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일타 스캔들', 로맨스와 스릴러의 어색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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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일타 스캔들', 로맨스와 스릴러의 어색한 만남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1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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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이 논란과 호평 속에 막을 내렸다. 1회에 4.0%로 시작한 시청률이 지난 5일 마지막 회에서 17.0%를 기록했다. 회를 거듭하며 상승한 시청률이 보여주듯 유명 강사와 반찬집 주인의 사랑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다만 연쇄 살인을 포함한 모든 갈등 구조가 순식간에 마무리되는 결말은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달달한 로맨스에 뿌려진 잔혹한 스릴러

드라마 <일타 스캔들>의 주인공은 핸드볼 국가대표 출신 반찬집 사장 남행선(전도연 분)과 대한민국 사교육계 최고 매출을 자랑하는 수학 강사 최치열(정경호 분)이다.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이들이 음식을 매개로 점차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는 로맨스 드라마의 교과서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데 달달한 로맨스에 스릴러가 뿌려졌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거다. 피해자들은 공교롭게도 최치열과 갈등이 있었던 이들이었다. 최치열의 소중한 사람이 된 남행선의 가족에게도 피해가 갔다. 어쩌면 그 화가 남행선 본인에게 미쳤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자극적인 이야기에 중독된 대중을 겨냥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주인공들이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표현하면서 마침내 이룰 사랑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한 서사였을 것. 

하지만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예쁜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잔혹한 피의 스릴러가 흩뿌려졌으니. 호평받으며 종영을 향해 달려가던 <일타 스캔들>에 비판이 쏟아진 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로맨스에 스릴러가 섞여서 재미있었던 드라마도 있었다. 2019년 KBS2에서 방영한 <동백꽃 필 무렵>이 그렇다. 이 드라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들은 주인공들의 서사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여주인공 주변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이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경찰관 남주인공. 스릴러는 <동백꽃 필 무렵> 속 두 주인공의 사랑을 무르익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했다.

로맨스에 스릴러가 섞인 드라마라고 해서 모두 호응을 얻는 건 아니다. 2022년 연말 ENA에서 방영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에서도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 힐링 드라마를 표방한 이 드라마에 스릴러는 잘못 끼운 단추가 아니었을까. 작가는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하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겠지만, 대중들은 치유가 필요한 주인공들에게 닥친 가혹한 시련을 불편해했다.

<일타 스캔들> 속 스릴러에 대한 비판 중 '왜 하필 연쇄 살인이냐'는 지적이 인상 깊었다. 반사회적 성향의 인물이 저지른 범죄를 구체적인 방법까지 묘사하면서 그릴 필요가 있었냐는 것. 

물론 허구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을 표현해야 하는 살인만큼은 드라마 소재로 쓸 때 세심한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나이 제한을 걸었다고 해서 안전장치가 완전한 건 아니다. 게다가 <일타 스캔들>은 ‘15세 이상 관람가’였다.

tvN 드라마 <일타 스캔들>

개연성 있는 마무리가 아쉬웠다

범죄자는 사회적으로도 규범적으로도 단죄받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 하는 반성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절차 안에서 죄를 규명하고 벌을 받는 게 중요한 것.

그런데 <일타 스캔들> 속 연쇄 살인범은 범죄가 드러나자 마땅히 해야 할 일 한 거뿐이라며 억울해한다. 그리고 자기 운명을 자기가 정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이는 자기가 벌인 일을 반성하는 모습도 아니었고, 다만 앞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분함을 이기지 못해 항거하듯 몸을 던진 것뿐이었다.

시청자 관점에서는 점차 올라가 폭발할 것 같았던 갈등 구조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이 선택한 자살 때문에 진실을 밝히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일타 스캔들> 속 범죄자의 뉘우침 없는 자살은 느닷없기도 했지만, 권선징악으로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작가의 소신이 선택한 자충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뿐 아니라 <일타 스캔들>은 드라마 결말로 가면서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해결을 시도해서 혹평을 사기도 했다. 서브 로맨스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 

남행선에게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남동생이 있다. 그리고 핸드볼 선수 시절부터 단짝이었던 친구가 곁에 있다. 이 둘은 남행선의 반찬집에서 함께 일해 왔다. 그런데 동료였던 둘의 관계는 연인으로 발전한다. 마지막 회에서는 아이를 가져 혼인 신고한 소식까지 알린다. 

사실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며 오랜 시간 봐온 사이라면 뭔가 감정이 싹틀 개연성은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런 떡밥도 없이 사고처럼 사귀게 되니 시청자들의 호흡과 맞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으로만 비쳤고, 한편으로 이 둘을 엮은 건 남행선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장애물을 미리 치워버린 것처럼 비쳤으니 이런저런 비판에 직면했던 것. 

이렇듯 드라마가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며 순식간에 해결된 서사가 여럿이다. 딸을 버리고 사라졌던 남행선의 언니가 등장해 긴장을 불어넣나 했는데 또다시 사라진다. 그런 그녀의 딸은 자기를 버린 엄마를 용서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일타 스캔들>에서 빌런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마지막 회에서 반성하더니 순치된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드라마 내내 긴장감을 불어넣었던 갈등 구조가 순식간에 해결된 것. 로맨스로 시작한 드라마가 스릴러를 거쳐 판타지로 마무리된 느낌이었다.

해피엔딩만 사랑받을까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쓴 작가는 종영을 앞둔 인터뷰에서 “뻔한 엔딩이 아닌 펀(fun)한 엔딩을 즐겨주시면 좋을 것 같다”라고 했다. “너무 욕심을 부린 부분이 있지 않나, 반성도 하게 된다”라고도 덧붙였다. 

그런데 작가가 펀한 엔딩이라 자평했지만 대중들은 뻔한 엔딩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주인공이 행복해지는 결말이라고 해서 대중의 호응을 얻는 건 지금 트렌드가 아닌 모양이다. 종영 즈음해서야 작가는 그걸 알아채 반성할 마음이 들었던 걸까. 

드라마에서 스토리와 캐릭터는 중요한 요소다. 최근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드라마들을 보면 매력 많은 캐릭터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드라마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랬고 <슈룹>이 그랬다. 

그러고 보면 <일타 스캔들>에서도 주인공들은 매력 많은 캐릭터로 등장했다. 다만 결말로 가며 특별함이 희석됐을 뿐. 어쩌면 작가는 캐릭터의 힘을 믿기보다는 자극적 이야기로 관심받을 수 있다고 과신한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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