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외교의 함정에 빠진 카타르…사우디 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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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외교의 함정에 빠진 카타르…사우디 단교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6.06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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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파 7개국 경제 제재로 사재기등 파동…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

 

카타르(Qatar)는 중동 아라비아 반도의 서쪽에 있는 작은 반도국가다. 면적은 1만1,586㎢으로 경기도 정도이고, 인구는 226만명으로 대구시 정도 되는 소국이다.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다.

하지만 경제력은 풍부하다. 산유국인데다 액화천연가스(LNG) 생산량과 매장량이 세계 3위다. 우리나라에서 소비되는 LNG의 가장 많은 물량이 이 나라에서 들여온다. 소국에 자원은 풍부하기 때문에 1인당 GDP가 12만7,660 달러로 IMF 기준으로 세계 1위다.

이 잘 사는 나라에 비상이 걸렸다. 이웃 사우디아라비아가 5일 단교조치를 단행하고, 이집트, 바레인,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 리비아, 예멘, 몰디브등 6개 수니파 아랍국가들이 사우디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단교 조치의 일환으로 카타르로 가는 육로 통행은 물론 항공, 해상 왕래를 막는 조치를 취했다.

카타르 국민들은 우선 먹고 사는 게 위태로워 졌다. 카타르에서 소비되는 식품의 절반 가까이가 육로를 통해 사우디에서 들어온다. 해상으로 도입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사우디가 해상봉쇄마저 내리면 타격이 크다.

카타르 주민들이 슈퍼마켓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사재기 파동이 벌어졌다. 먼저 달려간 사람들이 물, 달걀, 쌀, 우유, 고기등 식품들을 카트에 가득 실어가는 바람에 나중에 간 사람들을 살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번 사태는 ① 카타르에 대해 종주권 역할을 하려는 사우디와 ② 카타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란, ③ 그 틈바구니에서 중간자적 입장에 우왕좌왕하던 카타르 정부의 입장이 첨예하게 부딛친 결과다.

카타르는 한국과 지정학적으로 비슷한 위치에 있다. 사우디와 육로로 접해 있으며, 바다 건너 이란이 위치해 있다. 사우디와 이란은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주국으로, 이슬람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이 중간에 카타르라는 작은 나라가 어설픈 균형자, 즉 중립적 위치에서 둘 사이를 중재하겠다고 나서면서 사건이 복잡하게 꼬였다.

 

▲ 카트르 수도 도하의 모습 /위키피디아

 

사건의 발단은 카타르 국왕의 연설 기사였다.

카타르 국영통신사인 QNA이 5월 23일 카타르 국왕 연설을 보도했다. 기사 내용은 『셰이크 타밈 빈하마드 알타밈 카타르 국왕이 군사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란을 강대국으로 인정한다.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정당화할 구실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미국과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이란 적대정책을 비판한 내용이다. 동시에 레바논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무슬림형제단를 두둔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국왕이 적대국인 이란을 두둔하고, 그 동맹국을 비난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자, 이웃의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가 발끈했다. 카타르 국민의 대부분도 수니파이고, 두 나라 국민들은 동맹국으로 여겨왔다. 사우디는 조그마한 부속 국가가 자국과 이란 사이에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불쾌했다. 그동안의 서운한 감정도 함께 겹쳤다.

그러자 카타르 정부는 가짜 뉴스라고 둘러댔다. 정부는 이 기사가 해킹에 의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인터넷에서 즉각 삭제하고 진상조사를 벌였다. 그래도 사우디와 동맹국들은 카타르의 행동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보도파문 4일 후인 4월 27일 세이크 타임 카타르 국왕은 라마단을 맞이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외교 관례에서 어느 나라와 먼저 전화하느냐, 먼저 방문하느냐는 중대한 사인이다.

이에 사우디의 반격이 시작됐고, 이집트, UAE, 바레인등 수니파 국가들이 단교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 카타르 국기 /위키피디아

 

이 소국이 주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걸으려고 하는 시도는 37세 젊은 국왕의 패기 때문은 아니다. 카타르의 역사 속에 관통하는 약소국의 운명이 내재해 있다.

카타르는 기원전부터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인도를 연결하는 해상중심지로 걸프지역에서 무역 및 상업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페르시아에 이어 로마가 제국을 형성할 때 동서양 길목인 카타르를 넘보았고, 사우디에서 발원한 이슬람 왕조에 이어 오스만 터키도 카타르를 지배 하에 넣어 두었다.

그러다가 18세기말에 바레인 지역에 있던 토후 할리파 가문(Al Khalifa)이 이주해 오면서 토후국(에미레이트)을 건설했다. 할리파 가문은 사우디와 오스만 터키 사이를 번갈아 가며 종주국으로 인정하며 자치를 인정받았다. 영국이 세계의 바다를 장악할 때인 1868년 영국과 우호조약을 체결해 오스만 터키를 견제했지만, 또다시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1916년 1차 대전에서 터키가 패배한 후 영국의 보호령이 되어 왕조를 유지해 오다가 1971년 9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카타르는 독립한 후 대박이 터졌다. 기름이 쏟아지고 땅속에 묻혀 있있는 LNG는 소국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 주었다. 알라신이 가져다 준 경제적 부에 취한 카타르는 늘상 대립하는 주변 강대국의 중재자가 될 것임을 자처했다. 독립 당시에 인근의 UAE 7개 부족이 연합국을 수립하자고 제의했지만, 거부했다. 독자적으로 살아갈 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타르는 절대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카타르의 지배자들은 부에 힘입어 외국 문화를 개방하고 서구적 개혁을 받아들였으며, 각종 행사도 유치했다. 2006년 아시안게임을 걸프 지역에서 처음 개최했고, 2019년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를 열였고, 2022년 월드컵 축구 개최권을 중동에서 처음으로 획득했다.

현재 국왕 셰이크 타임은 2013년 부친으로부터 양위 받았는데, 현재 나이는 37세다. 그는 취임식에서 "카타르는 약속과 동맹을 존중하지만 우리만의 비전이 있고 다른 누구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는다"라고 밝혀 사우디와 이란, 서방 강대국에 대해 자주적 외교를 할 것임을 내비쳤다.

카타르는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에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2011년 리비아 내전에서 카타르는 사우디등 수니파 국가들이 반대하는 이슬람주의 민병대를 지원했다. 같은해 이집트에서 무슬림형제단에 의해 시민혁명이 발발했을 때 사우디 등 수니 국가들은 이 단체를 테러조직으로 규정하고 배척했지만, 카타르는 이 단체에 공개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2013년 무슬림형제단을 제압하고 압델 파타 엘시시 정권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했을 때도 카타르는 사우디와 다른 견해를 보였다. 카타르는 무슬림 형제단이 지원하는 이스라엘 가자지구의 무장단체 하마스에 돈줄 역할도 했다. 카타르의 독자적 외교 노선은 셰이크 타밈(37)이 즉위하면서 강화되는 추세에 있었다.

사우디를 포함해 7개국의 단교조치는 겉으로는 카타르를 국복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중동과 이슬람의 헤게머니를 둘러싸고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패권 싸움의 연장이다.

우리나라는 1971년 9월 카타르의 독립과 동시에 승인하고, 1974년 4월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1976년부터 한국의 건설업체가 진출했고, 1984년 4월 경제기술무역협력에 관한 협정, 1999년 4월에 투자보장협정, 외무부간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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