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액만 1조9천억 '횡재세' 법안 발의...금융권 반발도 거세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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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정액만 1조9천억 '횡재세' 법안 발의...금융권 반발도 거세져
  • 박준호 기자
  • 승인 2023.11.15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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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횡재세' 법안 발의...통과시 1.9조원 징수 전망
정치권 "고금리 시절 초과수익 환원해야"
금융권 "저금리 시절에는 세금 깎아줬나"
4대 금융지주 로고. 사진 제공=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박준호 기자] 정치권이 이른바 '횡재세' 법안을 발의하면서 금융회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명목은 부담금이지만 결국 영업 활동으로 얻은 이익에 세금 외 추가금을 징수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는 대출원가와 판매가격 상승 등을 유발해 금융 소비자들에게 부담이 전가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14일 더불어민주당·정의당·기본소득당 소속 의원 55명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과 '부담금관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고 횡재세 성격의 부담금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고물가·고금리 시장이 유지되며 금융회사들이 거둔 막대한 초과수익을 국민에게 돌리겠다는 취지다.

법안의 골자는 은행의 순이자이익이 최근 5년 평균의 1.2배 이상 얻었을 때 해당 초과이익의 40% 내에서 '상생금융 기여금'을 부과·징수하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되면 올해 금융권에서만 약 1조9000억원이 걷힐 것으로 전망된다.

징수된 기여금은 금융 취약계층과 소상공인의 금융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지원사업에 쓰인다. 이를 통해 금융소비자 보호의 실효성을 높이고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영국·스페인·이탈리아·미국 등에서 횡재세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금융사 초과이익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신중론을 편다.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에서 초대 청년소통정책관을 지낸 여선웅 전 정책관은 14일 페이스북에 "우리 정치권엔 영국 횡재세의 원래 취지와 고민들이 생략된 채 단순히 돈을 많이 번 기업에 세금을 더 많이 걷자는 로직만 남았다"며 "시장경제 기본 원리에 반하는 흐름과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우리 경제의 역동성과 혁신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적었다.

지난 2022년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에너지 물가가 급등하면서 석유와 가스 채굴·생산 기업에 에너지 이익 부과금 제도를 발표했다. 하지만 오는 2028년까지 한시적으로 도입한 횡재세일 뿐 유가가 떨어지면 폐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8월에는 이탈리아 내각이 금리 인상으로 기록적 수익을 낸 자국 은행에 일시적으로 초과 이익의 40%에 세금을 적용하는 특별법을 승인했다. 발표 다음날 주요 은행들의 주가가 최대 8%까지 급락하자 상한선을 정하며 한발 물러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횡재세 부과로 이탈리아 금융권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이 일어나고 자금 조달 비용 증가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철회를 권고했다.

미국 역시 우-러 전쟁으로 에너지 기업이 기록적인 수익을 올리자 엑손모빌 등의 정유사에게만 횡재세를 검토했을 뿐 금융사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다.

횡재세의 당사자인 금융권은 난색을 표한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최근 금융 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면만 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고금리로 금융권 실적이 좋아졌다고 추가 부담금을 거둔다면 반대로 저금리 시절에는 세금을 깎아줄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징수된 기여금이 장애인·청년·고령자·소상공인의 금융 부담 완화에 쓰일 예정이라지만 이 역시 금융권에게는 의문을 남긴다. 시중은행들은 이미 매년 1조원 이상씩, 최근 5년 간 5조5190억원을 서민금융, 지역사회·공익, 학술·교육, 문화·체육·예술, 환경, 글로벌 등 사회공헌활동에 쓰고 있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현재 금융사는 상생금융 방안을 추가로 요구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횡재세로 걷은 돈을 금융취약계층 지원에 활용한다고 해서 추가 요구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애초에 횡재세로 금융사의 초과수익이 사회에 재분배될지도 미지수다. 대출 원가, 판매가격 상승 등의 요인으로 작용해 소비자 모두가 비싸게 금융상품을 구매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지주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재원 출연 부담이 기업에게 가중되면 금리 인상 등의 리스크가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며 "대승적인 차원에서 사회환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측면은 어느 금융사나 동의하겠지만 민간 기업의 이익에 횡재세라는 걸 만들어 부과하는 게 정말 옳은지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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