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 다시 보기①…새로운 패러다임
상태바
월스트리트 다시 보기①…새로운 패러다임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4.16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 소련 붕괴후 뉴욕 월가에 의해 지배당하는 국제사회 형성

 

제국주의는 2차세계대전 이후에 종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권력에 의해 새롭게 부활했습니다. 미국의 세계지배력은 크게 두가지로 이뤄집니다. 군사력, 금융파워. 이중 금융파워는 뉴욕 맨해튼 남단의 월스트리트에서 이뤄지고 있지요. 이 시리즈는 21세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는 월스트리트의 제국주의 본성을 진단합니다. /편집자주

 

1999년 3월초. 남미 칠레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리카르도 라고스(Ricardo Lagos) 후보가 뉴욕 월가를 찾았다. 그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데이비드 록펠러(David Rockefeller), 스티브 포브스(Steve Forbes)등 월가에서 내로라는 인물들을 두루 만나고 돌아갔다. 선거를 얼마 앞두고 촌음을 아껴 국내 유권자들을 찾아다녀야 할 후보가 한가롭게 뉴욕을 들를 필요가 있었을까. 더구나 그는 국제자본의 희생자인 노동자, 농민을 대변하는 사회당 당수가 아닌가.

그가 뉴욕 월가를 찾은 이유는 ‘돈의 유권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사회당으로선 지난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이 우익 쿠데타를 일으켜 좌익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린 뒤 20여만에 정권을 장악하기 직전에 있었다. 라고스는 국민 교육제도를 확대하고, 빈민들을 위한 복지혜택을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아무리 이상주의자라도 천국을 건설할 수 없다. 그렇다고 월가 투자자들이 한푼의 이문이 나지 않는 칠레의 교육제도와 사회복지제도에 투자, 자선사업을 할 리는 만무하다. 라고스는 칠레 빈민들을 위한 자금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칠레에 투자된 해외자금, 정확히 말하자면 월가의 자금이 이탈하는 것을 막을 필요는 있었다.

 

정치학 교과서가 바뀐다.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며, 정치학 교과서를 바꾸어야 했다. 그 단초는 이미 지난 세기의 말에 나타났다. 지역구 유권자의 막강한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라도 국제자본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퇴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제자본의 힘 앞에 완전히 굴복했다.

뉴욕 금융가는 이제 세계를 지배하는 단일축의 금융 제국주의를 형성하고 있다. 19세기에 형성돼 20세기초를 구가한 유럽 제국주의는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고, 급기야 1차대전과 2차 대전을 유발했다. 2차대전후 미국 중심의 서방세력은 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과 군사, 경제, 이념등 다방면에서 대결했다. 그러나 20세기말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제1의 적이었던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는 돈이 없어 미사일마저 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 일본과 독일이 미국을 추월하는 듯 했으나, 1990년대 들어 일본은 장기침체에서 허우적거렸고, 독일은 10%가 넘는 고실업율에 시달렸다. 이제 미국만이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21세기를 맞고 있다.

그러면 뉴욕 월가는 어떤 존재인가. 칠레의 사회당 당수가 뉴욕을 찾아와야 펀드매니저들에게 굽실거려야 이유가 무엇인가. 월가는 세계 유동성의 절반 가량이 모여있는 거대한 자금 저수지이자, 전세계에 거대한 국제자금을 밀어내고 빨아 당기는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의 심장부를 움직이는 세포는 3만 명으로 추산되는 펀드매니저들이다. 이들 세포는 저마다 독자적인 판단 능력을 갖고 있지만, 때론 워싱턴의 미 재무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지령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는 여기서 구 소련 붕괴후 국제사회가 뉴욕 월가에 의해 지배당하는 구조를 ‘월스트리트 제국주의(Wall Street Imperialism)’라고 정의하자. 그러면 월스트리트 제국주의의 지배이데올로기와 지배 수단은 무엇일까.

1990년대 이후 급속히 강화된 미국 주도의 금융제국주의는 ‘시장 경제’와 ‘개방’이라는 두 개의 이념을 첨병으로 내세웠다. 아시아 금융위기에서 뉴욕 월가의 논리를 주입시킨 IMF는 아시아식 경제발전 방식, 즉 아시아 국가들이 모방해온 ‘일본식 모델’을 부정했다. 정부와 기업의 협조는 정경 유착, 관치 금융의 부정적인 모습으로 부각시켰다. 아시아식 경제의 붕괴는 더 이상 국가주의적 발전 모델로 월가가 주도하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구할 수 없도록 강요했다. IMF는 구제금융의 선결조건으로 시장 경제와 개방을 요구했고, IMF의 처방이 역효과를 내건 말건, 뉴욕 월가는 국제금융시장의 논리라는 미명하에 아시아에 미국식 자본주의를 이식시켰다. 월가는 경제가 파산한 나라에 규제완화라는 조건을 반드시 붙였다. 따지고 보면, 이 조건은 정부 주도의 경제를 시장 경제로 이행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국제경쟁력, 즉 미국 기업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는 산업을 현지 정부의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며, 공기업을 민영화함으로써 국제자본의 지배 영역으로 넘기라는 얘기다.

 

▲ 뉴욕 맨해튼 남단 월스트리트에 있는 황소상. 황소는 증시의 상승장을 의미한다. /사진=김인영

 

‘1달러=1표’의 제국주의

월스트리트 제국주의의 지배 수단은 돈이다. ‘1달러=1표’의 등식이 성립하는, 돈에 의한 철저한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있다.

뉴욕타임스지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Tomas Friedman)이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라는 저서에서 태국 총리를 만나서 나눈 대담을 소개했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당신의 전임을 쫓아내는데 일조를 했습니다. 나는 그때 집에 있으면서 태국 바트화가 추락하는 것을 보았지요. 당신의 전임은 경제를 완전히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월가의) 브로커들에게 아시아의 이머징 마켓에서 빨리 빠져 나오라고 기사를 썼습니다. 나는 인터넷을 통해 당신 나라를 팔도록 앞장섰던 것입니다. 나는 그때 배운 게 있습니다. 바로 ‘1달러=1표’의 원칙이 정립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당신 나라의 유권자라는 점을 아시겠습니까?”

 

프리드먼씨는 매우 솔직한 언론인이다. 그는 뉴욕 월가를 움직이는 미국 유력 언론의 컬럼니스트로서 다른 펀드매니저들과 함께 태국 바트화 붕괴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결국 전임 태국 총리의 사퇴를 몰고온데 일조를 했음을 시인했다.

칠레의 대선 후보인 라고스가 당선 전에 뉴욕 월가를 찾아오는 것은 바로 국제자본시장의 유권자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제도에 의한 선거는 ‘1인=1표’의 원칙이 지켜지지만, 월스트리트 제국주의는 ‘1달러=1표’의 원리가 적용된다. 돈이 많은 조지 소로스와 스티브 포브스는 더 많은 표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현지의 유권자와 뉴욕 월가의 유권자는 정반대의 위치에 놓여 있다. 투표소에서 지도자를 뽑을 권리가 있는 유권자들은 교육제도와 복지제도를 원하지만, 월가의 유권자들은 돈의 원리가 적용되고, 적은 투자로 많은 이윤을 안전하게 낼 수 있도록 경제시스템을 만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펀드매니저는 연말에 얼마나 보너스를 타는지 여부가 중요하지, 칠레 인민들이 중등교육을 받건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다. 정부 예산이 복지제도에 쓰여 재정적자가 커지는 불안한 나라보다는 기업주가 근로자들을 마음놓고 해고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월가의 시민’임을 자처하는 펀드매니저들은 때론 IMF를, 때론 미국 정부를 앞세워 그들이 자랑하는 돈에 의한 민주주의를 전파한다. 마치 로마 시민들이 그들이 선출한 집정관을 앞세워 카르타고를 공략하듯, 월가 시민들은 국가주의에 얽매어 있는 일본 경제를 해방시켜 시장 민주주의를 전파하고, 중남미를 직할 식민지화했다.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