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CEP 발효, 격변하는 통상질서] ① 농업, 위기일까 기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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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EP 발효, 격변하는 통상질서] ① 농업, 위기일까 기회일까
  • 박대웅 기자
  • 승인 2022.02.04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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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안·망고 등 10년 내 관세 철폐
낮아진 검역 문턱…농가 "국민 안전 우려"
농민단체 "RCEP 발효 반대 움직임 이어갈 것"

 

아세안 국가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인 한국산 딸기 모습. 사진제공=농촌진흥청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 1일부터 공식 발효됐다. RCEP은 다자간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협정으로 가맹국 사이에 관세 장벽을 낮추고 체계적 무역·투자 시스템을 확립해 교역 활성화를 이뤄내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RCEP 발효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경제적 부문에 더해 통상 부문에서도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낙관론과 농업 등 일부 산업군이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부정론이 상존하고 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RCEP은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과 비(非)아세안 5개국(한국·호주·중국·일본·뉴질랜드) 등 모두 15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전 세계 인구 절반, 세계 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FTA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RCEP은 규모면에서 전 세계 교역량의 30%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한·일 간 체결한 최초의 FTA로 한·중·일 3개국이 하나의 FTA 체제 아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수출 기업에 큰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농민단체는 아세아권 농산물의 대량 유입을 우려하며 "열대 과일에 국내 과수업이 무너진다"고 반발하고 있다. RCEP에 농업계가 반발하고 있는 이유를 짚었다. 

두리안, 망고스틴, 파파야 등 10년 내 관세 철폐

농업분야가 바라보는 RCEP은 비관적이다. 전체 농산물 세 번(HS, 국제기준 품목분류 코드)의 63.4%에 해당하는 모두 1029개 세 번 품목의 관세를 20년 이내 철폐해야 해서다. 특히 열대과일 대부분은 10년 내 관세철폐 대상이어서 수요가 겹치는 국내 과수생산농가가 반발하고 있다. 10년 이내 대추야자, 구아바, 망고스틴, 파파야, 두리안, 레몬, 체리 등 열대과일의 관세가 없어진다. 

국내 농산물 시장에서 RCEP 회원국들로부터 수입하고 있는 농산물 수입규모는 전체 농산물 수입액의 36%정도다. 농민단체는 '지리적 위치상 생산 품목과 주요 수요농산물이 겹친다'면서 RCEP 발효가 큰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항변한다. 과실류 이외에도 그동안 검역으로 수입이 제한되던 보리와 고구마 등 식량작물과 배추, 무, 당근, 생강 등 채소류 및 오이, 호박, 수박 등 열매채소류 모두 RCEP 발효로 아세안 농산물과 경쟁해야 한다.

말레이시아의 한 마트에서 마련된 'K-푸드 존'에서 한 남성이 참외를 살펴 보고 있다. 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정부 "RCEP 발효, 농가 피해 77억원 뿐"

농업계는 정부가 국회에 RCEP 비준 동의안과 함께 제출한 'RCEP 영향평가 결과'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영향평가는 RCEP 발효 후 농업생산액이 연평균 77억원, 20년 누적 1531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향평가는 'RCEP 발효에 따른 추가적 생산액 감소분만 의미한다'고 부연했다. 농업계는 "RCEP 발효로 농민들이 입을 직·간접적 피해가 영향평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낸다.

정부는 영향평가를 기준으로 향후 10년 동안 매년 100억원씩 RCEP 관련 농업피해 지원대책을 세우겠다고 밝혔지만 농업계의 반발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관계자는 "RCEP 발효로 국내 과수 업계와 수요층이 겹치는 과수업과 맥주 등의 원재료인 보리 등 곡물류 등의 피해가 예상된다. 그럼에도 정부의 피해액 산정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적용된 면이 있다"면서 "아세안 열대과일부터 저가공세로 밀려들어오면 개방화에 침체된 국내 농업계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농업계는 지속적으로 RCEP에 반대 의사를 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 "민감 품목 개방 최소화"

정부는 이미 체결된 FTA에서 개방한 품목 이외 추가적인 개방을 RCEP에서 최소화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쌀과 고추, 마늘, 양파, 사과, 배 등과 수입액이 많은 바나나, 파인애플 등이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RCEP자유화율(전체 농식품에서 관세를 철폐하기로 한 품목 비율)은 58.5%로 이미 체결한 FTA 평균 72%와 비교해 14%포인트 낮은 수준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기존 FTA에서 개방하지 않았지만 RCEP에서 개방하기로 한 품목은 136개다.  구아바·파파야 등 일부 열대 과일이 개방됐고, 중국에는 녹용과 덱스트린(변성 전분)을 개방하기로 했다. 다만, 이들 추가 개방 품목은 관세 철폐 기간을 최대한 확보해 국내 시장 충격을 최소화했다. 관세율이 30%인 구아바와 파파야, 망고스틴 등의 열대 과일은 10년, 관세율이 20%인 녹용의 경우 20년에 걸쳐 관세가 낮아진다. 이번 협상에선 그간 FTA를 맺지 않았던 일본과는 750개 품목(자유화율 46%)을 개방하기로 했다. 

낮아진 검역 문턱, 득보다 실

RCEP 협정문 원산지규정 챕터는 RCEP 회원국 전역에서 재료를 조달·가공하더라도 '재료누적으로 인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예를 들어 과일주스를 만드는 회사가 아세안국가에서 과일 원자재를 들여와 가공해 수출할 경우 '한국산'으로 인정된다. 원산지와 통관절차 등 서로 다른 규정으로 발생하는 무역비용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다. 국내 농업계는 "수입산 원재료와 비교해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는 국내 과일류 내수기반이 더욱 취약해 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RCEP 협정문 내 위생·식물위생 조치(위생·검역, SPS) 챕터도 논란이다. 모두 17개 구조로 짜여진 SPS 챕터에는 병충해관련 지역화, 위험분석·수입검사·긴급조치 등 투명성 등을 자세히 적시하고 있다. 수입국의 검역 문턱을 최대한 낮춘다는 의도가 읽힌다. 농산물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위생·검역 조치를 바꾸게 되면 수출국에 이를 알려야 하고, 수출국의 위생·검역 기준이나 조치가 수입국과 비슷한 수준일 경우 동등성 조항을 적용해 그냥 수입해야 한다. 수입국이 이를 어기면 수출국에 그 이유를 객관적으로 해명하도록 RCEP은 규정하고 있다. 또한 RCEP은 수출국에 병해충이나 질병이 발생해도 같은 나라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무역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그동안 병해충·질병 발생 때 나라별로 구분했던 수출입 유무를 '지역' 단위로 확장했다. 

농업계 관계자는 "낮아진 검역 문턱이 국민 안전과 국내 농업민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강하게 맞서고 있다. 

낮아진 검역 탓에 일본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이 밥상에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확인 결과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은 RCEP 대상이 아니다. 농업계 관계자는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은 RCEP 대상 품목이 아니다"라면서도 "일본과 추진 중인 CTPPT(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후쿠시마산 농·수산물을 어떻게 규정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홍콩의 한 백화점에서 국내산 딸기를 판매하고 있다. 사진제공=농촌진흥청

한류 타고 'K-과일' 수출길 열린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동남아 해외지사나 마케팅 조사 자료 등에 따르면 한국산 딸기는 현지에서 고급 이미지로 인식돼 선물용 등으로 인기가 높다"면서 "주요 수출국인 싱가포르나 베트남에서 수입산 딸기 비중 중 한국 딸기가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최근 10년간 딸기 수출은 연평균 15% 성장세를 보였다. 한국산 딸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는 홍콩이며 그 뒤를 RCEP 협정국인 싱가포르가 잇고 있다. 2020년 기준 대(對) 싱가포르 딸기 수출량은 전년 대비 26.6% 상승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RCEP 발효를 두고 'K-과일'의 수출길이 열렸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싱가포르를 비롯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에서 판매되는 딸기는 현지 품종보다 6배 가까이 비싸지만 없어서 못 파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다. RCEP 협정국은 아니지만 국내 딸기 수입 1위국인 홍콩의 경우 백화점에서 1.2kg 한 상자당 10만원 안팎의 고가에 판매되지만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관련 업계 종사자의 설명이다.

딸기와 샤인머스켓 등 일부 국내 고부가가치 품종이 아세안 국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건 맞지만 'K-과일'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시각에 농업계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업계 관계자는 "신선 식품인 과일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항공배송을 해야 한다"면서 "2023년부터 항공물류 배송비에 지원되던 지원금이 일몰된다. 관련 농가에 물류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해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없을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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