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트렌드]⑤ "어려운 철학, 편안하게 공부해요"…철학 구독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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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트렌드]⑤ "어려운 철학, 편안하게 공부해요"…철학 구독 프로그램
  • 김솔아 기자
  • 승인 2022.02.0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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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오리, 철학 도서·굿즈 제공하고 온·오프라인 공부 모임
디자인과 재미 요소로 논문 수준 텍스트도 친숙하게
시시각각 바뀌는 최신 트렌드. 시간을 들여 살펴보지 않으면 눈 깜짝할 새에 유행은 바뀌어 있다. `MZ`, `핫플`, `힙` … 흘러넘치는 키워드 속에서 지금 인기를 끄는 생활 방식은 무엇일까. 바쁜 일상을 살아가지만 트렌드를 놓치고 싶지 않은 현대인에게 슬기로운 '요즘' 생활 팁을 안내한다. [편집자주]
전기가오리의 철학 텍스트 

[오피니언뉴스=김솔아 기자] 홀로 낯선 학문을 공부하는 건 쉽지 않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는지, 단어의 뜻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등 어려운 점 투성이다. 그중에서도 몹시 복잡하고 모호해 보이는 철학은 진입장벽이 높다. 이런 철학을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가 있다. 학문 공동체 '전기가오리'다.

전기가오리는 일정 금액을 내면 두달에 한번 각종 서양 철학 논문이나 문헌, 철학 굿즈 등의 '물질적 혜택'을 보내준다. 비물질적 혜택도 있다. 구독자는 인터넷을 통해 철학 논문 설명을 듣거나, 영어 공부를 돕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현재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중단됐지만, 지역을 가리지 않고 운영자가 직접 방문해 철학 관련 설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구독자들은 전기가오리를 '철학 구몬'이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인스타그램에 전기가오리를 검색하면 #전기가오리하세요, #전기가오리흥해라 등 구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수많은 해시태그가 뜬다. 

'편안한 공부 모임' 지향

신우승 대표는 전기가오리를 시작하게 된 이유로 두 곳의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며 느꼈던 '환멸'을 꼽았다. 그는 "다음 세대의 연구자를 양성해야 할 교수가 논문 지도에 관심이 없다 말하고, 학생에게 인간적인 모욕을 행하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재야의 선생을 찾아가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 같은 부조리 없이 편안히 공부만 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고, 전기가오리가 탄생했다. 

'책을 도저히 끝까지 읽을 수 없다'는 개인적 한계도 그가 전기가오리를 시작한 동기 중 하나다. 많은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한 권도 마무리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지자 책을 함께 읽을 사람을 찾았다. 칸트 철학 공부 모임을 시작으로 함께 공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들과 번역한 원고가 출판할 수 있을 정도로 쌓였다. 출판하며 '전기가오리'라는 이름을 달게 됐다.

전기가오리라는 이름은 플라톤의 '메논'에서 따왔다. 자신의 지식을 확신하던 메논이 소크라테스와의 연이은 문답 끝에 말문이 막혀 그를 '전기가오리'로 비유한 일화에서 착안했다. 

신 대표는 전기가오리를 통해 "현대 한국어를 반영한 번역 원고나 초심자가 이해할 수 있는 해설 원고, 또 종전에 없던 형태의 출판물을 만들어 시민의 철학 공부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자세한 설명, 트렌디한 디자인, 유머러스함' 삼박자로 철학 가까이 

독서 유튜브 '잉여북스'의 전기가오리 소개 영상 캡처
독서 유튜브 '잉여북스'의 전기가오리 소개 영상 캡처

전기가오리는 도서와 함께 설명 원고를 배송한다. 또 논문에서 한 문장을 뽑아 그 문장을 둘러싼 맥락, 개념 등을 설명하는 '천 논문도 한 문장부터' 텍스트는 구독자가 논문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물품 구성은 전기가오리의 목표와 닿아있다. 전기가오리는 교육에서도 변화를 꾀한다고 설명했다. 입문서에 갇히지 않고 논문을 교재로 삼아 교육의 수준을 높이고 싶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의와 설명에서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신 대표는 "전기가오리 공부에 참여함으로써 철학이라는 영역의 전문 지식이 특정집단에 갇히는 것을 방지하고, 학술적 물음을 함께 다루어 볼 수 있다"고 했다. 

전기가오리는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철학 굿즈도 비정기적으로 제공한다. 2020년 연말에는 '어느 대학원생 X의 석사과정'이라는 철학 보드게임을, 2021년 연말에는 매일 한가지의 철학적 물음을 만날 수 있는 '전기가오리 철학적 일력'을 발송했다. 신 대표는 현재도 새로운 보드게임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잭과 콩나무' 또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짜고 있다"며 "철학 문제를 하나 틀렸을 때 게임판에 대홍수가 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기가오리의 도서·굿즈 디자인은 포장의 기능을 넘어 작업물을 완성하는 요소다. 트렌디한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만화가 등의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한다. 홀로 전기가오리를 운영하는 신 대표가 작가를 직접 섭외한다. 철학적 주제를 만화로 시각화해 선보이는 '철학 in da 그래픽' 시리즈도 제작한다. 

신 대표는 전기가오리의 새로운 기획을 끊임없이 구상해 2050년까지 운영할 계획이다. 그는 "이 일은 제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하고 싶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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