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이야기]㉝ 한강의 대표 유원지, 뚝섬과 광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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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이야기]㉝ 한강의 대표 유원지, 뚝섬과 광나루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8.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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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지난주 태풍이 한반도를 할퀴고 갔습니다. 태풍 영향으로 기온이 살짝 내려간 듯하지만, 이번 여름의 더위는 유독 가혹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서울 시민들에게 사랑받았던 한강의 유원지를 이야기하려 합니다. 바다에 해수욕장이 있다면 강에는 강수욕장이 있었지요. 한강에도 여러 군데 있었는데 뚝섬유원지와 광나루유원지가 대표적 강수욕장이었습니다.

뚝섬과 광나루에 유원지가 생긴 건 무엇보다 한강을 끼고 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지만 탄생 과정에서는 편리한 교통의 덕을 본 게 컸습니다. 특히 뚝섬유원지가 그렇지요.

뚝섬유원지는 1934년 7월 ‘기동차’를 운영하는 경성궤도주식회사가 동뚝섬역 인근 한강 변에 유원지, 수영장, 어린이 놀이터 등을 만들어 교외로 소풍을 나가는 승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한 데서부터 시작됐습니다. 같은 해 10월에는 뚝섬유원지역도 신설했지요.

뚝섬을 '뜨게 했던' 기동차

여기서 ‘기동차’는 노면 위 궤도를 달리는 전차를 말하지만, 당시 도심 구간을 운행하던 경성 전차, 그러니까 경성전기주식회사에서 운영한 노면전차와는 노선은 물론 운영사도 다른 전차였습니다. 그래서 경성 전차와 구분하는 차원에서 사람들이 기동차라 불렀다고 하네요. 

기동차는 1930년 11월에 왕십리에서 뚝섬 간의 4.3km를 운행하기 시작한 게 그 시초입니다. 1932년 10월에는 경성 도심과 가까운 동대문에서 왕십리 사이가 연결되었는데 기동차 운영 회사 측이 승객 확대와 편의 제공을 위해 1934년에 뚝섬에 유원지를 개설한 걸로 보입니다.

1934년 12월에는 상후원역(上後原驛), 즉 지금의 성수동1가에서 광장리까지 연결되는 7.2km의 지선도 생겼습니다. 동대문에서 광나루 인근까지 노선이 확대된 거죠. 교통이 편리해지자 광나루 인근에도 자연스럽게 유원지가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날씨가 시원해지면 경성과 서울을 달리던 노면전차와 기동차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서 할 예정입니다.)

그럼, 과거 기사에 등장한 뚝섬유원지의 모습을 한 번 들여다볼까요. 기동차는 경성 도심과 경성 동남부 교외 지역을 연결하고 있어 노선 인근의 주민뿐 아니라 소풍객도 많이 이용한 듯합니다. 일제강점기의 유명한 문인과 화가가 기동차를 타고 왕십리와 뚝섬유원지 일대를 유람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 1938년 4월의 ‘춘교(春郊) 이인행각(二人行脚) 경궤연선(京軌沿線)’ 기사에 시인 임화가 쓴 글과 화가 구본웅이 그린 그림이 실렸습니다. 이 기사에는 기동차가 지나는 왕십리와 뚝섬 인근의 풍경과 사람들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기동차를 타고 뚝섬유원지로 나들이 가는 당시 세태를 엿볼 수 있습니다.

1974년 8월 12일 동아일보에 실린 피서 관련 기사. 사진은 광나루유원지. 출처= 동아일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해방 후와 한국전쟁 후 한강의 유원지는 멀리 바다나 계곡으로 피서를 갈 짬을 내지 못하는 서울 시민들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이 친구와 하루를 보내기 좋은 곳이었지요.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모이면 뭔가 사달이 날 거로 여겼나 봅니다. 

그래서 남학생과 여학생을 분리하려 했지요. 조선일보 1959년 6월 18일의 ‘뚝섬유원지 풀을 여학생 전용으로’ 기사에 그러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기사는 서울시교육위원회가 그해 여름 뚝섬유원지 풀을 시내 각 여학생 전용 풀로 지정한 소식을 전합니다. 또한 남녀 학생들의 사고 방지와 기타 풍기 문제를 고려해 각 여학교 체육선생들을 매일 교대로 수영장에 배치할 거라는 소식도 함께 전합니다.

물론, 뚝섬유원지 전체를 여학생들만 이용하게 한 게 아니라 여학생만 들어갈 수 있는 제한 구역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뚝섬유원지의 여학생 전용 풀은 그 후에도 운영되었습니다.

1968년의 뚝섬유원지 모습. 사진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뚝섬 유원지의 '여학생 전용' 풀

조선일보 1964년 7월 26일의 ‘불쾌지수 씻는 금남의 물가 뚝섬 여학생 전용 풀 개장’ 기사는 제목부터 자극적이고 차별적입니다. 기사는 뚝섬유원지의 여학생 풀이 남녀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수영하면 빚어지기 쉬운 사고 등을 막기 위해 마련되었다고 전합니다. 

예전에는 남녀 학생이 함께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경향신문 1963년 7월 25일 ‘뚝섬 등 유원지에 교사 50명’ 기사가 그 시절의 그런 분위기를 알려줍니다. 여름방학 중 학생들의 탈선을 방지하기 위해 유원지 등에서 진행된 교외지도는 “학생의 본분을 잊고 그릇된 행위를 못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기사에서 전하네요.

물론 뚝섬유원지는 청소년뿐 아니라 가족 등 모든 세대가 이용했던 여름 피서지였습니다. 1960년대와 70년대 피서 관련 기사에 뚝섬유원지가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서울 시민들에게 사랑받았던 유원지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럴 이유가 있었습니다. 1963년경부터는 한강 하류인 용산의 백사장 등은 수질 오염도가 높아 서울시에서 물놀이를 억제했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오염도가 덜한 상류의 뚝섬유원지나 광나루유원지로 피서객들이 몰렸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유원지의 편의 시설을 확충하는 한편 인근의 도로를 확장하거나 새로 포장하며 피서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뚝섬유원지는 한강 개발 과정에서 뚝 잘려 나가게 됩니다. 암사와 송파를 지나온 한강은 자양동에서 크게 휘어지는데 뚝섬이 튀어나오며 강폭이 좁아져 홍수에 취약했거든요. 그래서 1980년대 중반에 뚝섬 일대 약 8만 평이 잘려서 사라졌습니다. 

1968년의 뚝섬유원지 모습. 사진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뚝섬유원지는 지금의 영동대교 북단 일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나루유원지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였을까요? 저는 광장동의 워커힐 호텔 아래쪽 한강 변에 광나루 표지석이 있어서 유원지도 그 일대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착각이었지요.

옛 사진으로 본 광나루유원지에는 넓고 기다란 백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광나루 표지석 근처에 백사장이 있었을 법한 데가 없어서 혼란이 왔습니다. 광나루 표석 주변은 강변에서 아차산 자락이 시작되는 경사진 지형이라 완만한 평지가 없어서, 그러니까 모래가 퇴적될 만한 곳이 없어 모래사장이 형성될 수 있는 곳이 아니었거든요.

광나루 유원지는 어디에 있었나

그런데 과거 신문 기사에서 광나루유원지의 위치에 대한 단서를 찾았습니다. 유원지가 워커힐 호텔에서 바로 건너편에, 그러니까 강 건너편 천호동 쪽에 보인다든지, 여름철 광나루유원지로 서울 시내버스를 연장 운행했는데 그 노선들이 천호동을 향한다든지 하는 내용에서요.

광나루는 지금의 광장동에서 서울과 강원도를 이어주는 나루터였고, 광나루유원지는 광진교 남단 인근에 조성된 유원지였습니다. 마침 1970년대에 천호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친구에게 광나루유원지에서 물놀이했던 추억을 들을 수 있었지요.

광장동의 한강 변에 있는 ‘광나루 터’ 표지석. 사진=강대호

그 친구에 따르면 천호동 쪽 한강 변에 넓은 백사장이 있었는데 거기를 광나루유원지라 불렀다고 했습니다. 강 건너 워커힐 쪽 한강 변에는 보트장과 선상 식당이 있었다고도 했지요. 그러니까 제가 사진에서 봤던 백사장이 있는 광나루유원지는 천호동 쪽 한강 변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친구는 7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유원지 일대가 위험해졌다고 기억했습니다. 천호동의 한강 변은 모래를 퍼가는 곳이기도 했거든요. 조선일보 1975년 8월 5일의 ‘모습 잃어가는 광나루유원지’ 등 여러 기사가 유원지 인근 모래 채취의 위험을 경고합니다.

특히 이 기사는 광나루유원지 인근이 “곳곳에 모래 파인 웅덩이가 2년 동안 8만㎡가 넘는다”고 고발합니다. 이 때문에 시민 안전에 위험요소가 되고 백사장도 점차 줄어들어 유원지의 모습을 잃고 있다고도 지적하지요.

이렇듯 광나루유원지 일대가 위험해지자 친구의 부모님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수영장에 보내주셨다고 하네요.

지금의 한강 유역에는 제방 역할을 하는 공원과 도로가 들어서서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옛 유원지의 전통을 이어받기라도 한 듯 한강공원 곳곳에다 만든 수영장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뚝섬한강공원과 광나루한강공원에서도요. 

한편, 한강의 유원지들은 1970년대에 들어서며 상대적으로 시설이 좋은 수영장들과 경쟁하게 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광진교에서 바라본 천호동 쪽 한강공원. 예전에 광나루유원지가 있던 곳이다.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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