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대 치매노인, 아들 대신 ELS 가입하기도
[오피니언뉴스=박준호 기자]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하고 있는 홍콩 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은행의 불완전판매를 규탄하고 나섰다.
23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 주재로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100여명의 투자자들이 모여 각자 사례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양정숙 의원과 백주선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신동화 참여연대 선임간사도 함께했다.
투자자 A씨는 은행이 치매 초기 증상이 있는 90대 고령자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ELS 상품을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 명의로 ELS상품을 대리 가입한 아버지는 가입 당시 94세로 치매증세가 있었다"며 "오랫동안 은행에서 안정적인 상품만 가입하셨고 자식보다 더 믿었던 은행원이 시키는 대로 서류와 계약서를 작성했다. 상담 녹취록을 들어보니 저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빠른 속도였다"고 말했다.
B씨는 "지난 25년간 주거래은행인 농협에서 VIP대우를 받았는데 담당직원은 절대 원금손실이 없고 6개월 만에 투자수익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며 "제대로 된 상품 설명은 없었고 만기가 다가오는 지난해 11월 상품설명서를 문자로 처음 받았다"고 밝혔다.
모친이 고등학생 아들 대신 H지수 ELS에 투자한 일도 있었다. C군은 "어머니는 은행원의 말만 듣고 ELS에 가입했다"며 "이번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제 투자성향점수가 '공격형 100점'이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얘기했다.
D씨는 "은행에서 위험하지 않다고 해서 어머니가 가족들이 몇 년간 모은 전 재산 10억원을 ELS에 가입했다"며 "어머니는 정기예금 상품을 달라고 했지만 홍콩H지수 연계 상품이 손실이 나지 않을 거라며 재가입을 권유했고 위험성을 고지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토론에 참석한 백주선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변호사는 "ELS는 은행을 찾는 고객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상품이며 이를 판매하는 건 금융소비자법을 지키지 않은 행위"라며 "일차적으로 원금손실이 가능한 상품을 은행에서 팔면 안 된다. 사후적 규제를 위해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남주 변호사는 금융당국의 감독 강화를 주문했다. 그는 "판매 금융기관이 위험성을 고객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면 투자 위험을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불공정하고 위법하다"며 "손실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금융기관이 금융소비자법과 관련 규정들을 준수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을 주재한 양정숙 무소속 의원은 "홍콩 지수 ELS 피해 사태가 발생한 후 하루에도 10통이 넘는 피해 호소와 사태 수습을 요청하는 내용의 편지가 쏟아져 들어 왔다"며 "금융당국과 금융사는 사태 책임의 원인을 외면하고 책임회피를 할 것이 아니라 사태 수습 방안과 재발 방지 대책, 나아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대책을 내놓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얘기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체 홍콩H지수 ELS 판매 잔액 중 올 상반기까지 10조2000억원이 만기가 도래한다. 지난 2021년 1만2000대였던 H지수가 65~70% 수준까지 올라서야 원금손실을 피할 수 있다. 23일 기준 H지수는 514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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