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⑨…풍요와 죽음의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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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⑨…풍요와 죽음의 교차로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5.18 1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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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도박사들, 카지노에서처럼 아슬아슬한 머니게임 벌여

 

뉴욕 월가는 기름진 강물에서 시작돼 무덤에서 끝이 난다.

‘월가(Wall Street)’란 지리적으로 뉴욕 맨해튼 남단의 거리 이름을 지칭한다. 동쪽으로는 허드슨강 지류인 이스트강, 서쪽으로는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트리니티 성당에 이르는 500 미터 남짓 되는 짧은 거리다. 동쪽 끝인 이스트강은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인 뉴욕 주를 촉촉이 적시고 바다로 흘러가므로 풍요를 상징한다. 그러나 트리니티 성당엔 무덤이 있다. 성공한 사람은 풍요의 강물처럼 유유자적한 삶을 살지만, 실패한 자는 무덤으로 가야하는 것이 월가의 냉엄한 현실이다.

월가에는 수많은 도박사들이 매일 투전판을 벌인다. 이들은 두 개의 전화통을 귀에 걸고, 두손은 컴퓨터를 두두리며 하루에도 수천억 달러를 베팅한다. 펀드매니저, 외환딜러, 애널리스트등 월가의 구성요원들은 풍요냐, 죽음이냐의 외나무다리에서 하루하루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는 무리들이다.

월가를 둘러보면 고급 레스토랑은 몇 개 있지만, 변변한 대중음식점이 없다는 것을 곧 발견한다. 땅값이 비싼 이유도 있지만, 월가는 점심시간에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월스트리터(월가 사람)들에겐 너끈하게 점심을 들 시간도 없다. 컴퓨터나 거래소에 앉아 샌드위치나 햄버거, 피자 등으로 식사하는 것이 고작이다.

 

▲ /구글지도

 

백만 장자 꿈꾸는 펀드매니저

 

월가의 연말은 펀드매니저들의 계절이다. 그들의 입에선 크리스마스 캐럴이 저절로 흥얼흥얼 흘러나온다. 미국경제가 장기호황을 구가하던 20세기 말에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은 해마다 20~30% 불어난 보너스를 지급받았다. 20세기 마지막 해인 1999년 12월 월가에 연말 보너스 100만 달러 이상의 고액 소득자 수가 5,000명에 달했다.

1997년 골드만 삭스의 경우 수백 여명에 이르는 파트너들은 최소한 400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스타급 펀드 매니저들은 2,500만 달러의 어마어마한 보너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았다. 매니징 디렉터(Managing Director)라고 불리는 중역급 200여명도 평균 150만 달러를 챙겨 보름간의 즐거운 연말 휴가에 들어갔다.

하루에도 수천억 달러가 거래되는 이 거대한 금융시장은 3만명에 이르는 펀드매니저에 의해 움직인다. 딜링룸 또는 트레이딩 룸에서 컴퓨터 온라인과 와이어로 들어오는 각종 뉴스와 지표를 보며 그들은 투자 종목과 물량, 시점을 결정한다.

이들은 카지노의 도박판처럼 머니게임을 벌인다. 그들의 베팅은 정확한 통계수치,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감성보다는 냉철한 이성이 이들을 지배하고 있고, 이들의 판단에 의해 핫머니가 밀물처럼 밀려들고, 또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하버드나 예일, 뉴욕, 칼럼비아대등 미국 동부 명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월가에 취직한 후 새롭게 금융시스템을 이해하고 머니 게임을 벌인다.

펀드 매니저의 연령층은 30대 또는 40대가 주류를 이룬다. 미국 최대금융그룹인 시티그룹의 투자은행인 살로먼스미스바니에서 회장을 지냈던 제임스 다이먼이 회장직을 물러날 때 나이는 41세에 불과했다.

펀드 매니저들의 정규 봉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월가에서 상류 매니저의 연봉은 20만 달러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철저히 업적주의에 의해 연말 보너스로 소득의 90% 이상을 채운다. 투자회사인 도널드슨 루프킨 젠릿(DLJ)사의 조 로비 사장의 경우 1997년 연말 보너스가 2,320만 달러나 됐다.

핫머니를 전문으로 하는 헤지펀드의 매니저들은 일반 펀드 또는 투자은행의 매니저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타이거 펀드의 줄리안 로버트슨 회장은 97년말에 3억 달러나 되는 거액의 보너스를 챙겼다.

그러나 베팅에 실패하거나, 소속회사의 영업실적이 좋지 않을 때 연말 보너스는 한푼도 없는 것은 물론 사전예고 없이 해고되는 비운을 당한다. 풍요의 정반대에 무덤이 있는 것이다. 월가의 아시아 담당 매니저들은 1997년과 98년에 억울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월가 펀드매니저 세계에는 철저한 시장원리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둠을 밝히는 외환딜러

 

뉴욕 맨해튼 남단은 미국에서 새벽이 가장 먼저 찾아드는 곳이다. 월가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각은 새벽 5시 30분께. 외환 딜러들이 어둠 속에서 사무실을 밝히고,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은 6시께. 이때부터 전화통에 불이 나고, 정신없이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밤새 도쿄와 홍콩, 런던과 프랑크푸르트에서 들어온 팩스를 훑어본다. 곧바로 국제전화로 런던과 도쿄를 연결, 국제금융시장 장세를 점검하고 달러를 살 것인지, 엔화를 살 것인지를 점검한다. 일본 정부의 태도가 미심쩍다 싶으면 엔화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으면 더 떨어지기 전에 엔화를 매각해야 한다. 그런데 미국 무역적자가 확대됐다는 뉴스가 들어오는 날엔 달러 하락에 베팅을 거는 게 안전하다.

국제외환시장은 증권거래소나 상품거래소처럼 일정한 장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각 은행 또는 기관투자자, 증권회사를 연결하는 전화와 컴퓨터 온라인망이 곧 시장이다. 외환 거래를 취급하는 은행들은 딜링룸을 갖추고, 정예 외환딜러들을 확보하고 있다.

외환 딜러에 이어 오전 7시께 채권 딜러들이 출근하는데, 시키고 선물시장이 8시 20분에 개장하기 때문이다. 이어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딜러와 브로커, 파생금융상품 및 펀드매니저들이 속속 출근하면서 월가는 풀가동된다.

 

외환 딜러들이 하는 일은 돈놓고 돈먹기를 하는 것과 같다. 환율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고객이 교환을 의뢰한 돈을 온라인망을 통해 띄워 매입자를 찾는다. 매입자가 여럿 나타나면 이중에서 가장 유리한 환율을 제시하는 상대를 선택, 거래를 성사시킨다.

미국의 외환딜러들은 시장이 크기 때문에 외환을 사고 파는 트레이드(거래)를 하루에도 2,000번 정도 한다.

국제외환시장 규모는 국경이 무너지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각국간 거래되는 외환 규모가 20세기말에 하루 2조 달러를 넘어 섰고, 이는 뉴욕 증시의 하루 주식거래량의 80배나 됐다. 일본 엔화나 독일 마르크화처럼 비중있는 통화의 하루거래량은 2,500억 달러나 됐다. 태국과 같이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에서는 바트화 교환규모가 하루에 수십억 달러에 불과하다.

은행과 펀드의 딜링룸에서 일하는 외환딜러들은 고객의 외환 수급을 대신하는 본영의 역할 이외에 환투기에도 일조하고 있다. 1997년 5월 중순, 태국 바트화가 떨어질 것으로 판단, 월가 헤지펀드의 외환딜러 조직은 20억 달러 어치의 바트화를 매각했다.

외환도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떨어질 우려가 있을 때 미리 팔고, 올라갈 가능성이 있을 때 미리 사는 게 남는 장사다. 이른바 환차익이다. 1997년 12월 한국 원화 가치가 1주일 사이에 두배로 폭락했을 때 미리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둔 딜러들은 엄청난 환차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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