일임 허용 문제는 투자자문, 신탁업 등을 통한 자산관리서비스 성과를 봐가며 추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금융위는 은행의 비금융업 수행과 관련해 올해 3분기 중 별도의 세부방안을 발표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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