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일진 빅딜]② '형제 경영' 일진그룹, '알짜' 머티리얼즈 매각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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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일진 빅딜]② '형제 경영' 일진그룹, '알짜' 머티리얼즈 매각 까닭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10.13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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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그룹 38개 계열사 내부거래 비중 70% 달하기도
머티리얼즈 팔면 자산 줄어 공정위 감시 대상서 제외
매각 통해 대기업 집단 이탈·'투자→지분희석' 부담 줄여
허정석 일진홀딩스 대표(왼쪽)와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대표. 사진=연합뉴스

 

롯데케미칼이 세계 4위 동박 제조업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한다. 국내 대표 화학업체이자 롯데그룹의 실적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롯데케미칼은 M&A로 그동안 뒤쳐졌다고 평가받던 배터리 소재 사업에서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일진그룹 역시 일진머티리얼즈 매각으로 공정거래위원회 내부거래 규제 감시 대상에서 제외 되는 등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롯데와 일진그룹 사이 이번 '빅딜'의 이면을 짚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일진그룹은 왜 SK넥실리스, 중국 왓슨, 대만 장춘에 이은 세계 4위 동박 제조업체인 일진머티리얼즈를 롯데케미칼에 매각했을까. 업계 안팎에선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계열사 간 내부거래와 투자금 마련 과정에서 오너 지분 희석 우려 등 지배구조 이슈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진그룹 전경. 

'대기업'이 달갑지 않은 일진그룹

일진그룹은 지난 5월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공시대상 기업집단'(대기업집단)으로 저정됐다. 공정위는 매년 5월 기업집단에 속하는 국내 회사들의 직전 사업연도 자산총액 합계액이 5조원 이상이면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기업집단 현황 등 공시 의무가 뒤따른다. 일진그룹의 대기업 지정은 현금성 자산 증가, 회사 신설 등이 작용한 결과다. 공정위에 따르면 일진그룹의 자산총액은 5조2710억원이고, 부채비율은 38.8%다. 부채비율만 놓고 보면 내실이 탄탄한 기업이다. 

계열사는 모두 38곳을 두고 있다. 주요 계열사는 ▲일진전기 ▲일진머티리얼즈 ▲일진다이아몬드 ▲일진디스플레이 ▲일진제강 ▲일진하이솔루스 ▲일진에스앤티 등이다. 대다수 계열사는 일진홀딩스 산하에 있으며 일진홀딩스는 전력기기 제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지주회사다. 일진그룹은 2008년 일진전기와 일진다이아몬드 투자 부문을 합쳐 지주사인 일진홀딩스를 출범시키고 장남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과 허재명 일진머티리얼즈 사장의 형제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허정석 부회장은 지분 97%를 가진 일진파트너스를 통해 일진홀딩스를 지배하고 있고, 일진홀딩스 아래에 일진전기, 일진다이아몬드, 일진디앤코 등 계열사를 두고 있다. 모두 모회사 지분율이 과반을 차지한다. 허재명 사장도 일진머티리얼즈 지분 절반 이상을 가진 최대 주주로, 일진건설, 일진유니스코 등으로 이어지는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다. 두 형제들은 일진그룹 내에서 각자 그룹사를 이뤄 경영을 하고 있으며 양측은 서로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일진그룹의 미래 먹거리 사업군. 사진제공=일진그룹

일진머티리얼즈 매각, 왜

문제는 일진그룹의 각 계열사 간 내부거래 비중이 70%에 달할 정도로 높다는 점이다. 때문에 업계 일각에선 일진머티리얼즈를 매각해 일진그룹의 덩치를 줄여, 공정위의 내부거래 규제를 피해가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53%가량인 일진머티리얼즈 지분을 넘기면 일진그룹 자산은 5조원대에서 3조원대로 줄어 내부거래 공시 의무가 사라진다. 지난해 말 기준 일진그룹 전체 매출 2조3000억원 중 일진머티리얼즈의 매출은 6889억원으로 그룹 전체 매출의 3분의 1에 달한다. 

대규모 설비 투자에 대한 부담도 매각의 중요한 원인이 됐을 거란 관측이다. 일진머티리얼즈는 2차 전지 필수 소재로 꼽히는 동박, 일렉포일을 생산한다. 전체 매출에서 동박 비중이 70%를 넘는 데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급증하는 전기차 배터리 수요에 맞춰 공장을 계속 증설해야 한다는 점은 그룹 입장에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 

특히 투자금 마련을 위한 '증자'가 오너의 '지분 희석'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2017년 일진머티리얼즈는 말레이시아에 동박 공장을 짓기 위해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200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지만 허재명 사장의 지분 가치는 희석됐다. 허재명 사장의 지분율은 62.8%에서 56.3%로 낮아졌다. 업계에선 투자금 마련에 대한 부담과 경영권 방어를 걱정해야 하느니 기업가치가 높을 때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는 편이 더 나은 판단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지분 희석을 감수하면서 지속적으로 큰 돈을 투입해야하는 계열사를 포기하는 대신 현금을 확보해 신사업을 발굴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일진하이솔루스는 국내 유일 수소차용 연료탱크를 양산하는 기업으로 세계적으로 타입4 탱크 양산에 성공한 기업은 일진하이솔루스와 도요타 두 회사 뿐이다. 또한 일진그룹은 미래 성장 산업으로 바이오산업도 육성하고 있다. 그룹이 투자한 캐나다 제약회사 오리니아의 난치병 루프스신염 치료제 '루프키니스'가 지난해 미국 식품의약국 FDA 승인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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