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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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3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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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선거철만 다가오면 서점가에는 정치 관련 도서가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지난 10년간 정치인들은 물론 정치에 관심 많은 이들이 자주 인용하는 책이었습니다. 미국의 진보와 보수의 세계관을, 즉 양 진영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다루었는데 특히 ‘프레임’ 전략의 강력함을 전한 도서였습니다.

요즘에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가 눈에 잘 뜨입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니까요. 한국 측 출판사가 어그로 끌려고 이런 제목을 달았나 했더니 영어 제목부터 ‘How Democracies Die’입니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민주주의 위기 신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하버드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기(Steven Levitsky)’와 대니얼 ‘지블랫(Daniel Ziblatt)’이 함께 썼습니다.

두 사람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었습니다. 저자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 신호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썼습니다. 많은 관심을 끈 이 글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집필로 이어졌고요.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두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큰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들 독재자가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공통점을 찾아냅니다.

그 출발점은 인기가 높았던 정치적 아웃사이더들과 기성 정당이 손잡는 것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에 제도권 정치인이 된 이들은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고, 최고 권력자가 된 후에는 정적과 언론을 공격하는 등의 행보를, 즉 민주주의 붕괴 조짐의 신호를 보인다는 겁니다. 

저자들이 사례로 꼽은, 이런 행보를 보인 독재자 중에는 남미의 독재자들도 있지만 무솔리니와 히틀러도 여기에 속합니다. 

또한, 정치적 아웃사이더에서 권력을 잡은 독재자들의 특성으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반민주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 걸 들기도 했습니다. 저자들은 트럼프가 이런 특성을 가진 정치인이라고 봤는데 이런 관점에서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여느 독재자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합니다. 

미국에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가 2018년도에 나왔으니 트럼프 집권 초기입니다. 즉, 저자들은 당시를 기준으로, 즉 트럼프의 후보 시절과 집권 초기의 행보를 통해 그의 집권기를 예측한 겁니다.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릴 거라고요.

많은 게 저자들의 예측대로 흘러갔습니다. 권력 감시망인 법원이나 수사기관에 대한 압력과 인사권 행사가 이어졌고, 자기에게 비판적인 언론들을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며 탄압했습니다.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하는 네 개의 신호

두 저자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세계 각국의 독재자 사례를, 즉 이들이 정치적 아웃사이더에서 주류 정치권으로 입성하는 과정과 통치자가 된 후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이 작업을 통해 저자들은 이들 독재자에게서 공통점과 패턴을 발견했고 이를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네 개의 신호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준수 의지 부족. 둘째,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혹은 경쟁자에게 반국가 세력이라는 낙인. 셋째,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넷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 

저자들은 “이러한 기준 중 하나라도 충족한다면” 그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저자들에 따르면, 트럼프가 “독재자를 구별하는 우리의 리트머스 테스트 네 항목 모두에서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분석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는 누구일까요? 국민일까요? 선거를 통해 정치인이나 최고 권력자를 뽑는데 그들에게 표를 행사한다는 의미에서 국민에게 책임이 있다는 건 매우 논리적입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그 단계에 가기 전, 정당의 문지기(gatekeeper)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니까 이들 잠재적 독재자가 아예 후보가 될 가능성을 정당의 후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부터 걸러내야 한다는 거죠. 선거로 미뤄 유권자인 국민에게 책임을 돌리는 게 아니라요.

그런 점에서 독재자가 집권한 나라들도 그랬지만 트럼프를 대통령 후보로 뽑은 공화당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저자들은 지적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미국을 지켜보면 다가올 대선에서 어쩌면 트럼프가 또 공화당의 후보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한 대형서점에 진열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왼쪽이 초판본이고, 오른쪽이 최근에 양장본으로 나온 리커버 본이다.

한국 정치판으로 대입하는 독자들

미국에서 2018년에 출간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한국에서도 같은 해에 출간됐습니다. 2017년에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후 미국은 물론 세상이 출렁이는 모습을 보면서 이 책은 한국 독자들의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런데 2022년에도 이 책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 대선 결과 덕분이었습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미국의 정치 상황을 분석하고 있지만 한국의 정치 상황과도 들어맞는 면이 많았습니다. 

특히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기성 정당과 손잡고 정치에 입문하더니 급기야는 최고 권력자가 된 과정, 특히 경쟁자나 비판자를 반국가 세력으로 여기는 건 물론 비판적 언론을 적대시하는 행보가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총선을 앞둔 2024년 봄에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분석한 민주주의에 대한 위험 신호를 한국 정치계가 지난 몇 년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이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서평을 SNS나 블로그에서 꽤 볼 수 있습니다. 다음 네 개의 특성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이 포퓰리스트와 손을 잡는다. 둘째, 정치인들이 경쟁자에게 반국가 세력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셋째,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이 음모론을 제기하며 결과에 불복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 비판적인 언론을 향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한다.

흥미로운 건 이런 분석을 각자가 지지하는 진영에 대입해, 즉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한다는 겁니다. 여당 지지자들은 야당 측이 이렇다며 비판하고, 야당 지지자들은 여당 측이 그렇다는 식입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혹시나 한국에 관한 내용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읽었습니다. 단 한 문장에서 나라 이름이 나왔습니다. 책의 마지막 9장에서 “전 세계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는 온전히 살아남았다.”며 그 나라들과 함께 ‘한국’이라는 국명이 언급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책이 쓰인 2018년 무렵을 기준으로 한 저자들의 의견일 겁니다. 

만약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의 저자들이 전 세계 상황을 업데이트해 개정판이 나오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나라로 분류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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