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나라 ‘鄭和 대원정’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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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鄭和 대원정’ 꿈꾼다
  • 김인영
  • 승인 2015.11.2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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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지부티에 첫 군사기지…美-中 대양 경쟁 촉발

 

중국이 아프리카 지부티에 처음으로 해외 군사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곳은 명나라 영락제 시절에 대신 정화(鄭和)가 함대를 이끌고 원정을 갔던 곳이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확대함과 동시에 태평양과 인도양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이 15세기에 정화가 개척한 해상 주도권을 유지했더라면 19세기에 유럽 열강에 의해 나라가 갈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회한을 안고 중국은 다시 군사굴기를 내세워 정화 함대의 대장정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 복원된 정화함대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화 제독의 恨…해양을 잃고 유럽 열강에 당해

명나라 3대 황제인 영략제는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고 웅장한 자금성을 완공해 황제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리고 곧바로 환관 출신 측근대신인 정화에게 해양원정을 명령한다.

영락제는 몽골제국 원나라를 고비 사막 북쪽으로 몰아내 중국 통치에 성공하지만 조카 건문제를 쫓아내고 황제가 되었다는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삼촌의 반란에 퇴위한 건문제는 바다 건너 어디론가 도망갔다는 소문이 들렸고, 이에 영락제는 지구 끝가지 쫓아가 조카를 죽이라는 명령을 정화에게 내렸다.

이에 정화는 100여척의 함대를 이끌고 말레카 해협과 인도, 페르시아, 아프리카 마다카스카르섬까지 원정한다. 정화 함대의 남해 원정은 대륙에 이어 해상제국으로 세력을 확대해 정복지의 오랑캐들로부터 조공 체제를 형성해 지배영역을 넓히려는 목적도 있었다. 정화는 서양 탐험가들이 대항해에 나서기 전인 1405년부터 1433년까지 대함대를 이끌고 동남아, 서남아는 물론 동부 아프리카를 7차례 원정했다.

영국 해군제독 출신 개빈 맨지스는 컬럼버스가 미국을 발견한 1492년 이전에 만들어진 지도에서 대서양 서쪽에 큰 섬이 그려진 사실에 의문점을 품었다. 그는 역사적 사료와 현지답사를 거쳐 중국 명나라 정화 함대가 컬럼버스에 앞서 70년 전에 미국을 발견했고, 제임스 쿠크 선장보다 300년 전에 중국이 뉴질랜드에 2만명이 거주하는 정착촌을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와 분석을 토대로 「1421:중국이 미국을 발견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멘지스의 주장이 맞는지는 추가적으로 자료발굴이 이뤄져야 입증될 사인이다.

하지만 정화 함대가 7차례의 해상원정을 끝내고 중단됐다. 그리고 명나라는 바로 해금(海禁)정책을 취한다. 정화 원정 이후 명나라 홍무제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외국과의 교역 및 해외 도항을 금지했다.

영락제 이후 명 황제들은 함대를 정박지에 썩도록 방치하고 자금성에 숨어버렸다. 이 정책은 청나라에도 이어졌다. 중국이 대양을 포기하고 중원에 고착해 있을 때 유럽 국가들은 해상으로 진출해 신대륙을 식민화하고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전세계 해상권은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 순서로 넘어갔다.

영국의 군인이며, 탐험가·시인인 월터 롤리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무역을 지배하고, 세계의 무역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부를 지배하며, 마침내 세계 그 자체를 지배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결국 중국은 19세기에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하면서 1842년 난징 조약으로 해금 정책을 풀었다. 하지만 청나라는 쇠하고, 열강에 물고 뜯기는 늙은 사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진주목걸이' 전략…미국, 견제의 시각

이제 중국이 500년간 버려둔 해상을 되찾으려고 나섰다. 정화 제독을 되살리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아프리카 북동부 지부티와 군사기지 건설에 관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지부티의 중국군 군사기지는 아프리카에 세워지는 중국의 첫 군사기지로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군의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제해권과 에너지 수송로 확보를 위한 중국의 이른바 '진주 목걸이' 전략에도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대해 "중국과 지부티는 우호국가로서 양국 간에 관련 시설 건설에 대한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유엔 결의안에 따른 아덴만 해역에서의 작전 수행 과정에서 장병들을 위한 휴식장소 제공 및 '병참' 목적에서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훙 대변인은 "시설 건설은 중국 해군의 유엔 평화유지군 작전 참여와 아덴만 해역에서의 선박보호 작전 강화, 인도적인 지원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액이나 기지 위치를 비롯한 구체적인 두 나라 사이의 계약 조건은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해군 기지란 점에서 오보크항 등 아덴만 연안의 군항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중국의 아프리카 해군기지 건설에 견제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미국측 정보에 따르면 중국이 지부티와 10년간 군사기지 사용 계약을 체결했다고 한다. 데이비드 로드리게스 미군 아프리카사령관이 최근 기자들에게 "그들(중국)이 지부티에 군 기지를 건설하면 아프리카의 첫 (중국군) 군사 거점이 될 것이며 조성될 중국군 기지가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위한 물류 중심지 노릇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군사기지 건설은 단순한 병참 기능 제공에서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중국군의 역할 강화,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 등을 감안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즉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추진 중인 대양해군 육성을 통한 해양강국 실현, 군사굴기'(堀起) 전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과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진주 목걸이는 중국이 중동에서 남중국해까지 해로를 따라 투자 개발한 거점 항구들을 이으면 진주 목걸이 형태가 된다는 뜻의 용어이다.

중국은 이달 초 파키스탄의 과다르항을 43년간 장기 임차하는 계약을 체결해 인도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했다. 최근에는 우성리(吳勝利) 해군사령관의 방문을 계기로 말레이시아에 자국 함선이 정박할 수 있는 근거지도 확보했다.

중국은 이른바 '차이나머니'를 바탕으로 스리랑카에서도 콜롬보 항구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고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몰디브, 예멘 등에서도 항만개발 등을 통해 남아시아, 아프리카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로드리게스 사령관은 중국군이 아프리카에서 해 온 활동이 현재로서는 도발적이지 않다고 평가했지만, 지부티의 중국군 기지에 대한 미국의 경계는 커질 전망이다. 또 아프리카를 둘러싼 주요 2개국(G-2)간의 군사력 및 수송로 확보 경쟁이 촉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정책연구기관 애틀랜틱카운슬의 피터 팜 연구원은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미국처럼 국제질서의 수호자 노릇을 하려 한다"며 국외 군 기지 건설은 그에 따라 "반드시 뒤따를 입지 강화 활동"이라고 풀이했다.

정화 영웅화, 발굴작업도 …해양굴기의 상징인물로 삼아

2005년 중국은 정화 제독에 대한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한데 이어 정화가 남긴 흔적 발굴에 나서고 있다. 정화를 영웅화함으로써 해양굴기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의도다.

중국은 600년전 정화가 함대를 건조한 조선소로 추정되는 곳을 발견했다. 중국 언론은 최근 난징(南京)시 장강 유역에서 신축공사를 벌이던 건설노동자들에 의해 옛 정화 함대 함선을 만든 룽장(龍江) 조선소로 추정되는 곳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중국 사료에는 정화 함대가 당시 명나라 초기 수도였던 난징의 룽장조선소에서 건조됐는데 도크에선 후난(湖南)이나 광둥(廣東)에서 온 조선공 3만명이 일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도자기와 비단, 차 등을 가득 실은 함선은 9개 돛대를 갖추고 길이가 120m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장강 강변의 신축공사장에서 고대 가옥의 커다란 문짝으로 생각되던 골동품이 발견돼 시장에서 팔렸다는 소문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탐문과 출토작업이 시작됐다. 난징의 골동품 수집가 왕스칭(王世淸)이 시장에서 팔렸다는 물건을 추적해보니 문짝은 고대 함선의 조종 장치인 키였음이 확인됐다. 후속 발굴작업을 통해 철제 닻과 도끼, 나무망치, 못, 칼 등 조선 공구들이 출토됐다.

중국 당국은 이밖에 아프리카 케냐 해안에서 좌초한 것으로 알려진 정화함대 난파선을 찾는 프로젝트도 진행중이다. 정화 함대의 원정 역사를 남중국해 영유권 강화와 함께 해외진출 확대, 해군력 증강 모멘텀으로 활용하려는 중국의 의지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역사가 루이스 테바테스는 저서 '중국이 바다를 지배할 때'에서 "1차 세계대전 전함이 출현하기 전까지 어느나라도 정화 함대를 넘어선 적이 없을 정도의 세계 역사상 유일한 무적함대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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