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 정서로 2만5천개 일자리 포기한 뉴욕 정치권
상태바
반기업 정서로 2만5천개 일자리 포기한 뉴욕 정치권
  • 김현민 기자
  • 승인 2019.02.15 12: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마존, 뉴욕 제2본사 철회…“부자 기업에 세제혜택 줄수 없다”는 정치인 반대로 무산

 

뉴욕 맨해튼에서 이스트강을 건너면 퀸즈 롱아일랜드시티가 나온다. 10여년전만 해도 허름한 공장지대에 건물들이 우중충했다. 조금 후진 곳으로 들어가면 도로 포장이 이리저리 뜯겨 나간 곳도 많았다. 저녁이 되면 무서웠다. 거리의 여인들도 나타났다. 다리 건너 맨해튼과 영 딴판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층빌딩들이 들어서 맨해튼과 함께 멋진 야경을 이루고 있다.

세계 굴지의 전자상거래 회사인 아마존이 이 곳에 제2본사를 짓겠다고 했다가 14일 전격 계획을 철회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뉴욕주와 시 의회의 좌파 정치인들의 선동 때문이고, 초대형 빌딩이 들어서면 주변의 집값이 올라 살던 사람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졌기 때문으로 요약된다.

본질적인 문제는 반기업 정서다. “돈 많이 버는 회사에 주와 시 정부가 그 많은 세제 혜택을 주면서 데려와야 하느냐”는 반대 여론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 뉴욕 롱아일랜드 시티 야경(2015년) /위키피디아

 

아마존의 본사는 미국 서부 시애틀에 위치해 있다. 1994년에 설립된 아마존은 사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며 본사 늘려 왔다. 이에 2017년 아마존은 시애틀 이외의 지역에 제2본사(HQ2)를 짓기로 결정했다. 아마존은 제2본사가 지점의 역할이 아닌, '완전한 본사' 역할을 할 것이라며 후보지를 물색했다.

아마존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만 고용인원이 4만명이 넘는다. 아마존으로 인해 2010~2016년 사이에 시애틀 지역에서 5만3,000여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아마존의 시애틀 본사가 지난 6년간 직접 인건비로 지출한 비용이 약 257억 달러에 달하며, 이를 통해 지역경제에 380억 달러 규모의 경제효과를 창출했다고 한다. 시애틀의 실업률은 미국 도시 평균보다 낮고, 지난 10년간 평균 주택가격은 47%가 올랐다. 시애틀은 아마존의 확장과 함께 도시규모가 꾸준히 성장해 왔으며, 현재는 불어난 인구로 인해 극심한 교통체증과 높은 주택가격이 문제가 되고 있다.

 

▲ 자료: 코트라 워싱턴 무역관

 

거대기업 본사를 유치하면 도시 하나를 먹여 살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미국 전역의 주정부와 시정부가 아마존 제2본사 유치전에 들어갔다. 아마존은 제2본사를 유치한 도시에 일자리 5만여개가 신규로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전역의 주요도시들이 아마존 모시기에 나섰다. 아마존은 인구 100만 명 이상이며 기업친화적이고 안정적인 환경을 갖춘 도시, 기술인력의 수급이 용이하고 추후 개발 확장이 가능한 지역이 우선순위에 두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뉴욕시가 경쟁도시를 따돌리고 아마존 제2 본사 유치에 성공했다. 조건은 30억 달러의 세제혜택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에 아마존은 뉴욕시 롱아일랜드시티를 제2본사 후보지로 선정했다. 뉴욕시는 물론 주정부도 환영했다.

 

▲ 아마존 로고

 

하지만 지난해말 미국 중간선거에서 퀸즈 지역에서 민주당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Alexandria Ocasio-Cortez)가 예상외의 지지를 얻어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는 주와 시 의회를 좌편향으로 돌려 놓았다. 명분은 주 정부와 시 정부가 부자 회사에 너무 많은 세제혜택을 주었으며, 그 돈을 가난한 사람 복지에 쓰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아마존 본사 유치를 찬성했던 뉴욕 정치인들이 반대로 기울어 졌다. 청문회가 열리고 아마존 임원들이 불려가 날카로운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노동조합 세력도 아마존 본사가 들어서면 퀸즈 일대에 땅값이 올라 살던 사람들이 쫓겨 나야 한다며 반대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아마존이란 회사까지 거론했다. 아마존의 가혹한 노동구조 등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아마존으로선 더 이상 뉴욕에 본사를 둘 명분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 오라는데가 많은데, 굳이 욕을 얻어먹으며 뉴욕에 발을 디딜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뉴욕 주와 시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이 세제 감면 혜택을 부결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약속한 세금감면이 물거품 되면 굳이 뉴욕에 갈 이유가 없어진다.

뉴욕에 아마존 제2본사가 들어서면 직접 고용인원만 2만5,000명이고 주변의 상인 등 부가적인 일자리 창출효과는 그 2배에 달하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년간 뉴욕 주와 시에 들어올 세수만도 270억 달러나 된다. 30억 깎아주고 270억 받는 장사를 뉴욕 정치인들이 걷어찬 것이다.

 

아마존의 제2본사 계획 철회는 최근 갑자기 결정된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앤드루 쿠오모(Andrew M. Cuomo) 뉴욕 주지사와 빌 드 블라지오(Bill de Blasio) 뉴욕시장이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를 만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

다만 아마존은 온라인에 뉴욕 본사 계획을 철회한다고 게시했다. 아마존은 "새로운 본사 건립에는 해당 지역 선출직 공직자들과의 긍정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면서 "뉴욕 시민의 70%가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많은 지역 정치인들은 반대하고 있다"며 뉴욕 정치인들에게 서운함을 표시했다.

아마존은 지난해 11월 제2 본사 후보지로 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 북부 내셔널 랜딩과 뉴욕 롱아일랜드시티를 각각 선정한 바 있다. 따라서 뉴욕에서 포기한 아마존의 제2본사는 버지니아로 갈 가능성이 있다.

아마존 본사 유치 반대운동에 앞장선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오늘은 헌신적인 그룹, 일상의 뉴요커와 이웃들이 아마존의 탐욕과 노동 착취,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을 패배시킨 날이다.”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뉴욕은 아마존에 2만5,000개 일자리를 돌려주었다”며, “반기업 활동가들은 엄청난 댓가를 치르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얻었다”고 논평했다.

 

▲ 아마존의 시애틀 본사 /위키피디아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