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에 드리워진 주술적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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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에 드리워진 주술적 DNA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3.21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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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시대의 주술적 권력교체, 2천년 후에도 달라지지 않아

우리나라 고대사에서도 임금에 대한 탄핵이 있었다.

중국 역사학자 진수(陳壽:233∼297)가 쓴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옛 부여의 풍속에는 가뭄이 들고 날이 고르지 못하여 오곡이 익지 않으면, 갑자기 그 왕을 책망해서 갈아치워야 한다느니, 죽여야 한다느니 말들을 한다.” (舊夫餘俗, 水旱不調, 五穀不熟, 輒歸咎於王, 或言當易, 或言當殺)

만주 송화강 유역에 자리잡은 부여는 주술적 고대국가였다. 부여는 절대왕권은 형성되지 않았고, 부족 연맹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였다. 마가(馬加)·우가(牛加)·저가(猪加)·구가(狗加)라는 족장이 다스리는 4개 부족이 각자의 세력을 형성했다. 동물 이름으로 부족장의 명칭을 정했다. 진수가 삼국지를 쓸 무렵에는 우가가 세력이 컸던 것 같다. 임금은 부족장들의 합의에 의해 결정됐다.

그 예로 간위거(簡位居) 임금이 죽었는데, 적자가 없고 후계자는 서자인 마여(麻余)만 있어 후계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때 여러 부족(諸加)이 모여 서자이지만, 임금으로 세우기로 합의해 마여가 왕위에 오른다. 선왕이 후계자를 임명할수 없는 구조다. 부족장 회의를 거쳐 임금을 세우는 방식은 지금 말레이시아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가뭄이 들고 오곡이 익지 않은 것은 어찌 임금의 탓인가. 부족간 권력 투쟁이 벌어졌을 때 주술을 사용한 것이다. 일단 ‘나쁜 임금’으로 만들어야 한다. 개와 돼지, 말과 소의 부족장들이 임금 때문에 가뭄과 흉년이 들었다고 주장하고, 왕을 교체한다.

무속 사회에서는 모든 잘못이 임금에게로 간다. 부여에는 영고(迎鼓)라는 제천행사가 있었고, 전쟁이 일어날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죽여 그 굽(蹄)이 벌어지면 흉(凶), 합치면 길(吉)한 것으로 점을 쳤다.

삼국지 동이전에서 임금 탄핵에 대한 서술은 ‘마여’ 임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삽입돼 있다. “마여가 죽자 그의 어린 아들 의려(依慮)가 임금이 된다”고 기술해, 정통성 없는 서자 임금이 경쟁 부족장들에 밀려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해석이 나온다.

▲ 화가 M W 터너가 로마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삽화로 그린 황금가지 그림 /위키피디아

 

▲ 「황금가지」 표지 /위키피디아

삼국지 동이전의 이 구절은 영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가 1890년 간행한 「황금가지: 비교종교학 연구」(The Golden Bough: A Study in Comparative Religion)에도 소개됐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고대에는 의사 결정을 점괘에 의존하고, 그것을 해석한 종교 지도자나 왕에게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다. 결과가 나쁠 때 그 책임을 물어 사제나 왕을 살해하거나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 그의 저서 「황금가지」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고대 사회에서 신하들이 사제왕(司祭王)을 살해하는 관습이 있었다. 고대사회에서는 사제왕이 자연사하는 것을 용인하지 않았다. 사제왕을 노쇠하거나 병들면 그 왕을 살해하고 젊은 왕으로 교체했다.

주술에 의해 임금과 사제를 살해하거나 물러나게 하는 배경에는 권력 암투가 끼어 있다. 부여의 경우 4개의 부족들의 권력 싸움이 있었고, 권력 싸움에서 진 사제왕은 죽음 또는 퇴위를 감수해야 했다.

 

왕권이 강화된 시대에는 탄핵 제도 대신에 쿠데타등 정변에 의해 정권이 교체됐다. 그럴 때도 주술이 활용됐다.

조선 시대에도 주술적 유전자가 이어졌다. 한영수 서강대 교수가 쓴 ‘주술에 빠져있는 집단의식’이라는 글에 재미있는 장면이 소개돼 있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에 서술된 내용이다.

『태종 말년에 큰 가뭄이 닥쳤다. 충청·전라·경상도 지방의 논은 갈라졌고 밭은 타들어 갔으며 백성들은 풀뿌리로 먹을 것을 대신했다. 오랜 가뭄으로 민심은 날로 더욱 흉흉해져 갔고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태종도 각 고을 관찰사들을 불러 민심을 수습하지 못하는 것을 꾸짖었으나 오랜 가뭄으로 곡식이 없고 설상가상으로 괴질까지 번지고 있다는 말을 듣자 태종은 가뭄 속 땡볕 아래 종일토록 앉아 하늘에 비를 내리게 해달라고 빌었다. 태종은 죽기 전까지도 기우를 위하여 노력하다가 승하하기 직전에 "내가 죽어 영혼이 있다면 반드시 이 날만이라도 비를 내리게 할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태종의 기일인 음력 5월 10일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렸는데, 사람들은 이 비를 태종 우(太宗 雨)라고 불렀다.』

현대의 과학으로 보면, 임금이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유교가 지배한 조선조에도 주술이 만연했다. 임금이 기우제를 지내야 백성들의 원망을 잠재울수 있었다. 다행히 비가 왔으니 말이지, 오지 않았으면 태종 임금은 나쁜 임금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도 주술적 분위기로 시작됐다. “박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교주인 최태민에 빠져 있다”는 보도는 주요 신문은 물론 국영방송 KBS에서 특집방송으로 다뤄졌다. 정유라가 박 대통령의 딸이라는둥,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래서 꿈은 이루어진다”고 한 말이 무속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둥.

사실을 확인하지 않은 기사가 난무했다. 증권가 찌라시라든지, SNS에서 설로 나오는 것도 기사화됐다. 무차별로 쏟아내는 가짜 기사는 대통령을 무차별 공격했다. 국회는 그런 기사를 모아 탄핵소추를 의결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한바탕 주술적 분위기에 사로 잡했다. 박근혜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보수세력들은 주술적 광풍이 불어딕치는 분위기에서 죄인인양 침묵해야 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책임이 대통령 탄핵 사유에 들어간 것도 그렇다. 3년 전에 발생한 참사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다시는 그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안전을 강화하는 게 급선무다. 그런데 사건 당시 7시간 동안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가 초점이다. 그 시간에 대통령이 굿을 했다느니, 시술을 받았다느니, 심지어 연애를 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횡행했다. 언론은 일단 주술적 뉴스로 '나쁜 대통령‘을 만들었다. 국회는 덜컥 그 내용을 탄핵 사유에 넣었다.

▲ 2001년 뉴욕에서 벌어진 9·11 테러 참사 /위키피디아

 

미국을 보자. 2001년 9·11 테러 참사가 발생했을 때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 사건으로 2,996명이 사망하고, 6,000명이 부상당했으며, 100억 달러(10조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났다. 그러나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없었다. CIA·FBI 등 정보당국, 펜타곤과 공군, 항공당국의 책임자 중에서 누구 하나 그 사건으로 물러난 사람이 없다. 한국 같으면 장관 여러명과 대통령이 문책당해야 했을 것이다.

당시 FBI의 어느 여성 국장이 알카에다의 테러가 있다는 첩보를 상부에 보고했는데, 상부에서 묵살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우리나라 같으면 여러명의 목숨이 날아갔을 증언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수만의 첩보를 정부가 어떻게 다 대응할수 있는가”라는 논리에 수긍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등 유력지들은 “I told you so"(내가 그랬쟎니)라는 평론을 실었다. 나중에 정답을 알고 나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언론들이 세월호 당시에 쏟아낸 뉴스와 비교하면 질적 수준에서 현격한 차이가 드러난다.

▲ 프레이저의 저서 「황금가지」 내용중 삽화 /위키피디아

 

소설가 이문열은 2006년에 쓴 장편소설 「호모 엑세쿠탄스」에서 ‘처형하는 인간’ 라는 또다른 속성을 인간에게 부여했다. 그는 죽고 죽이는 처절한 투쟁이 한국 사회의 현실에 드리워져 있다고 성찰했다. 이문열에 따르면, 인간은 언제부터인가 초월적인 존재들을 처형해 왔다. 그는 용과 마녀, 악마 등 악신(惡神) 퇴치의 신화,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신성(神性)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온 존재들―조로아스터로교부터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신까지―에 대한 수난과 박해의 역사가 그것을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주술로 왕을 처형하는 것은 고대 사회의 풍습이다. 그 DNA가 2천년이 지나도록 한국인들 습성과 사고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지난해말 이후 확인되었다. 다만 그 주술이 이데올로기로도 변질돼 있었다.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란 이름으로…. 또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고 보도된 가짜 뉴스로도 변형되어 나타났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1일 검찰청에 출두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차라리 검찰에서 주술이 아닌, 팩트가 확인되는 게 중요하다. 판단은 법원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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