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⑥…투기게임의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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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⑥…투기게임의 진행자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5.08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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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의 클릭으로 주식 거래서 외환 채권 상품 선물까지 수억 달러 움직여

 

월가 카지노의 진행자인 펀드들은 다양한 테크닉을 구사하며 고객들을 모은다. 1년에 10%의 이익을 보장해주겠다느니, 다우존스 지수 상승 폭만큼 이익을 내주겠다느니 하며 유혹한다. 월가의 진행자들은 메릴린치, 골드만 삭스등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 기관투자회사들이 있는가 하면 조그마한 사무실 하나를 얻어 몇억 달러의 자금을 운영하는 펀드들이 있다.

여기서 일단 펀드들을 살펴보자. 수천 개에 이르는 펀드는 뮤추얼 펀드와 헤지펀드등 크게 두 부류로 분류된다. 헤지펀드는 아시아 위기 이후 투기자본의 대명사로 몰린바 있지만, 전체 자본 규모가 큰 뮤추얼 펀드도 투기성에서 헤지펀드에 뒤지지 않는다.

 

머리좋은 사람들의 집단, 헤지펀드

뉴욕 맨해튼 파크 애비뉴 237에 있는 9층짜리 건물은 ‘헤지펀드 빌딩’이라고 불린다. 이 곳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젊은이 두어 명이 사무실 한칸을 빌려 헤지펀드를 운영한다. 작은 방마다 젊은 헤지펀드 매니저들로 가득 차 있다.

사무실에는 전화와 팩시밀리, 컴퓨터가 놓여져 있고, 벽은 각종 그래프가 도배돼 있다. 젊은 펀드 매니저들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하루종일 컴퓨터와 싸우며 많게는 수십억 달러, 적게는 수천만 달러의 자금을 운영한다.

이들은 투자은행이나 뮤추얼 펀드의 복잡한 체계를 거치지 않고 마음대로 투자를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증권당국의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주식 뿐 아니라 파생금융상품, 외환거래, 채권등 이익이 날 것 같으면 어떤 금융상품에도 손을 대고, 다양한 금융기법을 동원한다. 이들의 목적은 어떻게 하면 백만장자들로부터 많은 돈을 맡아서 그 대가를 받느냐 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카지노 딜러들이다.

헤지펀드들은 다른 투자기관에 비해 모험적인 투자, 특히 단기 투자에 손을 많이 댄다. 당국의 규제를 피해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니저들의 소득계산방법에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헤지펀드 매니저는 1년에 운영자금의 1%를 수수료로 받고, 이익금의 10~30%를 자기 몫으로 챙긴다. 대개 이익금의 20%를 몫으로 가져가는 것이 월가 헤지펀드의 관례다.

예컨대 5억 달러의 자본금으로 1년에 20%의 이익(1억 달러)을 남겼다고 가정하자. 매니저는 연말에 2,500만 달러의 거금을 쥐게 된다. 자본금의 1%인 500만 달러의 수수료와 이익금의 20%인 2,000만 달러를 합친 금액이다. 카지노 세계의 원리가 펀드매니저들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은행이나, 뮤추얼 펀드에서 매니저들이 연말에 100만 달러 이상 보너스를 받으려면 회장이나 사장과 같은 상당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이에 비해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지위나 나이와 상관없이 운 좋게 머니 게임에서 이기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해마다 연말에 그해에 가장 돈을 많이 번 펀드매니저 20명을 발표하는데, 이 명단에 워렌 버핏이나 조지 소로스등 스타급 투자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름이 생소한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에선 ‘얼굴 잘생긴 사람은 헐리웃의 영화사로 찾아 가고 머리 좋은 사람은 월가의 헤지펀드로 가라’는 말이 있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대부분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프린스턴등 미국 동부 명문대에서 경제학 석사(MBA)를 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헤지펀드를 세우기도 하고, JP 모건, 골드만 삭스, 메릴린치등 유력 투자회사에서 몇 년간 매니저를 거친 후 헤지펀드로 가기도 한다.

헤지펀드들은 바하마, 케이만 군도등 카리브해 섬들을 은신처로 삼고 있다. 1997년 9월 현재 케이만 군도에 4,610억 달러, 바하마에 2,140억 달러의 자금이 예치돼 있다. 두 섬에만 6,750억 달러의 자금이 예치돼 있는데, 이는 미국에 예치된 9,310억 달러보다 적지만, 일본(6,890억 달러)에 근접하고, 독일(6,290억 달러), 홍콩(6,290억 달러)보다 많다.

‘헤지’란 말은 ‘안전한 자산관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헤지펀드는 1949년 미국인 알프레드 존스씨가 부유층의 안전한 자산관리를 위해 최초로 설립한 후 1990년대에 급성장했다. 증시가 불안할 때 백만장자들은 안전한 자금 운용을 위해 헤지펀드를 찾았고, 펀드 매니저들은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부자들에게 이익을 붙여주었다.

헤지펀드에 고객이 될 수 있는 자격은 재산이 100만 달러 이상이고, 2년 동안 연평균 소득이 20만 달러가 되어야 한다. 부부가 동시에 소득이 있을 경우 부부 소득합계가 연간 30만 달러를 넘어야 한다. 이 엄격한 조건을 지킬 수 있는 부자는 미국 성인 인구의 3%, 즉 200만명에 불과하다.

월가에서 활약하는 헤지펀드들 가운데유명한 것을 꼽자면, 조지 소로스의 퀀텀 펀드, 줄리안 로버트슨의 타이거 펀드를 들수 있다.

 

▲ /그래픽=김송현

 

투기화하고 있는 뮤추얼 펀드

 

헤지펀드가 백만장자들의 펀드라면 뮤추얼 펀드는 미국 중산층들의 재테크를 도와주는 펀드다. 뮤추얼 펀드는 투기자본에 포함시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뮤추얼 펀드는 주로 샐러리맨들의 퇴직적립금을 모아 뉴욕 증시 및 채권시장에 투자하기 때문에 헤지펀드와 같이 무모한 도전은 자제하는 편이다. 그러나 리스크가 높은 이머징 마켓에 투자하는 펀드들이 늘어나고, 최근들어 그 수법에서 헤지 펀드에 못지 않게 투기화하고 있다. 또 뉴욕 증시가 곤두박질칠 때 뮤추얼 펀드의 매니저들도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단기 투자에 과민하게 움직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헤지펀드의 위력이 단기 투매에 있다면 뮤추얼 펀드의 강점은 그 규모에 있다. 헤지펀드의 총자산이 3,000억 달러인데 비해 뮤추얼 펀드는 그 10배인 3조 달러의 방대한 저수지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뮤추얼 펀드의 거대한 자금이 들어오느냐, 빠지느냐 여부가 뉴욕 증시의 흥망에 큰 영향을 준다.

뉴욕 월가에 산재한 펀드들의 전체 규모는 1998년 현재 5조5,800억 달러에 이른다. 이중 30~40%가 미국 직장인들의 은퇴연금 마련을 위해 매달 봉급에서 일정 비율을 떼어 붓는 자금이다. 이 퇴직 적립금이 뮤추얼 펀드의 주요 자금원이다. 미국 직장인들이 주식 시장이 불안하다고 부어놓은 자금 10%만 일제히 다른 금융상품으로 이동시켜도 1천억 달러의 뭉칫돈이 움직이게 된다.

뮤추얼 펀드는 대공황 직전인 1924년 개발돼 1980년대 이후 주식 대중화가 이뤄지면서 급속도로 발달했다. 증시 호황이 지속되면서 중산층들은 고수익을 보장하는 저축수단으로 뮤추얼펀드에 적립했다. 미국 일반 가정은 재산의 30%를 뮤추얼 펀드를 통해 증시에 쌓아두고 있다. 직장인들은 서너 개의 뮤추얼 펀드에 가입, 다양하게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미국에는 뮤추얼 펀드를 운영하는 회사가 500여개나 됐고, 펀드 수는 8,000개에 이른다. 한 회사가 10개 이상의 펀드를 만들어 다양한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대형회사들은 30~50개의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투자대상도 다양하다. 전체 뮤추얼 펀드 자금의 50%가 뉴욕 증시에 투자돼 있고, 나머지는 채권, 귀금속, 해외증시등에 잠겨 있다. 펀드 별로 자금의 10~20%를 해외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중 이머징 마켓 펀드는 리스크가 높고, 아시아 위기 이후 이들 펀드는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미국에서 최대 뮤추얼 펀드는 피델리티-마젤란 펀드다. 1946년 에드워드 존스씨가 설립한 이 펀드는 1999년 현재 자본금 1조 달러를 넘는 대형 펀드로 부상했다. 뱅가드, 로위 프라이스, 아메리칸 센츄리, 제이너스, 드레퓌스, 스커더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뮤추얼 펀드는 1995년 이후 3년 동안 연평균 25%의 고수익을 올려 미국 일반 가정의 재산을 불려주었다. 그러나 1998년 여름 증시 폭락때 뮤추얼 펀드들도 금, 상품, 해외주식시장등에 단기 투매에 나서 금융시장의 투기성을 부채질했다.

뉴욕 월가를 떠도는 펀드 자금은 수조 달러에 달한다. 이들 자금이 수천 가지의 파생금융상품으로 전환될 때 몇 배의 승수효과를 갖기 때문에 그 규모는 수십조 달러로 불어난다.

투기성 자금은 컴퓨터 단말기에서 단 한번의 클릭으로 주식 거래에서 외환, 채권, 상품, 선물 거래에 이르기까지 수억 달러를 움직인다. 이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패러다임은 카지노 게임에서 진 나라에 경제 위기를 몰고 오고, 한발 더 나가 정치적 위기를 불러 일으킨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의 30년 독재가 무너진 배경에는 월가의 카지노 자본의 짓누름이 있었다. 카지노화되고 있는 뉴욕 금융자본은 21세기에도 기승을 부리며 전세계를 휘젓고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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