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의 전쟁②…총대 멘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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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과의 전쟁②…총대 멘 김종인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7.01.0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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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기조실장 불러 부동산 투기에 대한 노태우의 노여움 전달

그러면 6공화국 후반의 정·재계 갈등의 서막을 이룬 5·8조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를 살펴보자.

1989년말 문희갑 경제수석 때의 일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30대 그룹 총수를 5명씩 나누어 청와대에 불러 당부했다.

“부동산 투기나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자제해 주십시오. 정부를 쳐다보면서 특혜지원만을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은 대기업이 경제 회생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지만, 재벌들은 이 자리를 자기들의 입장을 설명하는 기회로 여겼다. ‘자금이 부족하다’, ‘금리를 내려 달라’, ‘노사분규를 해결해 달라’ 등….

물론 재계로서는 정부가 민주화니, 중소기업 위주 정책이니 하면서 과거 정부에서 해온 금융지원을 없애고 대출금을 빨리 갚으라고 독촉하는 통에 기업을 할수 없고, 노사분규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책으로 임금가 물가만 올려놓았다는 불평을 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재벌의 불만에 대해 “재벌들의 부동산 투기 때문에 나라가 망할 판”이라며, 비서진들에게 강력한 대응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5·8 조치였다. 이 때문에 6공화국은 내내 재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이같은 의중은 문희갑 경제수석을 이은 김종인 수석이 재빨리 간파했다. 1990년 3월 27일의 청와대 만찬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부동산투기에 대한 두 번째 경고를 했어도 재벌들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자, 김종인 수석이 직접 총대를 메고 나섰다.

김 수석은 노 대통령에게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에 대해 뭔가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를 해결치 않고는 아무 것도 할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터여서 쾌히 승낙했다.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대표. 그는 노태우 정부 시절에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김종인 페이스북

김종인 수석은 즉각 30대 재벌의 부동산 자진매각 계획을 수립했다. 국세청에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가려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열흘 이상의 작업을 거쳐 4월 13일 이른바 ‘4·13 부동산 투기 억제대책’을 발표했다. ▲탈법적 투기에 대한 강력한 단속 ▲등기 의무화 ▲토지거래허가제 확대실시 ▲과표현실화가 그 골자였다. 그러나 이 조치만으로 고질화되고 있던 재벌의 땅 투기를 막을 수 없었다. 사후처방으로는 여론의 반발에 봉착했다.

4월 30일 김종인 수석은 서울 플라자호텔에 10대그룹 기조실장을 불러 대통령의 노여움을 전달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재벌들의 무성의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토지매각을 종용했다. 5월 3일 박필수 상공장관이 10대 그룹 기조실장을 불러 또다시 엄포를 놓았다.

10대 그룹 기조실장들은 경제침체를 재벌의 탓으로 돌리는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으나, 정부의 강경 분위기가 단순한 경계경보를 넘어 실제 상황임을 감잡았다.

양측의 협상창구가 만들어졌다. 청와대에선 박운서 비서관이, 재계에서는 전경련의 조규하 전무가 각각 대표로 나섰다. 이환균 재정담당 비서관이 박운서 비서관을 엄호했다.

박운서 비서관은 “재벌들이 알아서 보유부동산을 매각해달라”면서 자진 매각을 강조했으나, 재벌그룹들은 얼마나 땅을 내놓아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해외출장중이던 삼성의 이건희, 선경의 최종현 회장도 급거 귀국해 매각할 땅을 논의하는 등 그룹 총수들과 기조실은 밤샘 작업을 벌였다. 재벌로선 비상시국이었다. 설마 대기업에 이런 특단의 조치가지 내릴 수 있겠는가 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5·8 조치 직전 서울 워커힐호텔에서는 청와대 실무팀과 전경련측이 만나 3일 동안 밤을 새며 승강이를 벌였다. 재계를 대표한 전경련은 1990년에 신규매입한 340만평 중 절반인 150만평을 팔겠다고 했으나, 청와대측은 이것만으로 안된다고 버텼다. 최종적으로 낙착된 것은 10대 그룹이 모두 1,570만평을 내놓되, 5월 10일 그룹총수들이 공동으로 결의대회를 열어 자진매각의 형식을 취한다는 것.

노태우 대통령은 5월 7일 정치·경제 양측면에서 일대 결단을 내린다. 김영삼·김종필 최고위원, 박태준 최고위원대행과 4자 회당을 갖고 분열된 당의 기강을 바로 잡고 당내 분파행동을 일절 용납하지 않겠다는데 의견일치를 봤다. 경제 면에서는 대국민 담화를 내고 부동산 투기는 통치권 차원에서 근절하겠다고 발표했다.

다음날인 5월 8일 이승윤 부총리를 비롯해 경제각료들은 ‘부동산투기억제와 물가안정을 위한 특별보완대책’을 발표했다. 5·8 조치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5월 17일엔 11~49대 그룹 기조실장이 워커힐에서 만나 1,500여만평을 매각키로 함으로써 후속조치가 매듭지어졌다.

김종인 당시 경제수석의 평가다.

“5·8 조치는 초법적인 조치가 아닙니다. 기존 법률에 따른 조치일 뿐입니다. 재벌에도 예외 없이 법 집행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이 조치는 단순히 땅 문제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경제라는 하부구조가 정치라는 상부구조를 흔들게 하는 사건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5·8 조치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 하여금 정치를 하게 하는 직접적인 동인이 됐다. 정주영씨도 이에 대해 부인치 않고 있다.

정주영씨는 그 무렵 이렇게 회고했다.

“노 대통령 밑에서 경제정책을 하고 있는 사람(김종인 수석을 지칭)이 아주 잘못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을 무슨 부동산 투기만 하는 원흉으로 깎아 내리고 있습니다. 조사해 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투기를 했다고 해 체면을 손상시켰습니다.”

물론 5·8 조치는 현대그룹만을 타깃으로 한 것도, 정주영씨가 5·8 조치에만 불만을 품고 정치에 뛰어든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6공화국 후반에 정계와 재계의 갈등, 재벌 상호간 갈등은 5·8 조치에서 비롯됐음은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다. 재벌의 정치 참여는 이 조치로 그 서막이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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