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블랙리스트의 망령이 되살아나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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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블랙리스트의 망령이 되살아나선 안된다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9.16 09: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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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최고 권력자에 대한 풍자가 자유롭지 않은 나라를 뭐라 부를까. 2013년에 세상을 떠난 배우 박용식은 전두환을 닮은 외모 때문에 5공화국 초기에 방송에 나오지 못했다. 혹시 각하의 심기에 거슬릴까 해서 방송국에서 선제적으로 취한 조치였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최고 권력자의 심기를 알아서 관리해주는 시스템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생각지도 못할 것이다. 위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군사독재 국가라고 불렸던 시절에서나 가능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다만,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개최한 2022년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그림으로 대통령을 풍자한 고등학생 작품이 금상을 받은 것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엄중히 경고하면서 이른바 ‘윤석열차 논란’이 불거지긴 했다. 

이에 대해 2022년 국정감사에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순수해야 할 중고생들의 만화공모전이 정치공모전으로 ‘오염’됐다고 의견을 밝혔다. ‘윤석열차 논란’은 정부에 우호적이면 ‘순수’로, 비판적이거나 의견이 다르면 ‘오염된 것’으로 인식하는 정부, 그것도 문화 정책을 펼치는 부처와 그 수장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런 문화체육관광부의 장관이 바뀔 모양이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부 장관 출신이면서 배우 출신인 유인촌으로. 새로운 문화부 장관 후보자 내정 소식은 블랙리스트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건 아니냐는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심기 경호의 시작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백서에 따르면 ‘집권세력이 국가기관, 공공기관을 통해 정권에 비판적이거나 정치적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을 사찰·감시·검열·배제·통제·차별하는 일’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정의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시절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조사하려고 출범했지만, 블랙리스트의 시작은 이명박 정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가 이를 촉발했다. 촛불 시위로 지지율이 바닥을 치자 이명박 정부는 그 원인을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인터넷 등에 올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오피니언 리더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시민들을 선동했다고 본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을 중심으로 일명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만들었다. 그리고 정부에 비판적인 연예인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명단을 작성해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했다. 

이 명단에는 이외수, 김명곤 등 문화계 인사 6명, 문성근, 명계남 등 배우 8명, 김미화, 김제동 등 방송인 8명, 신해철, 안치환 등 가수 7명, 그리고 박찬욱, 봉준호 등 영화계 인사 52명이 포함되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과 피해를 받았다. 방송에서 하차하거나 프로그램이 폐지되었고, 심지어는 조작된 사진으로 추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들이 속한 회사들에는 세무조사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화이트리스트 의혹도 있었다.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압박하는 한편 ‘건전 성향’의 인사들을 육성했다는 의혹이었다. 그 시절 유독 활발히 활동한 연예인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 블랙리스트는 더욱 확대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계승한 면이 크지만, 세월호 참사가 블랙리스트 확대를 이끌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시국선언을 하거나 정부에 비판적으로 활동을 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심지어 문재인과 박원순을 지지하는 문화예술계 인사도 포함됐다. 언론에 공개된 명단만 9천 명이 넘었다. 

국가가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로 분류해 관리한 건 비판의 목소리를 틀어막기 위해서다. 정부에 비판적인 시각은 불온함에 오염된 옳지 않은 것으로, 정부에 우호적인 시각은 건전하고 옳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오염 요인을 미리 막는 가장 큰 목적중 하나는 대통령 심기 관리, 혹은 심기 경호에 있기도 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사진=연합뉴스

솔솔 부는 블랙리스트의 냄새

지금 정부는 어떨까?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문화예술 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곤 했다. 

그런데 정부와 여당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을 색깔로 구분하는 모양새인 듯하다. 여당 국회의원 중에는 ‘좌파 예술인’이 공공기금을 받아 비도덕적, 비윤리적으로 일을 벌여왔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지금 정부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통령의 의중일지도 모르지만.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이른바 ‘윤석열차 논란’ 덕분에 지금 정부의 방향성을 읽을 수 있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 다양한 정부 산하 기관과 지자체 행사에서 문화계에 대한 압박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블랙리스트 2.0’이라는 표현이 문화예술계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블랙리스트 이후 준비위원회’는 윤석열 정부에서 드러난 문화계를 향해 불어오는 이상 기류들을 목록으로 정리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대통령과 부인을 소재로 한 전시와 작품에 제재를 가한 사례 등이 있었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정부 출신 장관이 임명되니 블랙리스트 망령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유인촌이 장관이었던 시기의 기사들을 보면 ‘좌파 이념 예술가들이 문제가 있다’고 발언하거나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표현한 정황을 꽤 찾을 수 있다. 편향적이며 권위적인 인물로 보이는 것.

무엇보다 유인촌은 장관 재임 시절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문체부 산하기관장들의 사퇴를 종용했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있기도 했다. 물론 본인은 부정했지만, 그의 등장을 놓고 블랙리스트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이유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가수 김윤아를 ‘개념 없는 연예인’으로 낙인찍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김윤아의 발언이 정부와 여당의 뜻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는 권력층이 자기와 생각이 다른 국민을 적으로 돌려 공격하고 나선 모양새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2023년의 대한민국은 다양성을 위험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된 것 같다. 하나의 날개로 날아보라고 떠미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천만 명이 넘는 국민이 모두 같은 관심사를 갖고 있을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혹시 같은 생각을 가진 일부만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법 공부한 이들은 너무 잘 알겠지만, 대한민국헌법에는 학문과 예술의 자유(22조),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21조), 그리고 양심의 자유(19조)가 명시되어 있다. 이렇듯 다양한 자유의 가치를 헌법에서 보장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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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2023-09-20 07:11:03
여야 정치꾼과 똘만이는 공정과 정의를 핑게로 편가르기 하지마라
여야 모두 내로남불, 현대판 당파싸움 하지마라
내편이 아니면 모두 나쁜넘 이라는 인식도 버려라
정치꾼보다 백성이 더 잘한다
사심보다 공심이 중요하다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