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⑤…카지노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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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다시보기⑤…카지노 자본주의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5.05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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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회전속도가 빠를수록 브로커 이익 커지고, 투자자 몫 작아져

 

한국사람들이 미국 여행을 와서 가장 많이 가보는 곳이 서부의 사막을 개척해 만들어 놓은 도시, 라스베이거스다. 밤의 도시다. 거리 곳곳에는 불야성을 이루며, 호텔마다 카지노를 개설해놓고 있다. 심지어 조그마한 주유소까지 도박기계를 설치해놓고 기름 넣으러 온 사람의 돈을 뜯고 있다.

도박의 세계는 비단 라스베이거스만 아니다. 뉴욕 월가도 라스베이거스의 도박의 세계와 다를 게 없다.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성이 강한 자본시장의 논리가 세계금융중심지라고 자부하는 월가의 논리다. 투자자는 도박의 심리로 주식과 채권을 산다. 펀드매니저와 브로커는 카지노 진행자로서 공전을 뜯고, 정부는 증시라는 카지노에서 세금을 걷는다. 우리가 가장 많이 아는 ‘블루칩’이라는 용어도 카지노의 파란색 칩에서 나온 말이다.

 

▲ /카지노 자료사진

 

도박의 도시

 

1990년대 이후 미국 증시가 달아오르면서 뉴욕 월가가 갈수록 카지노장화하고 있다. 뉴욕 월가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주식 총량은 1999년 기준으로 평균 15억 주에 달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전체 주식중 1년에 회전되는 비율이 95%에 이르렀다. 즉 거의 모든 주식이 한해에 한번쯤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 거래됐다는 얘기다.

뉴욕증시의 연간 회전율은 공황이 발생, 투자자들이 일제히 주식을 팔아제꼈던 1929년에 119%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그후 증시안정기가 도래하면서 회전율은 급감했다. 1960년에는 회전율이 12%였는데, 이는 전체 주식이 한번씩 거래되는데 8년이 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식 회전율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주식 거래빈도가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30년전엔 증시에서 장기투자자라 함은 주식을 5~6년간 보유하는 사람을 일컬었고, 1년 보유자는 단기투자자에 포함됐다. 이젠 대부분의 미국 투자자들이 단기투자자로 전락, 단기 차액을 노리는 카지노장의 도박꾼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요즘엔 1년간 주식을 보유하는 사람을 장기투자자라고 하고, 1개월만에 주식을 회전시켜야 단기투자자라고 부를 정도로 용어상 변화마저 생겼다.

그러면 월가라는 카지노에서 누가 돈을 버는 것일까. 바로 투자기관과 정부다. 개인 투자자들은 돈만 갖다 바치고, 카지노 진행자(croupier)들이 번창한다. 펀드 매니저들은 호화 저택에 요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개인 투자자들은 노후 복지만 보장하면 만사 OK다. 이 거대한 도박장은 펀드매니저라는 전문 도박사들에 거대한 부(富)를 만들어 주고, 정부는 카지노를 설치한 대가로 엄청난 세금을 걷어간다.

뉴욕 월가의 카지노엔 엄청난 개평꾼들이 많다. 뮤추얼 펀드의 경우 매니저들은 운영 자산의 1.5% 정도를 먹는다. 또 펀드의 세일즈맨들이 0.5%, 직접 주식 거래에 참여하는 브로커들이 또 1%를 뗀다. 연방 정부는 1.5~3%의 세금을 걷는다. 주식 거래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정부는 많은 세금을 걷어 배를 불린다. 1998년 현재 연방 정부는 월가의 주식거래에서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100억 달러의 개평을 뜯어갔다.

월가의 뮤추얼 펀드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뱅가드 그룹의 창업자이자, 1999년에 회장직에서 은퇴한 존 보글(John Bogle)씨가 뉴욕타임스지에 기고한 ‘월스트리트 카지노’라는 글에서 재미있는 산수를 소개했다.

 

“25년간 증시가 연평균 10%의 이익을 낸다고 가정하자. 투자자가 처음에 1만 달러를 투자해놓고, 25년을 기다리면 10만8,300 달러로 불어난다. 그런데 (펀드에) 2.5%를, (정부에) 1.5%를 각각 지급하는 것을 생각해보자. 투자자는 25년후에 4만2,900 달러를 되돌려 받게 된다. 나머지 6만5,000 달러는 펀드매니저와 정부에 돌아간다. 카지노 진행자인 기관투자자가 44%, 정부라는 개평꾼이 16%를 먹고난후 개인투자자들의 손엔 나머지 40%만이 돌아온다.”

 

증시의 회전속도가 빨라질수록 카지노 진행자들의 이익은 커지고, 투자자들에게 돌아오는 몫은 작아진다. 카지노는 번창하지만, 횡재를 노리고 카지노에 덤벼들었던 섣부른 손님들은 겨우 여비만 건져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는 것과 다를 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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