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수 에세이] 소녀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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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수 에세이] 소녀의 외출
  • 조병수 프리랜서
  • 승인 2017.05.2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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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과 여든아홉 어머니의 마음

 

[조병수 프리랜서] 오랜만에 보는 맑은 하늘이다.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오붓하게 동네 길을 나선다. 이번 겨울을 나면서, 걸음걸이가 예전 같지 않다. 지팡이를 쓰도록 권해도, 아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살포시 손을 잡는다. 가냘프고 앙상해도 매끈하고 보드랍다. “처녀 손 같다”고 너스레 한번 떨어본다.

길가 담벼락에 어느새 장미가 활짝 피어있다. 새빨간 색깔이 계절의 여왕답다. 사진 한 장 찍자고 핸드폰을 꺼내니, 꽃을 바라보며 자세를 잡는다. 머리칼은 백발인데도, 표정은 꿈 많은 소녀이다. 곱다···. 아름답다···.

 

▲ 사진=조병수

 

이른 저녁 삼아 돈가스와 우동을 나누는데도 스테이크 써는 기분이다. 성치 않은 치아지만 그런대로 잘 드시니 좋다. 꿈지럭 꿈지럭 손지갑 열더니 밥값을 꺼내신다. 아들내미 챙겨 주고픈 그 마음을 그스를 수가 없다. .

요사이 문득문득, 다가올 일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우리 소관이 아니니 오늘에 감사하며 살자”고 해본다, 그래도 허허롭다. 그 연세에 느끼는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뿔뿔이 나뉘어진 자식들 믿음 생각해서, 한꺼번에 “하나님, 부처님, 조상님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분이다. 그런 분의 손을 잡고 찬송가를 들려드린다.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구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중늙은이 아들의 어설픈 기도 중에 불쑥 이런 소망을 던지신다.

“하나님, 불러갈 때 제발 큰 문제없이, 자식들 고생 안 하게 해주세요. 아멘!”

 

목이 멘다.

어릴 적, 마루 끝에서 쏟아지는 소나기를 내다보는데 뇌성벽력이 떨어졌다. 엎어졌다가 정신차리고 보니, 우리들 위에 어머니께서 엎드려 계셨다. 순식간에 몸을 날려 자식들 감싸안고 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설 밑에 뺀 떡가래 머리에 이고 오다가, 눈길에 나동그라지셨다. 떨어지는 함지박에 눈가가 찢겨 피를 흘려가면서도 챙겨온 그 떡가래를 보며, 어린 마음에도 무언가 먹먹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희생 그런 수고 마다 않은 분을, 내 앞가름, 내 자식들 앞세우며 늘 뒤 켠으로 밀어놓고, 내리사랑 운운하던 자신이 부끄럽다.

 

아름다운 5월, 장미꽃 향기 담은 어머니 사진을 형제들과 나눈다. “소녀의 외출”이란 제목까지 붙여서···. 오래도록 우리 곁에 같이 계시기를 간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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