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정의 다양성과 미래] ① 승자독식 사회가 키운 괴물 '묻지마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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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의 다양성과 미래] ① 승자독식 사회가 키운 괴물 '묻지마 범죄'
  •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실장
  • 승인 2023.08.11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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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정 박사(경영학)
최원정 박사(경영학)

[최원정 태재미래전략연구원 디지털플랫폼 실장] 최근 도심 한복판에서 ‘묻지마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시민들 사이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행인에게 칼을 휘두르고, 백화점 앞을 걷던 행인을 차로 덮치는 범행을 마주하며 시민들은 타인에 대한 경계를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일상의 위기를 맞았다.

지하철에서 아이돌의 라이브 영상을 보던 한 팬이 신나서 내지른 소리에 승객들이 혼비백산 도망치는 모습은 일상에 스며든 팽팽한 긴장감과 공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현장이다.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열심히 살았는데도 불행해 남들도 나처럼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다른 묻지마 범죄의 범인들도 조사 과정에서 ‘나만 뒤쳐졌고 억울하다’는 사회를 향한 원망과 분노를 드러냈다.

이들의 진술은 단순히 정신질환자의 이상행동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배가 고파 빵을 훔치던’ 차원의 범죄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으려해서도 안 된다. 사회를 향한 개인들의 분노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의 모습으로 표출되는 것이기에 우리 사회에 미칠 파괴력은 더욱 위협적이다.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 테러 오인 신고가 들어와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진=유튜브 캡처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역사에서 테러 오인 신고가 들어와 승객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사진=유튜브 캡처

묻지마 범죄는 사회를 향한 분노의 표출 

묻지마 범죄가 일상화될 경우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근간인 신뢰가 무너지고 사회 곳곳에 무겁게 내려앉은 두려움이 삶의 행복도를 갉아먹게 된다. 환부를 면밀하게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치유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를 향한 무차별 공격의 원인은 무엇일까? 흔히 공격성의 원인으로 좌절을 꼽는다. 좌절-공격성 이론(frustration-aggression theory)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목표를 이루거나 만족을 얻는데 방해를 받았다고 지각할 때 공격반응이 일어날 가능성이 증가한다고 본다. 앞서 살펴봤던 범행 동기를 봐도 열심히 살면 남들처럼 행복할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아 느껴야했던 좌절감이 드러나고 있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이들의 기대를 꺾은 우리 사화의 좌절 요인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수직적 서열주의가 만든 패자 양산 시스템 

첫째, 패자를 포용하지 않는 배타성이다. 급격한 경제발전의 역사 속에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은 한국 사회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절대적 빈곤에서는 벗어났지만 경제 성장과 동반해 불평등은 빠르게 확대됐다.

뿌리깊은 수직적 서열주의 문화는 끊임없이 패자를 양산하고 승자독식의 사회 구조는 패자로 밀려나지 않기 위한 경쟁을 부추겼다. 극심한 경쟁은 학교에 입학하는 어린 나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직적으로 서열화 된 대학의 입학을 목표로 모두가 달리는 오늘날의 학교는 마치 단 하나의 고층 빌딩에 모두가 매달려 시합을 하는 것 같은 광경을 연상시킨다.

‘수월성 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경쟁의 무리에서 낙오하는 학생들이 늘어난다. 지금의 학교 시스템은 최우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계속 패자들을 쳐내는 배타적 방식이다. 탑의 꼭대기에 오르지 못한 학생들은 모두 낙오자, 또는 패자로 규정된다. 

사회에 진출해서도 이 같은 패턴은 반복된다. 최근에는 노동시장에서, 심지어 살고 있는 거주 지역을 놓고도 서열화하여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행태가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계약직으로 계급을 나눈다. 살고 있는 동네, 아파트 브랜드를 서열화시킨 그림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서로를 조롱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서열 싸움이 병리적으로 드러난 현상이 사회 전반에 만연한 ‘갑질 현상’이다. 서열 상층부에 서면 하층부 사람들에게 군림할 수 있는 권리라도 부여받은 마냥 함부로 행동하고 힘을 과시한다. 경쟁에서 밀려나 패자 라벨을 단 사람들은 모멸감을 견뎌야 하는 암담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에드워드 호퍼 ‘Sunday’. 호퍼의 작품은 미국이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시대에 대도시의 고독한 군중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에드워드 호퍼 ‘Sunday’. 호퍼의 작품은 미국이 경제적 번영을 누리던 시대에 대도시의 고독한 군중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상대적 박탈감이 키운 사회적 고립   

둘째, 경제적 양극화와 동반해 확대되는 상대적 박탈감이다. 미국에서 1967~68년경 빈곤 퇴치를 위한 사회적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인종 문제와 연관된 폭동이 전국적으로 크게 늘어났다. 재밌는 사실은 당시 가장 격렬했던 폭동이 일어난 지역은 가장 빈곤한 지역이 아닌 LA와 디트로이트였다.

그 지역에 살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상황이 다른 도시들보다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변화된 상황이 이들의 기대보다 크게 못 미쳤던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사회를 향한 공격성은 상대적 박탈이 훨씬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적 고립감을 키우는 원인이라는 점에서도 그 위험성을 주목해야 한다. 현대산업사회의 개인 소외를 연구한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의 저서 ‘고독한 군중’은 1950년대의 연구지만 현대인들의 고립감을 설명하는데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타인과 매스미디어가 보내는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른 사람들과 분리되지 않으려는 타인지향형 인간으로 살게 된다고 전망했다. 그의 예언은 사람들이 SNS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서로가 어떻게 사는지 시시콜콜 들여다보며 무엇을 소비하는지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대에 왜 소외감과 고립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는지를 설명해준다.

온갖 미디어에 등장하는 소비의 향연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모두가 똑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똑 같은 것을 욕망하는 것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기대다. 다양한 삶이 보장되고 모두가 제 나름의 욕망을 추구할 수 있다면 잘못된 기대를 마음에 품었다 좌절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다양성을 확대하고 포용적 사회 기반 갖춰야 

산은 단 하나의 봉우리로 존재하지 않는다.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봉우리가 제각각의 지형과 풍경으로 산세를 형성하고 산맥을 이룬다. 사회 역시 구성원들이 각기 다른 봉우리를 오르며 정상에 서고 그 경험을 공동체 속에서 나누며 자신의 가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다양한 방식으로 승리를 경험할 수 있을 때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더 여유있는 시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경영학 박사.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조직과 거버넌스의 변화, 다양성과 포용성을 확대하는 방안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민간 싱크탱크에서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참여형 정책 플랫폼을 만드는 일을 주도하고 있으며, DAO 운영 등 다양한 웹3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클라우드 국가가 온다(공저)’, ‘코로나 시대 한국의 미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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